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정 입장한 유남석 헌재소장과 재판관들. 연합뉴스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을 원칙적으로 금지해 사실상 '강제노동'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고용허가제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23일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외국인근로자고용법 제25조 제1항과 관련 고용노동부 고시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 사건에서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기각·각하했다.
현행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한번 사업장이 정해지면 고용허가가 만료되는 4년 10개월(기본 3년·연장 1년10개월) 동안 일터를 바꿀 수 없다. '성실 근로자 재고용' 제도를 이용해 추가로 4년 10개월을 재고용 계약 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장 9년 8개월간 한 사업장에서만 일해야 할수도 있다.
예외적으로 사업주가 근로계약 해지를 원하거나 휴·폐업한 경우, 사용자가 근로조건을 위반하거나 부당한 처우를 한 경우에만 고용센터의 심사를 통해 일터가 변경된다. 이러한 사유가 아니라면 사용자의 허가가 있어야만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고 횟수도 3회를 초과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이주노동자들과 이주인권단체 등은 지난해 3월 이같은 조항이 사실상 '강제노동'을 강요해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이번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그러나 헌재는 "사업장 변경 사유를 제한한 조항은 원칙적으로 외국인근로자의 의사에 따른 사업장 변경을 금지하고 예외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허용해 중소기업 등이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고 내국인 근로자의 고용기회나 근로조건을 교란하는 것을 방지 하는 등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외국인근로자가 자유롭게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다면 원활한 사업장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며 "최근 불법체류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에서 외국인근로자의 효율적 관리 차원에서도 장기근무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고용법이 채택한 '고용허가제'는 사용자에 대한 규율을 중심으로 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외국인근로자 당사자에 대한 검증은 노동허가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점도 근거로 들었다. 고용허가제를 취지에 맞게 존속시키려면 사업장 변경 사유 제한 등의 조치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업장 변경 횟수를 3회로 제한한 조항에 대해서는 청구인들이 3회 이상 사업장 변경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당 조항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가 확실히 예측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각하 결정했다.
반면 반대의견을 낸 이석태·김기영 재판관은 "국내에서 외국인근로자는 내국인 근로자와 경쟁관계라기보다는 대체·보완관계"라며 "외국인근로자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해 내국인의 고용을 보호한다는 것은 합리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사업장 변경 사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은 오히려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사업장 변경 사유 제한으로 외국인근로자가 받는 직장선택의 제유 제한은 매우 중대하다"고 강조했다.
이미 외국인근로자의 국내 취업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지명을 하면서 시작되고 외국인근로자는 취업 전에 자신이 구체적으로 어떤 근로조건과 작업환경에서 근무하게 될지 거의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근로를 시작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특히 "외국인근로자가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사업장에서 이탈하여 다른 사업장으로 옮길 수 없도록 제한하는 것은 직장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넘어서 생명과 신체를 위협할 우려마저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번 헌재 결정은 외국인고용법과 사업장 변경의 사유 등을 구체화한 고용노동부 고시의 위헌 여부를 판단한 첫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