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결국 아무런 사과 없이 생을 마감한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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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5.18과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아무런 사과나 반성 없이 결국 사망
언론통폐합, 인권탄압 등 폭압 정치로 우리 현대사에 어두운 그림자
경제성장 이뤘지만, 불법적인 정치자금 수천억 원 거둬
고 조비오 신부 재판정에서 내뱉은 '이거 왜 이래'라는 말이 상징하는 반성없는 삶
섣부른 사면이 만들어낸 불행한 역사 되풀이되지 말아야

광주 북구 옛 망월묘역(민족민주열사묘역)으로 향하는 길바닥에 묻혀있는 '전두환 비석'이 밟히는 모습. 연합뉴스·박종민 기자광주 북구 옛 망월묘역(민족민주열사묘역)으로 향하는 길바닥에 묻혀있는 '전두환 비석'이 밟히는 모습. 연합뉴스·박종민 기자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9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1~2년 전에만 해도 건강한 모습을 유지하던 전 씨는 지병이 갑작스레 악화하면서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군사 쿠데타를 함께 일으켰던 동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망한 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같은 길을 떠난 셈이다.
 
전두환 씨는 우리 현대사에 가장 큰 오점을 남긴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하나회라는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사조직을 만들었고, 이 사조직을 통해 군사 쿤데타를 두 차례나 일으키며 정권을 잡았다.
 
특히 광주에서 저지른 5.18은 군이 행한 가장 잔혹한 범죄행위이자 군사반란이었다. 체육관 선거라 불리는 간선제 방식으로 두 차례 대통령에 선출돼 재임한 기간에는 삼청교육대를 비롯한 인권탄압이 자행됐고, 수많은 간첩조작 사건으로 죄 없는 민간인과 대학생들이 투옥되고 인생을 잃었다. 언론통폐합이라는 폭압적인 조치도 그의 재임 당시 이뤄졌다.
 
3저 호황이라는 유례없는 상황을 맞아 경제 성장을 이뤄내기도 했지만, 특정 재벌들에게 특혜를 몰아주는 대가로 천문학적인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챙기기도 했다. 특별수사본부가 밝혀낸 금액만 9천억 원이 넘는 막대한 규모다.
 
불법자금 환수에 나서자 여기저기 자금을 은닉한 전 씨는 "통장에는 29만 원 뿐"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숨지기 전까지 스스로 불법 자금을 내놓지 않았다. 간선제 선출방식을 그대로 유지해 평생 동지인 노태우 씨를 대통령에 앉힌 뒤 이른바 '상왕'처럼 군림하기를 기대했지만, 들불처럼 번진 6월 항쟁으로 결국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였다.
1996년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1996년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분열된 3김 덕분에 노태우 씨가 당선되기는 했지만, 이미 정권에 부담이 돼버린 전 씨는 백담사에 유폐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후 김영삼 정부 들어 결국 재판정에선 함께 선 전 씨와 노 씨는 군사반란 혐의로 사형이 확정됐지만 섣부른 사면조치로 불과 2년도 안 되는 수감생활을 마치고 자유인으로 버젓이 삶을 이어간다.
 
이제 전두환씨를 상징하는 말은 광주의 재판정 앞에서 내뱉은 "이거 왜 이래"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비난하면서 명예훼손으로 재판정에 선 전 씨는 끝까지 자신의 행위를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광주 시민들에게 '사과할 생각이 없냐'는 기자의 질문을 향해 내뱉은 "이거 왜 이래"라는 말은 그의 사고와 인생을 대변한다. 암 덩어리와 같은 사조직을 군내에서 은밀히 운영하면서 능력과 관계없이 그것도 특정 지역 출신만을 골라 출세 길을 보장하며 줄을 세웠고, 이를 기반으로 군사반란을 일으킨 인물.
 
민주화 열망에 가득 찬 국민들의 저항을 짓밟기 위해 무장 군인을 그것도 가장 강력한 특수부대를 투입해 민간인을 무참히 학살한 인물. 참혹한 진상이 밝혀진 뒤에도 아무런 반성이나 사과조차 거부했던 인물.
박종민 기자박종민 기자 
불법으로 거둔 뇌물로 평생 호의호식하면서 자식에게까지 부끄러운 부를 물려준 인물. "이거 왜 이래"라는 거친 표현에는 이 모든 것이 담겨 있다.
 
5.18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다. 이 사건의 진상은 아직도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 최초의 발포명령자가 누구인지조차 확인된 바 없다. 이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던 전 씨는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아무런 사과나 언급조차 없었다.
 
결국 전 씨의 사과 없는 사망으로 우리 역사에서 5.18은 영원히 미완의 과제로 남게 됐다. 그리고 반성 없는 자에 대한 섣부른 용서는 역사에 큰 상처를 남길 뿐이라는 값비싼 교훈을 남겨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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