16일 오후 서울 연세대학교에서 한 학생이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교내서 열린 집회가 강의에 방해된다며 연세대 재학생이 청소·경비 노동자들을 형사고소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연세대 재학생 A씨(23)가 집회 소음으로 수업권이 침해됐다는 내용으로 낸 고소장을 최근 접수했다. A씨는 집회 노동자들이 소속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연세대분회를 상대로 업무방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연세대 에브리타임 캡처
지난 15일 온라인 커뮤니티 '연세대 에브리타임'에는 "학생회관 앞 불법시위 경찰에 고소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자신을 고소인이라고 밝힌 글쓴이는 "불법시위로 인해 1학기 내내 수업을 방해받았다"며 "시위소음 때문에 정신적 피해도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과 집회 및 시위금지 가처분 신청을 낼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고소인의 입장을 듣기 위해 커뮤니티 글에 공개된 오픈채팅방을 통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19일 오후 현재까지 답을 듣지 못한 상황이다.
해당 집회는 지난달 6일부터 연세대 학생회관 앞에서 매일 오전 11시 30분쯤 진행됐다. 노조는 학교 측과의 교섭이 결렬돼 집회에 나섰다. 이들은 임금 인상과 학내 샤워실 설치, 정년퇴임에 따른 결원 충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김현옥 연세대분회장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15년간 연세대 청소노동자로 일해오고 있다.
김 분회장은 19일 CBS노컷뉴스와 전화인터뷰에서
"집회 엠프 방향을 도서관이 아닌 학생회관 쪽으로 돌려놓긴 하는데 직접 도서관에 가보니 1층에선 조금 들리긴 했다"면서도 "그렇지만 노동자로서 목소리를 멈출 수는 없고, 하루 빨리 학교당국이 문제 해결에 나서주길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노조 측은 현재 청소노동자 시급인 9390원에서 400원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김 분회장은
"고소를 당하긴 했지만 학생들을 미워하는 마음은 없다"고 심경을 전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불법시위 아니냐", "시험기간 내내 진행된 불법시위를 옹호할 수 없다" 등 노조 측을 비판하는 반응과 함께,
"점심시간에 잠깐 한 걸로 고소까지 한 건 각박하다", "반지성주의다" 등 노조를 고소한 학생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연세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B씨(24)는 "본격 집회가 시작되기 전에는 요구사항이 적힌 빨간 조끼를 청소노동자들이 입고 다녔다"며 "고소까지 해야 했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집회의 내막을 잘 모르거나 소음에 지속적으로 시달려서 큰 불편을 겪은 학생이라면 분노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미신고 집회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생 여론이 더 안 좋아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연세대 사회학과 C씨(28)는 "노조가 집회하는 학생회관 근처에 도서관이 있다 보니 공부하는 중에 시끄럽다고 느낀 적이 있다"며 "도서관 1층에는 각종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집회를 오랜 시간하는 건 아니라 이해할 수 있지만, 그래도 시험기간에는 안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양동민 전 대표는
"당연히 학생들도 조용한 환경에서 수업 받을 학습권이 있지만, 그것이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충돌해서 고소까지 이르게 된 상황은 많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노조의 집회가 '불법시위'냐 아니냐를 두고도 논란이 되고 있다. 헌법 제21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집회·결사에 대한 자유를 가지며 허가받을 필요도 없다.
다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제6조 제1항에는 옥외집회 및 시위를 사전에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을 경우 집회 주최자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송승환 조직부장은 19일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연세대분회가 신고하지 않고 집회를 해온 것은 하청 파견 노동자라 하더라도 근로를 제공하고 있는 자기 사업장 내에서 노조 쟁의 활동하는 게 위법하지 않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기 때문"이라며
"소음 관련해서도 기준치인 75데시벨을 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정희 연구위원은
"노조 집회에 대해 학생들이 학습권 침해를 주장한 건 2011년 홍대 사태도 있었지만, 이번처럼 고소전까지 가는 상황은 공권력의 개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게 분명해진 것이라 좀 더 심각해 보인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태의 배경에 대해선 "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노조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비율은 매번 80% 이상 수준인데, 이와 반대적 상황이 나타나는 건
'반노조 정서', '반민주노총 정서', '반집회문화 정서'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젊은 층의 개인주의적 성향과 권리의식 향상에 따라 자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 대해 목소리 내는 경향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학생들은 학교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결집체이며, 학습권만이 유일한 권리가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면서도
"노조 측은 자신들의 행위가 타인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는 노력도 필요하며, 공감대 형성이 결국 연대 확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다른 전술들을 가져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