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더 우먼'에서 한성혜 역을 연기한 배우 진서연. 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독전'부터 '원 더 우먼'까지, 배우 진서연의 필모그래피는 언제나 강렬했다. 약쟁이에 강력반 형사 그리고 '빌런' 총수. 진서연은 평범하지 않은 그 역할들을 모두 자신의 연기력으로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만큼은 아무런 계산 없이 자신을 내려놓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서연이 없었다면 코믹 수사극 '원 더 우먼'도 없었다. 극을 이끌어 가는 이하늬와 이상윤의 반대편에서 진서연은 야망 넘치는 한주그룹 장녀 한성혜 역으로 팽팽한 대결 구도를 형성했다. 한성혜의 활약 덕분에 드라마가 가볍지 않은 무게감을 가질 수 있었다.
'같은 배에서 태어났어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늘 후계구도에서 밀려나 있었다. 남동생들을 이기기 위해서 몇 배를 노력 해야만 했던 삶'. 성별이 핸디캡이었던 한성혜의 서사는 결말은 다르지만 진서연, 혹은 많은 여배우들이 걸어 온 길을 닮았다.
그는 앞으로 '원 더 우먼' 같은 작품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전언을 남겼다. 여자 캐릭터가 부수적 역할을 벗어나 홀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진서연은 실제로 자신만의 아우라로 성별에 따른 편견을 깨왔다. 거칠든, 괴팍하든, 과격하든, 악하든 다채로운 캐릭터를 완성하며 영역을 넓혀왔다. 앞으로도 진서연의 도전에 더욱 기대가 모이는 이유다.
다음은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해 화상으로 진행된 진서연과의 '원 더 우먼' 종영 인터뷰 일문일답.
Q 최고 시청률 17.8%를 달성했다. '원 더 우먼'의 이 같은 흥행을 예상했나A 시청률이 생각보다 더 잘나와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 전작 '펜트하우스'가 너무 화려했기 때문에 예상을 못했다. 그걸 우리가 뛰어넘을 수 있을까, 당연히 못 하겠지만 그래도 중간은 가자, 이런 마음으로 다들 했던 것 같다. 첫 장면을 찍으면서는 우리 드라마가 잘 되겠구나 싶었다. 보통 자기들 드라마 보고 재미있다는 말을 안 하는데 스태프부터 배우들까지 다 너무 재미있어 하는 걸 보고 그런 기대를 했다.
Q 차분하고 냉정한 이면에 뜨거운 야망과 흉계를 가진 섬뜩한 '빌런'이었다. 한성혜 역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지점이 있다면
A '빌런'처럼 안하려고 노력했던 거 같다. 그래서 더 섬뜩하게 나오지 않았나 싶다. 캐릭터를 희극화하지 않고, 실제 볼 수 있는 나쁜 사람들, 진짜 나쁜 짓하는 사람들은 어떨지에 집중해서 캐릭터를 잡았다. 모든 걸 가졌고, 야망이 있고, 그런 환경에 있는 사람은 어떨까. 배운 지식도 있고, 보는 눈들도 있어서 1차원적인 감정 표현을 많이 안할 거 같다고 생각했다. 치밀하게 감정을 억누르면서 내면에서 소용돌이 치는 캐릭터라 타 작품에 비해 시선과 호흡을 많이 계산했다. 눈빛과 호흡에서 악함을 드러내려고 했다. 패션 역시 이미 타고나길 금수저였기 때문에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우아하고 고귀한 느낌이 나도록 블랙 아니면 화이트로 옷 색깔에 한계를 많이 뒀다. 나쁜 짓만 안하면 여성들의 워너비같은 캐릭터였다고 본다.
'원 더 우먼'에서 한성혜 역을 연기한 배우 진서연. 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Q 극 중 대립관계였던 이하늬·이상윤과의 호흡은 어땠는지 궁금하다.A (이)하늬랑 저는 동갑내기라 서로 말을 놓고 친구처럼 잘 지냈다. (이)상윤 오빠는 저한테만 말을 안 놓고 다른 분들에게는 다 말을 놓았다. 최근까지 존대를 하셨다. 제가 많이 어렵다고 하시더라. 장난쳐도 안 먹혔는데 붙는 장면이 많아져서 제가 장난 많이 치는 걸 알고 그때부터는 말을 놓으셨다. 어머니, 아버지도 너무 편하게 해주셔서 저희 후배들이 다 현장에서 편하게 웃고 떠들며 촬영했다. 일단 하늬랑 상윤 오빠가 엄청 서글서글하고 먼저 다가오는 스타일이라 다른 배우분들도 편하게 지내지 않았나 싶다.
Q 최근 들어 여자 주인공 작품도 늘어나고 카리스마 있는 여자 캐릭터들이 영화와 드라마에서 약진하고 있다. '원 더 우먼'도 그런 드라마 중 하나였다A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서 대부분 여성 캐릭터들이 남성 캐릭터들을 받쳐주는 부수적인 인물들로 그려졌었다. 그런데 재작년부터 여성 캐릭터를 필두로 쓰시는 '원 더 우먼' 같은 작품들이 많이 비춰지는 것 같다. 저희 여배우들로 하여금 큰 힘이 되고 우리도 재미있는 캐릭터를 마음껏 보여줄 수 있겠다는, 굉장히 좋은 시너지가 되고 있어서 기쁘다. 연주나 미나, 성혜 같은 캐릭터도 예전 같았으면 남자 주연이나 남자 악역이 필두로 가는 드라마였을 거다. 여자 주인공, 여자 빌런 등 이런 작품들이 많이 제작되는 것이 너무나 환영할 만한 일이다. 앞으로도 많이 생겼으면 한다.
Q 그간 캐릭터들 때문에 포스가 넘치는 이미지가 있는데 실제 성격은 어떤가A 실제로는 굉장히 재미를 추구하고 재미있게 사는 걸 좋아한다. 차분하고 조용하기도 하다. 제가 가장 많이 만나는 스태프들이 차에 있으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서 계속 웃는다. 주로 기분이 어떤지, 연애사는 어떤지, 뭘 먹었는지 그런 세세하고 사적인, 어디 가서 이야기 못하는 것들을 말한다. 제가 질문을 많이 끌어낸다. 아무래도 저보다 어리고 사회 초년생인데 제가 불편하게 하면 현장에서 많이 힘들 것 같아서 편안하게 해주려고 노력한다. 제가 겉으로는 말도 잘 걸고 낯가림이 없는 것 같은데 속으로는 심해서 친해지기가 굉장히 오래 걸린다. 작품 끝나더라도 친해진 배우들이나 스태프, 작가, 감독이 잘 없었다. '원 더 우먼'은 코미디여서 그랬는지 워낙 사람들이 좋아서 그랬는지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친밀해졌다.
'원 더 우먼'에서 한성혜 역을 연기한 배우 진서연. 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Q '원 더 우먼'의 연기는 수치로 표현하면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궁금하다. 배우로서 자신만의 강점은 무엇일까
A '원 더 우먼'은 50%? 영화처럼 많은 준비를 할 수 없고, 가고 싶은 테이크를 다 갈 수 없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다음 컷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많았다. 드라마라서 어쩔 수가 없었다. 제가 준비를 더 잘했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많았다. 제 강점을 찾아보자면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두려움이 없다. 연기를 할 때는 어떻게 보여질 지 생각하지 않는다. 하고 나서 매장 당할 수도 있겠다 걱정하지만 할 때는 다 내려놓고 무장해제한다. 계산하지 않는 배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게 강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Q '독전'부터 '원 더 우먼'까지 강렬한 캐릭터들을 많이 선택해왔다. 선호하는 이유가 있을까A '독전' 이후에 그 정도 아니면 그것보다 더 센 캐릭터들이 많이 들어왔다. (웃음) '본대로 말하라'는 연쇄 살인마를 잡는 강력계 팀장이었고 '원 더 우먼'은 빌런이었다. 둘 다 남자가 해왔던 롤을 여자가 바꿔서 하니까 더 강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이 매력적이었다. 코믹하고 포근한 그런 역할도 좋다. 다양하게 해보고 싶다. 사람에게 한 가지 모습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쪽으로 치우친 모습을 많이 보여주다보니 악역이나 센 캐릭터 위주로 들어오는데 '원 더 우먼'의 연주 역할도 해보고 싶고, '부부의 세계' 김희애 선배님처럼 치정멜로도 해보고 싶다.
Q 편한 모습으로 예능을 해도 좋을 것 같다. 진서연이 생각하는 가장 나다운 모습은 언제일까A 예능도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다. 힐링하면서 만들어 먹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게 너무 재미있을 거 같다. 골프나 축구는 못하는데 맛집 탐방은 너무 좋다. '삼시세끼'처럼 시골 내려가서 농사 짓고, 물고기 잡고, 집 리모델링해서 다시 짓고 이러면 좋겠다. 가장 나다워지는 순간은 혼자 있을 때다. 남편도 아이도 없고, 혼자 요가하고, 운동하고, 독서하고 드라이브 할 때. 그러면 누구의 아내나 엄마, 배우가 아니라 나다워지는 것 같다.
Q 지금까지도 '독전'의 보령 역이 회자된다. 배우에게 한 캐릭터 이미지가 강하게 남은 것이 득일까 독일까. 또 배우 진서연이 가진 목표와 가치관이 궁금하다A 득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40대나 50대에 했다면 그렇게 안 나왔을 것 같다. 그 나이에만 할 수 있었던 거다. 각 나이마다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온전히 캐릭터로 남도록 표현하는 게 제 바람이다. 저를 캐릭터로 기억해주셨으면 한다. 제가 연기를 할 수 있게 기회를 주시는 분들에게 너무 감사드린다. 할머니가 될 때까지 이 재미있는 일을 하면 얼마나 좋을지, 감사할지 그런 생각이 많다. '다른 사람이 하면 저 정도로 못할 거야'라고 생각이 드는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싶은 소망이 있다. 제가 맡은 캐릭터를 관객들과 시청자들이 기억하고 사랑하는 것에 만족한다. 그게 답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