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오송에 거주하는 뇌성마비 장애인 문경희(53)씨는 지난해 여름, 가족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 참석을 위해 경기도 가평으로 향했다. 이동을 위해 '장콜(장애인 콜택시)' 예약 전화를 걸자 "타지역 장애인은 이용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문씨는 담당자에 항의했지만 "규정 때문에 안된다"는 답변만 되돌아왔다. "비장애인들은 타지역에서 대중교통을 잘만 이용하는데 대체 왜 우리는 규정을 이유로 장콜을 이용할 수 없느냐"며 3시간 가까이 담당자와 입씨름을 한 뒤에야 가까스로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었다.
지난 14일 CBS 노컷뉴스 취재진은 세종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실에서 문경희씨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백담·임민정 기자"행복드림팀", "두리발", "착한수레", "희망네바퀴", "나드리콜".
각각 제주, 부산, 안양, 시흥, 대구 지역의 장애인 콜택시(특별교통수단)를 일컫는 말이다. 같은 기능을 담당하지만 지자체별로 부르는 이름이 모두 다르다.
과연 이름만 다를까.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장애인 콜택시는 지자체별로 이용 시간, 요금, 운행 규정 등이 천차만별이었다. 하루 종일 택시 이용에 문제가 없는 지역이 있는 반면,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운행하거나 일요일과 공휴일엔 장애인 콜택시가 한 대도 다니지 않는 지역도 있었다. 문씨처럼 타지역으로 이동할 경우 장콜을 이용하기 어려운 지역도 다수 있었다.
이 같은 문제는 특별교통수단 운영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위임하고 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장애인 콜택시의 운영을 지자체에 맡겨 놓았기에 지역마다 이용 대상자, 요금 체계, 운영 시간, 운영 주체 등이 제각각인 셈이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8년 '교통약자 특별교통수단 등 운영에 관한 표준조례'를 마련했지만, 여전히 이용 시간과 신청 방법 등은 여전히 각 지자체에 맡겨 놓아 장애인 이동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주말엔 쉬어요" '장콜', 영업시간·방법 제각각
경기도 구리 장애인 콜택시인 '장애인심부름센터'는 평일에는 24시간 운행한다. 하지만 주말·공휴일은 오전 9부터 오후 6시까지로 축소 운행한다. 이 경우에도 사전예약을 해야만 이용 가능해 갑작스러운 일정이 있는 경우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의 이동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나들이 등 개인적인 외출이 잦은 주말에 아예 '장콜' 이용이 어려운 지역도 있다. 충북 보은과 영동군의 경우 주말엔 장애인 콜택시를 운행하지 않는다. 또 평일에도 오전 9부터 오후 4~5시까지만 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야간 혹은 주말에 긴급하게 발생하는 일에 휠체어 장애인들은 대응하기 어려운 환경인 것이다.
예약 방법도 지자체별로 다양하다. 차량이 필요할 때마다 배차를 요청할 수 있는 곳도 있지만, 세종특별자치시와 같이 며칠 전에 연락해야만 택시 이용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세종은 이틀 전 '예약제'로만 운영되기 때문에 '급하게' 택시를 이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평일인지 주말인지, 야간인지 주간인지에 따라 예약 방식이 달라지는 지자체도 있었다. 강원도 철원군의 경우 평일(오전 6시~오후 10시), 주말(오전 9시~오후 6시)에 정해진 시간에 이용을 원할 경우 바로 배차 요청을 할 수 있지만, 정해진 시간 이외 시간에 이용을 원할 경우 예약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관외로 나갈 경우 병원 목적이면 일주일 전에 개인 용무를 위한 외출이면 하루 전에 예약을 해야 했다.
시외로 나가는 건 되지만 들어오는 건 안 된다?
지역별로 운행 지역이 달라 '장콜'을 통해 시외를 왕복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지난 15일 오후 대구에 거주하는 이민호씨가 대구의 장애인 콜택시인 나드리콜을 호출하고 있다. 백담·임민정 기자대구에 거주하는 이민호씨는 "대구에서 특별교통수단을 타고 인근 지역인 경산까지 갈 수는 있지만, 내려서는 대구 콜택시가 아닌 경산 지역 콜택시를 다시 불러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를 조금만 벗어나면 타고 왔던 콜택시를 다시 타고 갈 수 없는 현실이다.
대구시의 조례에 따르면, 장애인 콜택시는 경산, 칠곡 등 시내버스가 돌아다니는 인접 외곽 지역까지 운행할 수 있다. 다만 대구를 벗어날 경우 대구 콜택시를 부를 수 없다. 한 마디로 떠나는 건 되지만 돌아오는 길은 보장할 수 없다는 논리다. '규정' 때문이다.
서울과 부산 등 다른 대도시도 마찬가지다. 해당 도시 인근 지역으로 이동해서 대기 시간 내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 한, 머물러 있는 지역의 '장콜'을 따로 예약해야 한다. 이 경우 예약하려는 지역 업체에도 따로 등록 절차를 거쳐야만 이용할 수 있다.
문제는 결국 예산…'법 제정 위해선 예산 확보 필수'
'장콜'의 운영 방식이 지자체마다 다른 탓에 휠체어 장애인에겐 어디에 사는 지가 곧 언제, 어디까지 이동할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일부에선 지자체가 위탁기관에 '장애인 이동권'을 맡겨 놓고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지역의 '장콜'을 담당하는 기구가 바뀔 때마다 운영 규정도 같이 바뀌어 이용객들이 불편을 겪는 경우가 있었다.
문경희씨는 "대전의 경우 5년 전쯤 담당하는 단체가 대전복지재단으로 바뀌면서 9시 이후 시외 이동 금지 규정이 생겼다"며 "교통약자들을 위해 발전해야 하는데 더 축소되고 폐쇄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특별교통수단을 자체 운영하는 경기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민간 등에 위탁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장애인 단체들은 지자체별로 분산된 있는 장콜 운영 체계를 통합해 지역 간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장애인 콜택시 등 특별교통수단에 대한 중앙정부의 책임을 높이라는 뜻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예산을 들여 지금의 분산된 기준들을 하나로 묶는 중앙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정부의 예산을 투입해 국토부가 특별교통수단에 대한 최소한의 일원화된 기준을 만들고 이를 각 지자체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4조1항에 따르면 '장애인특별운송사업(운영비)', '장애인 장기(단기)보호시설 운영', '장애인 복지관 운영' 등은 지방자치단체 사업으로 규정돼 기재부의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에 따라 특별이동수단과 관련한 사업은 각 지자체의 예산 상황에 맞춰 천차만별인 상황이 된 것이다.
박 대표는 "현재 지자체는 기획재정부가 운영비를 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특별교통수단 지원 등 관련 사업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도 없다"며 "보조금 지원 제외 대상에 있는 장애인 복지 사업들을 지원 대상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재부가 국토부를 통해 예산을 주기 시작하면 예산을 통해 시행령을 만들고, 조례에 넘어가 있는 권한들을 많이 중앙으로 가져올 수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