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 등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환율과 금값이 치솟는 반면, 국내 증시는 약세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물가상승과 경기둔화 우려 속 투자자들의 안전 자산 선호 심리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하루 전 종가보다 9.9원 상승한 1237.0원에 마감했다. 전날 1220원대를 넘어선 뒤에도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원·달러 환율이 1230원대를 나타낸 건 1년 9개월 만이다.
김승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달러화는 러시아 원유수입 금지 등 서방 경제 제재에 의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상승) 우려가 확산하자 안전 자산 선호 심리에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안전 자산인 금값도 무섭게 오르고 있다. 이날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RX금시장에서 거래되는 1kg짜리 금 현물의 1g당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1.53% 오른 7만 8360원이다. 올해 들어서만 12% 가까이 오른 가격으로, 금값이 7만 8000원선을 돌파한 것도 2020년 8월 이후 처음이다.
반면 국내 주식시장은 3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전날 2700선을 내줬던 코스피 지수는 이날 28.91포인트(1.09%) 더 빠져 2622.40에 거래를 마쳤다.
지수는 장중 2605.81까지 하락하기도 했지만, 겨우 2600선을 사수했다.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4766억 원, 2927억 원 어치를 순매도하며 3거래일 연속 '팔자' 행진을 이어갔다. 개인만 7320억 원 어치를 순매수했다. 코스닥 지수도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세 속에서 전 거래일보다 11.40포인트(1.29%) 하락해 870.14에 장을 마감했다.
이 같은 위험 자산 회피의 반작용 격인 환율 상승 흐름은 통상 수출 기업의 채산성을 강화하는 요소지만, 현재와 같은 에너지·원자재 가격 상승 국면에선 기업의 비용 부담을 높이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또 수입품 가격 상승과 이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전문가들 사이에선 환율이 오르고는 있지만, 아직 고(高) 환율 국면으로는 보기는 어려우며 이에 따른 명확한 위기 신호도 포착되지도 않은 만큼 신중한 상황 관리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지나친 불안감이 오히려 독(毒)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환율이 올라 외국인 자금이 대규모로 빠져나간다면 정말 큰 문제인데, 지금 상황이 그런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또 "지금이 고환율이라고도 보지 않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속도에 대한 불확실성에 더해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대외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는 환경 속에서 지나친 불안감으로 인해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상황까지는 이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승민 삼성증권 글로벌투자전략팀장은 "최근 주식, 상품 시장은 예측 불확실성이 높은 변수 출현 시 나타나는 전형적인 과민 반응의 양상"이라며 "우크라이나 변수가 자산가격에 미치는 단기 영향은 8부 능선을 넘고 있다고 판단된다. 전쟁 자체에 대한 반영은 이미 진행 중"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물론 러시아의 군사작전이 실패로 돌아가거나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지만, 아직은 확률이 낮아 보인다"며 "따라서 다소간 더 이어질 변동성 국면에서 위험 자산의 공격적 비중 축소는 이제 실익이 없을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