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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군사재판 수형인 40명 '무죄'…첫 직권재심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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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 "극심한 이념 대립 속 희생"…유족 "모든 한이 풀려" 오열

법정에서 눈물을 흘리는 故양두봉씨의 조카 양상우(69·사진 오른쪽)씨. 고상현 기자법정에서 눈물을 흘리는 故양두봉씨의 조카 양상우(69·사진 오른쪽)씨. 고상현 기자제주4.3 당시 군사재판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수형인 40명이 70여 년 만에 죄를 벗었다. 지난해 4.3특별법 개정으로 출범한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첫 재심에서다.
 
29일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4.3 군사재판 수형인 故허봉애씨와 故양상우씨 등 40명에 대한 직권재심사건 선고 공판을 열어 수형인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선고 직후 방청석에 있던 유족과 4.3단체 관계자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재판부는 "공소제기 이후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그런데 죄를 증명할 증거가 없고 검찰에서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재판을 마치며 장찬수 재판장은 수형인과 유족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장 재판장은 "삶이 소중한데도 피고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극심한 이념 대립 속에 희생됐다. 피고인들은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지만'이라고 오늘날 우리에게 말한다"고 여운을 남겼다. 
 
장찬수 부장판사. 고상현 기자장찬수 부장판사. 고상현 기자이들은 4.3 광풍이 휘몰아치던 1948년과 1949년 사이 국방경비법 위반 또는 내란죄로 군사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뒤 목포형무소 등 육지 형무소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이다.
 
4.3 당시 이들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거나 학생 신분인 무고한 양민이었다. 나이가 젊다는 이유로 중산간 마을에 산다는 이유로 군‧경에 의해 억울하게 끌려가 옥살이를 해야 했다. 
 
군사재판 과정에서도 수형인 대부분이 변호인의 조력 등을 받지 못했으며 구금 과정에서도 체포‧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는 등 위법하게 이뤄졌다. 이들 모두 한국전쟁 당시 행방불명됐다.
 
지난해 4.3특별법 개정으로 출범한 광주고검 산하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은 수형인 명부 분석 등의 절차를 거쳐 군사재판 수형인 40명에 대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했다. 
 
무죄 선고 직후 기뻐하는 4.3단체 관계자와 유족들. 고상현 기자무죄 선고 직후 기뻐하는 4.3단체 관계자와 유족들. 고상현 기자이날 무죄 선고 직후 故허봉애씨의 딸 허귀인(73‧여)씨는 재판부로부터 발언 기회를 얻어 "오늘 이렇게 무죄라고 하니깐 눈물이 난다. 모든 한이 풀리는 거 같아서 감사하다"고 울먹였다.
 
故양두봉씨의 조카인 양상우(69)씨는 "큰아버지는 무장대에게 잡힌 줄 알았지, 군사재판에 끌려간 줄은 몰랐다. 조부모님께서 생전에 생일상 차려놓고 오열하신 게 생각난다"고 토로했다. 
 
"조부모님이 오늘 직권재심을 통해 어느 정도 위로가 되시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불법 군사재판으로 희생되신 분이 2500여 명이다. 이분들도 하루 속히 명예 회복되길 기원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오후 2시부터는 '특별재심'으로 청구된 4.3일반재판 생존 수형인 고태명(90)씨 등 33명에 대한 선고가 이뤄진다. 특히 이들 중 故이경천씨는 당시 미군정이 직접 재판을 맡았다.

제주지방법원. 고상현 기자제주지방법원. 고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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