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왼쪽)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오른쪽). 국회사진취재단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문재인 정권이 범죄를 저질렀고, 이를 수사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데 대해 더불어민주당이 '정치보복 발언'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20대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적폐수사', '정치보복' 프레임 충돌이 향후 표심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
尹발언에 與 강력 반발…"노골적인 정치보복을 선언"
윤 후보가 9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적폐수사 가능성을 언급하자, 청와대는 당일 이례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냈다. 민주당도 잇따라 긴급 기자회견을 여는 등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정치보복을 할 것'이라는 여권 일각의 우려를 현실화시키면서 '지지층 결집'의 고리로 이용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수사를 통한 정치보복'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 발언이어서 여권 지지층의 결집이 일어날 지도 관전 포인트다.
여권이 문제 삼은 부분은 앞서 이날 보도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윤 후보가 "해야죠. (수사가) 돼야죠"라고 답한 대목이다. 또 윤 후보는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그러나 대통령은 수사에 관여 안 할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를 '적폐'로 지칭하고, '문 정부가 불법과 비리를 저질렀다'고 지목한 셈이다. 이에 따라 '당연히 수사해야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명백한 정치보복 선언'으로 인식했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서도 윤 후보의 인터뷰 발언에 대해 "듣기에 따라서는 '정치 보복을 하겠다' 이렇게 들릴 수 있는 말씀이어서 매우 당황스럽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우상호 총괄본부장은 이날 오전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후보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정치보복을 선언했다"며 긴급 성명서를 발표했다. 우 본부장은 성명서에서 "문재인 정부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계승자라는 것은 '사기'라는 악담까지 퍼부었다"며 "일평생 특권만 누려온 검찰권력자의 오만 본색이 드러난 망언"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을 향해 보복의 칼을 겨누는 것은 국가적 위기 상황을 혼란으로 몰아넣는 망국적 분열과 갈등의 정치"라며 "정치보복은 온 국민이 피와 땀으로 일구어온 민주주의를 짓밟는 폭거이자 대한민국을 분열과 증오로 역행시키는 것으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 본부장은 "윤석열 후보는 정치보복 발언을 취소하고 국민 앞에 사과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선대위원장인 윤호중 원내대표 또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규탄 발언을 이어가기도 했다.
'수사통한 정치보복'연상에 故 노무현 전 대통령 떠올리기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9년 4월 30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기 위해 변호인단과 함께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으로 출두하고 있다.이같이 민주당이 민감하게 반응한 데에는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문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고초를 겪을 수 있다'는 여권 일각의 우려를 떠올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후보는 앞서 지난달 22일 송파구에서 한 거리 연설에서 "(선거에서) 지면 없는 죄를 만들어서 감옥에 갈 것 같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틀 뒤 자신의 해당 발언에 대해 이 후보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당선시) 검찰공화국이 다시 열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표현했던 것"이라며 "제 얘기는 전혀 아니었다"고 정치보복 우려를 시사했다.
실제로 당 일각에서는 윤 후보의 발언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검찰 수사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노 전 대통령의 상황이, 윤석열 정부가 탄생하면 문 대통령에게도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는 여권 지지층 결집을 일으킬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친노'(親노무현) 원로인 이해찬 전 대표도 이날 이 후보 소통 플랫폼 앱인 '이재명 플러스'에 올린 칼럼을 통해 윤 후보가 지난 5일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방문해 노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눈시울을 붉힌 일에 대해 "악어의 눈물"이라고 했다. 악어의 눈물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행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러면서 "기득권의 부정부패인 적폐를 치우는 것은 청산이지만, 적폐를 쌓을 시간조차 없었던 사람들에게 적폐를 만들어 모해하고 탄압하는 것은 정치보복"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그 정치보복으로 노무현 대통령님을 모해하고 고인께서 운명이라 말씀하시며 우리 곁을 떠나시는데 일조했던 윤석열 후보가, 이제 와서 감히 그 분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정치보복을 한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무슨 짓을 하겠다는 것이냐. 또 누구를 상대로 악어의 눈물을 흘리겠다는 것이냐"고 강하게 반발했다.
여권 내 '정치보복'우려 연상…'친문 부동층' 결집할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이처럼 여권이 일제히 반발하는 배경에는 선거 전략도 일부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이 후보 선대위가 '친문 부동층'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이들을 결집시키기 위해서는 자의건 타의건 '정치 보복' 프레임 만큼 효과적인 게 없기 때문이다.
'친문 부동층'은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만 이 후보는 지지하지 않는 지지층 일부를 말한다. '정치 보복 프레임'은 '퇴임 후 문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 후보를 지지해야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져 지지층 결집을 일으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윤 후보와의 차별화 전략으로도 풀이된다. 윤 후보가 '보복'을 얘기할 때 국민통합과 미래에 대해 얘기하며 비교되는 모양새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선대위 박광온 공보단장은 논평을 통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는 정치보복의 불행한 역사를 끝내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다"며 "마찬가지로 새로운 대통령도 국민통합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