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 장애인단체의 휠체어 투쟁이 21일 다시 시작된다. 이들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의 대책을 기대하며 지난달 30일,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 투쟁을 중단했지만, 인수위의 답변이 미흡하다는 판단 하에 투쟁을 재개했다.
전장연의 주 활동 무대는 서울이지만,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비단 서울에만 국한되진 않는다. 서울 보다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못했지만 지방에도 이동권 취약 지점이 여럿 포착되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대전·대구·부산·광주 등 4개 광역시를 직접 찾아 각 지역의 이동 제약 요소를 분석해봤다.
클릭하거나 확대하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부산 지하철의 틈…건널 수 없는 간격
"발 빠짐 주의, 발 빠짐 주의"
부산 지하철 1호선 연산역엔 열차가 도착할 때마다 이 같은 안내 방송이 반복된다. 발 빠짐 위험을 강조하기라도 하듯 스크린도어 하단부엔 '발 빠짐 주의'가 적힌 노란 스티커가 대문짝만하게 붙어있다.
부산의 지하철은 1~4호선·동해선·부산김해선 등 총 6개 노선으로 이뤄져 있다. 해당 노선들은 전부 엘리베이터를 통한 노선이 확보돼 있어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열차 탑승'에 있었다.
부산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은 "부산은 곡선 노선이 많은 탓에 열차와 승강장 간격이 넓은 곳이 많아 휠체어 바퀴가 그 틈에 낄 위험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클릭하거나 확대하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7일 오후 부산 2호선 덕천역에서 만난 안모(71)씨는 "서면역 1호선은 열차와 승강장 사이 틈이 넓어서 항상 신경이 쓰인다"며 휠체어 손잡이를 꽉 잡았다.
부산에서 지하철을 자주 이용한다는 김원석씨 역시 "서면역과 연산역은 열차와 승강장 사이 틈이 너무 넓어서 잘못하면 휠체어 바퀴가 빠져서 끼는 상황이 벌어져 자주 이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부산교통공사에 따르면 승강장과 열차 사이 간격이 10cm를 초과한 곳은 1호선 남포, 서면, 연산역 등 총 10곳이다. 1호선 남포역의 경우 틈이 18.5cm나 벌어진 곳도 있었다. 간격이 정확히 10cm 벌어진 역까지 따져볼 경우 총 31개 역으로 늘어난다.
'도시철도건설규칙'에 따르면 승강장과 열차 사이 간격이 10cm를 넘는 경우 발 빠짐 사고 등의 위험이 있다고 보고 안전발판 등 승객의 실족사고를 방지하는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부산교통공사 측은 칸 간격이 넓은 18개 역사 230곳에 고무 발판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다만 여전히 1호선 대티, 2호선 문현역 등엔 10cm가 넘는 간격이 벌어져 있는데도 단 한 개의 고무발판도 설치돼 있지 않는 점이 확인됐다.
광역 이동의 요충지 대전…비장애인들만 싣고 떠나는 버스
스마트이미지 제공대전광역시의 경우 정부 기관이 몰려있는 세종자치특별시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아 광역 이동이 특히 중요하다. 이에 대전과 세종을 잇는 '간선급행버스(BRT)' 노선이 마련돼 있다. 그중 대표적인 버스가 대전과 세종, 오송을 잇는 B1버스다. 일명 '바로타' 버스로 불리지만, B1버스엔 저상버스가 단 한 대도 없어 장애인들이 '바로 탈 수 없는' 상황이다.
해당 버스는 평일 약 11분 배차 간격으로, 비교적 좁은 배차시간을 이루고 있지만 장애인들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문경희 대전차별연대 공동대표는 "비장애인들이 오송역에서 세종시청까지 간다면 B1버스를 타고 30분 만에 갈 수 있다"며 "하지만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저상버스만 탈 수 있어 오송역에서 B2버스를 타고 다시 B0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시간도 2배나 걸린다"고 밝혔다.
이어 "세종에서 대전까지 가려 할 때도 비장애인들은 B1버스를 타고 세종에서 바로 대전까지 바로 갈 수 있지만 우린 전혀 사정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세종과 대전 지역 장애인단체들은 B1버스를 '차별 버스'라고 규정하고, 장애인들에게도 광역이동체계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도 '차별버스 B1철폐를 위한 5분 버스막기 행동'을 2년째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전시는 휠체어 2대까지 탑승할 수 있는 2층 전기 저상버스 2대를 오는 10월 도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대구 장애인 콜택시…'즉시콜'이라지만 '하염없는 기다림'
지난 15일 오후 대구디자인진흥원에서 CBS노컷뉴스와 만난 이민호씨. 이씨는 이날 약 1시간 40분 동안 한 건물 1층 로비에서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대구 지역 장애인 콜택시인 '나드리콜'을 호출한 이씨는 "오늘은 택시가 바로 잡히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구 지역 장애인 교류대회가 있어 이씨를 포함한 휠체어 장애인 수십 명이 한자리에 모인 탓에 특별교통수단(장애인 콜택시) 예약 경쟁률이 치열했다. 10여 명의 장애인과 활동지원사들은 배차가 되길 바라며 하염없이 기다렸다. 30분, 1시간 시간이 지날수록 "안 잡힌다", "기약 없다", "지하철 타고 가겠다"고 말하며 떠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이날 이씨가 콜택시를 접수한 시간은 오후 5시 26분. 이씨보다 30분 먼저 배차 시도를 한 이들도 1시간 30분 정도 대기해야 했다. '접수량이 많아 배차가 늦어지고 있다'는 문자와 '어디냐'는 지인들의 전화가 이어졌다.
이씨가 도움을 받아 장애인 콜택시에 탑승하고 있다. 백담·임민정 기자이씨는 저녁에 접어든 오후 7시 12분쯤 택시에 탑승했다. 이씨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휠체어를 탄 동료들끼리 어디라도 함께 가는 건 꿈도 못 꾼다"고 밝혔다.
그는 "버스나 지하철로는 갈 수 없는 곳에 나들이라도 가려 하면 차 두 대를 불러야 한다"며 "만약 약속 시간이 오전 10시라 해도 택시가 바로 잡히지 않아 오후 2시나 돼 모임이 시작되거나 한 명이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라고 밝혔다.
지난 2020년 국토교통부의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 조사 연구(에 따르면, 전국의 장애인 콜택시 평균 보급률은 83.4%이지만, 대구는 69.1% 보급률에 그친다.
장애인활동보조사 A씨는 "나드리콜 배차는 언제 될지 알 수가 없다. 어떤 날은 1시간 반, 또 어떤 날은 바로 배차될 때가 있다"며 "장애인들의 삶은 도저히 예측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광주 지하철 역사…차단봉 설치 안 돼 사고 위험도
광주 지역 장애인들은 "지하철 1동선 확보와 에스컬레이터 앞 차단봉 설치"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휠체어 진입으로 인한 사고 위험 등으로 두 명이 나란히 탈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의 경우에는 차단봉을 설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광주의 경우 광주송정역을 제외한 모든 역 에스컬레이터 앞에 차단봉이 없다. 차단봉 설치가 법적 의무사항이 아닌 탓이다.
광주도시철도공사에 따르면 현재 광주 지하철에는 에스컬레이터 91대 중 단 6대에만 차단봉이 설치돼 있다. 차단봉 6대 모두 광주송정역 단 한 곳에만 몰려있는 상태다.
광주 지하철의 경우엔 차단봉이 설치된 역이 광주송정역 단 한 곳이었다. 백담·임민정 기자특히 최근 전동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9호선 양천향교역에서 에스컬레이터에 탑승하다 추락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 뒤로 차단봉의 설치가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다만 광주도시철도공사 측은 "시각 장애인에겐 차단봉이 장애물로 인식된다는 우려로 설치를 미뤄 왔는데 사고 방지의 효과가 더 크다는 판단으로 추후 차단봉 설치를 늘려갈 계획"이라며 "올해 7월까지 18개 역사에 85개의 차단봉을 추가로 설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광주 지하철 양동시장역은 지상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장애인 이동권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역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대합실까지 이동하기 위해서는 높은 계단을 리프트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심지어 이동을 위해서는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어야 해 거동이 어려운 장애인들은 이용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측은 지난 18일 양동시장역 앞에서 집회를 열고 "광주도시철도공사는 20년째 설치를 계획 중"이라며 "2023년 12월 예정된 광주 지하철 2호선 1단계 개통 이전까지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휠체어 리프트를 철거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