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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사고로 죽다 살았는데 '출근해라'"…이주노동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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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중지명령에도 노동 강요·불법파견
노예제 철폐로 근절한 '강제노동', 고용허가제가 재현

1월 31일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의 가죽공장에서 폭발 사고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해 소방 당국이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이한형기자

 

한낮 해가 뜨거워지기 전이면 A씨는 불안감에 몸을 떤다. 지난 1월 31일 오전 11시 25분쯤 경기 양주시 가죽공장에서 발생한 폭발사고 현장에서 살아남은 후 겪고 있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다.

그날의 사고로 A씨 같은 외국인 노동자 한 명과 71세의 내국인 노동자 한 명이 사망했다. 8명은 크게 다쳐 병원에 있다. A씨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사고 이후 불면증과 공포감에 시달리고 있다. 작은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고 음식을 제대로 삼키지 못한다.

그럼에도 A씨는 폐허가 된 가죽공장으로 계속 출근해 그날의 충격을 마주하고 있다. 현행 외국인고용법상 사업장 변경을 제한한 법 조항 때문에 사업주(사용자)나 고용센터의 허가 없이는 옴짝달싹 할 수 없어서다.

CBS노컷뉴스는 22일 한국말이 서툰 A씨를 대신해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목사에게 자세한 상황을 전해 들었다. A씨와 다른 이주노동자 4명은 김 목사 등 이주인권 활동가들과 함께 지난 15일 외국인고용법의 위헌성을 주장하는 헌법소원을 냈다. 이들은 해당 법 조항이 사실상 '강제노동'을 합법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1월 31일 폭발 사고가 발생한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의 가죽공장. 당일 생존한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 A씨는 고용노동부의 작업중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고가 난 공장으로 출근해 일해야 했다. (사진=이한형 기자)

 

폭발사고 후 고용노동부는 해당 가죽공장에 중대재해 발생으로 인한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사업주는 A씨를 비롯한 노동자들을 출근시켜 일하게 했다. 노동부 직원이 현장에 올 때는 근로자들을 숙소로 도망치게 해 눈을 피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중지 명령을 어긴 사업주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A씨는 "작업중지 명령을 어긴 것을 모를 수 없는데 감독관들이 알고도 속아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불법근로가 자행되는 상황에서 A씨는 고용센터에 사업장 변경을 문의했다. 그러나 A씨의 사정은 사업장 변경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외국인고용법상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예외적으로 사업주가 근로계약 해지를 원하거나 휴·폐업한 경우, 사업주가 근로조건을 위반하거나 부당한 처우를 한 경우에만 고용센터의 심사를 통해 변경이 가능하다. 이러한 사유가 아니라면 사업주의 동의가 있어야 변경할 수 있다.

A씨의 요청에 사업주는 동의는커녕 A씨를 본국인 미얀마로 내쫓겠다며 협박하고 욕설을 했다. 또 지정된 양주 공장이 아닌 동두천 소재 다른 공장에 가서 약 2주간 근무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이 역시 '불법파견'으로 법에 저촉되는 행위다.

A씨는 불법파견 근로의 증거를 모아 노동부에 신고했지만 그 후로도 계속 출근해 일을 하고 있다. 오는 23일까지 노동부가 사업주의 소명자료를 받아보고 이를 토대로 불법성을 판단한 후에야 A씨의 사업장 변경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폭발사고가 난 양주 가죽공장에 작업중지 명령이 내려진 2월 3일 이후, 사업주가 A씨에게 동두천 소재 다른 공장에 불법 파견을 지시해 근로 중인 모습. (사진=포천 이주노동자센터 제공)

 

작업중지 기간 중 근로나 이주노동자의 파견근로 자체가 불법이지만 A씨는 이에 저항해 출근하지 않거나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없다. 사업주가 무단이탈로 신고해버리면 강제출국될 수 있다는 위험 때문이다. 또 3년으로 제한된 취업비자를 1년 10개월 더 연장하고, 그 이후에도 재입국 해 일하려면 반드시 사업주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에 헌법소원에는 현행 외국인고용법이 헌법상 △행복추구권 △평등권 △신체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근로의 권리를 제한한다는 주장이 담겼다.

특히 노예제를 철폐하며 국제적으로 확립된 '강제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크게 침해받는 상황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어떤 제재의 위협으로 강요된 것이거나 스스로 자발적으로 제공하지 않은 모든 작업과 복무'강제노동이라고 정의한다.

A씨와 함께 헌법소원을 낸 몽골 이주노동자 B씨는 지게차 면허가 없는데도 사업장에서 지게차 조종업무를 지시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무면허 운전'을 해야 했다. 임금체불을 당해도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사업장 변경 요건이 된다. 심지어 직장 내에서 이주노동자가 성폭력을 당해도 사업주 본인이 가해자인 경우에만 사업장 변경이 허락된다.

김 목사는 "이주노동자들은 산재를 당해도 신고율이 24%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며 "내국인이 63% 이상인 것과 비교해보면 고용허가제도가 이주노동자의 노사관계를 사실상 '주종관계'로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폭발사고 당시 사망한 나이지리아 출신 이주노동자는 전 직장에서 손을 크게 다친 후 가죽공장에 재취업한 지 3개월 만에 47세 나이로 목숨을 잃게 됐다. 올해 35세인 A씨는 그것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느낀다.

김 목사는 "A씨는 지난해부터 가죽공장의 열악한 노동환경 등을 사유로 사업장 변경을 계속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번 사고가 터졌다"며 "국가가 계속 근로를 강요한 상황에서 만약 A씨가 사망했다면 그 죽음은 누구의 책임인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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