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채원빈. 아우터유니버스 제공'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재발견한 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배우 채원빈이다. 영화 '마녀(魔女) Part2. The Other One'(이하 '마녀 2')에서 초능력자 집단 토우 4인방의 리더로 활약하면서 묵직한 액션과 '포스'를 남기고, 이번엔 MBC 금토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이하 '이친자')에서 베테랑 배우 한석규와 팽팽한 연기 대결을 펼쳤다.
"당연히 긴장을 했었죠. 그래도 선배님께서 어제 만난 것처럼 대해 주셔서 상황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눌 수 있었어요. 저는 선배님이 이끌어 주시는 대로 그냥 잘 따라가기만 한 거 같아요. 어떻게 이런 분이 있을 수 있을까, 제가 생각했던 배우 모습의 이상이었어요. 저희 현장 비하인드만 봐도 선배님은 정말 한결 같으세요. 무거운 장면에서도 너무 무겁지 않게 계속 장난도 치시고, 되고 싶은 배우의 표본이시죠."
'이친자' 초반부터 장하빈은 서로 믿지 않는 아빠 장태수(한석규 분)과 밀도 높은 대립각을 세운다. 서로 소통이 없이 삭막한 두 부녀의 관계는 어느 날 벌어진 살인사건을 계기로 팽팽한 긴장감마저 끊어지게 된다. 최고의 프로파일러 장태수는 속내를 알 수 없는 딸 장하빈을 살인 용의자로 의심하고, 장하빈 역시 미스터리한 행동과 여러 단서들을 던지며 스릴러를 이끌어 간다.
"감독님과 대본에 나오지 않는 하빈이의 과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캐릭터를 만들어가려고 했지만 그런 비공식 정보가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어떤 애인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던 것 같아요. 생각이 많아지는 장면들을 정리를 해서 제 생각이 맞는지를 많이 여쭤봤었어요. 제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라 하빈이만큼은 감독님 의견을 많이 따랐던 것 같아요. 나중에 하빈이를 이해하고, 익숙해진 뒤에는 저도 많이 의견을 내가면서 했지만요."
말이나 감정 표현이 극히 적을 뿐아니라 어딘가 의뭉스러운 인물이라 해석이 쉽지는 않았다. 실제로 장하빈을 연기하면서 '본체'인 채원빈이 깊은 영향을 받기도 했다. '처음 보는 유형의 사람'. 채원빈은 장하빈을 그렇게 정의했다.
"저는 하빈이를 진심으로 따라갔을 뿐이었죠. 다만 쉽게 우울하고 지치고, 물에 젖은 솜처럼 몸이 계속 무겁고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어떻게 잘 이겨냈어요. 현장에서는 울고 그럴 수가 없으니까 집에서 울고, 혼자 어떻게 해서든 점점 괜찮아졌어요. 하빈과 태수에 대해 '손 맞잡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면 딱밤 한 대', 이런 평을 들을 정도로 시청자 분들이 깊은 답답함을 느끼신 거 같아요. 얼마나 저희 작품에 빠져들어서 같이 따라와 주셨으면 그랬을까 싶었어요."
배우 채원빈. 아우터유니버스 제공공감 능력을 보여주지 않는 장하빈의 무표정한 모습을 두고 이토 준지 공포 만화의 여주인공 '토미에'와 닮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채원빈은 이토 준지 만화의 팬이라서 처음부터 송연화 PD가 '토미에' 이미지를 잡았을 때부터 익숙하게 소화할 수 있었다.
"처음에 감독님이 잡아주신 외형 이미지가 토미에이긴 했어요. 제가 이토 준지의 작품을 좋아하거든요. 최근에 전시회도 가고, 친구와 만화 카페를 자주 가는데 그럴 때마다 '이토 준지' 타임이라고 있어요. 아무래도 공포 만화니까 밥 먹기 전에 이토 준지 만화를 읽는 거죠.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고, 익숙한 인물이라 저도 이야기를 듣고 놀랐어요. 토미에의 어떤 면모를 보이길 원하는 건지 물어봤는데 헤어 스타일이나 지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외형을 이야기 하시더라고요."
연기에 대한 고민은 원래 혼자 하는 편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러 시각을 경험하면 오히려 좋은 경험이 된다. 그러나 장하빈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다 힘든 시간을 맞닥뜨렸을 때는, 한석규에게 큰 위로를 받았다. 다시 어떤 관계로든 한석규와 만나서 연기를 하고픈 바람도 내비쳤다.
"선배님이 항상 '원빈아 별일 없지. 힘든 일 없지'라고 물어보세요. 늘 잘 넘겼는데 하루는 제가 저도 모르게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를 해버린 거예요. 그 때 선배님이 심각하게 들어주셨죠. 정말 감사하게도 그걸 너무 길게 나누지 않고, 좋은 쪽으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제가 또 그 이야기에 빠지다 보면 힘드니까요. '다음 작품은 어떤 걸 해보고 싶냐, 이런 걸 해도 잘할 것 같다'고 추천해주시기도 했어요. 선배님과 대기하는 시간은 심심하지 않더라고요. 천운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만나기 힘든 분이잖아요. '또 만나면 되지. 내가 또 아빠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직장 상사가 될 수도 있고 다 그렇게 만나지는 거 아니겠냐'고 하셨는데 그 말이 꼭 이뤄지기를 바라요."
MBC 제공스릴러로 강렬한 존재감을 남겼으니, 이제는 180도 다른 장르를 해보고 싶은 심정이다. '마녀 2' 같은 액션을 기대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직은 계획에 없다고. 물론, 좋은 작품이 들어온다면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참여할 생각이다. 액션 능력치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바로잡기도 했다.
"액션은 아예 0%는 아니지만 현재 할 계획은 없어요. 한석규 선배님이나 다른 분들께도 공통적으로 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저 역시 이런 작품을 연속해서 하는 건 스스로에게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느꼈거든요. 다음 작품만큼은 일상적인 연기를 더 하고 싶어요. 고생을 즐기진 않지만, 정말 기회가 온다면 그 이유 때문에 포기하지는 않아요. 도전 의식이 강해서 저 스스로 많이 고생시키는 거 같기도 한데, 그만큼 성장하니까요. 액션처럼 열심히 하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그런 건데 타고났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건 절대 아니에요. (웃음)"
쉬는 날에는 친구와 만화 카페에 가서 좋아하는 만화책을 읽고, 플레이스테이션 격투 게임을 즐긴다. 기본적으로 집 밖에 잘 나오지 않지만 '배우'라는 타이틀을 뗀다면 스물 셋 채원빈의 일상은 다른 20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집에서 한 정거장 정도 거리인데 제가 워낙 잘 나가지를 않아서…. (웃음) 거리가 멀다고 느껴지는 플레이스테이션 대여점이 있거든요. 거기 가면 마리오 게임, 철권, UFC 게임 등을 친구랑 하는 걸 좋아해요. 손가락으로 하는 액션은 잘 하죠. 이기면 스트레스가 풀리는데 만약 지면 이길 때까지 해요. 승부욕은 확실히 있는 거 같아요. 액션과 제가 잘 어울리는 걸 스스로 모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웃음)"
'10년에 한 작품씩 기억에 남을 작품을 남겨라'는 한석규의 조언에 채원빈은 조금 욕심을 내보기로 했다. '이친자'로 20대 전반에 좋은 작품을 남겼으니, 후반에 또 한 번 그런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 20대를 아직 많이 남겨둔 배우로서의 바람이기도 하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처럼 기억에 오래 두고, 다시 기억하고 싶을 만한 작품을 하나 더 하고 싶어요. 한석규 선배님께서 목표를 짧게 잡으면 조급해진다고 하시더라고요. 10년에 하나씩 기억에 남을 작품을 하는 걸 목적으로 하라고 하셨던 기억이 나요. 이제 하나 했고, 좀 더 욕심을 내면 하나 더 만들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