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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쉬운 '독극물' 온라인 구매…제2의 생수병 사건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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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절차 걸치면 '독극물' 온라인 구매

사무실에서 생수를 마신 직원이 숨진 이른바 '생수병 사건'의 피의자 강모씨는 연구용 시약 전문 사이트에서 독극물을 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 온라인에서 독극물을 사보니 간단한 본인인증과 회원가입만으로도 구매가 가능했습니다. 본인인증 절차조차 거치지 않은 일부 업체는 아무 사업자 번호를 입력했음에도 독극물 구매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습니다. 생명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화학물질에 규제가 필요하단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전문가들은 화학물질의 온라인 판매를 전면 금지하긴 어렵지만, 구매자의 신분 확인을 철저히 하는 등 판매 단계에서 보완은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간단한 본인인증으로 '생수병 사건'과 동일한 독극물 구매
판매업자 측 "사업자등록증만 내라"
독극물로 지난 10년간 극단적 선택 3872명
전문가들 "구매자 신분 검증 철저히, 판매자도 책임을"

간단한 절차 걸치면 '독극물' 온라인 구매 가능

연합뉴스연합뉴스
회사 사무실에서 생수를 마신 직원이 숨진 이른바 '생수병 사건'의 피의자 강모씨는 연구용 시약 전문 사이트에서 독극물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직원의 혈액에는 독극물 성분이 나왔고, 강씨의 경우 사건 발생 이튿날인 지난 19일 자택에서 독극물을 마시고 숨진 채 발견됐다.

강씨가 접속한 사이트는 소속기관 등록을 해야 독극물 구매가 가능한데, 그는 자신이 다니던 회사와 계약관계에 있던 다른 업체의 사업자 등록번호를 등록해 독극물을 샀다. 인터넷에서 독극물을 손쉽게 구입했다는 강씨의 범행 경위가 알려지자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었다.  

실제 CBS노컷뉴스가 연구용 시약 사이트에서 해당 독극물의 구매를 시도해보니 간단한 본인인증과 회원가입만으로 구매가 가능했다. 다만 한 업체는 배송 전 전화를 걸어 "구매를 위해선 사업자 등록증이 필요하다"며 "판매해도 되는 업체인지 확인하겠다"라고 안내했다.

이에 사업자등록증을 내지 않자 판매업자 측은 등록증 제출만 재촉할 뿐 해당 물질을 어디에 쓸지 등 구매 목적은 묻지 않았다. 판매업자들이 사업자등록증만 받고 구매자의 신원 확인엔 허술한 건 아닌지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실제 기자가 연구용 시약 사이트에서 해당 독극물의 구매를 시도해보니 간단한 본인인증과 회원가입만으로 구매가 가능했다. 시약 판매 사이트 캡처실제 기자가 연구용 시약 사이트에서 해당 독극물의 구매를 시도해보니 간단한 본인인증과 회원가입만으로 구매가 가능했다. 시약 판매 사이트 캡처
개인에겐 화학물질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실험시약 판매 사이트. 해당 사이트는 회원가입을 할 때 별다른 본인인증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사업자번호와 업체명을 요구했는데, 기자가 아무 회사의 사업자번호를 입력했음에도 회원가입은 물론 독극물 구매까지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해당 사이트는 붉은 글씨로 '사고대비, 개인판매 제한 제품'이란 경고 문구를 띄워 놓았지만 정작 독극물을 구매하는 데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화학물질관리법에 따르면 유해화학물질을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경우 구매자의 실명·연령 확인 및 본인 인증을 하도록 정하고 있다.

연구용 시약 판매 사이트엔 붉은 글씨로 '사고대비, 개인판매 제한 제품'이란 경고 문구가 있었지만 정작 독극물을 구매하는 데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해당 홈페이지 캡처연구용 시약 판매 사이트엔 붉은 글씨로 '사고대비, 개인판매 제한 제품'이란 경고 문구가 있었지만 정작 독극물을 구매하는 데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해당 홈페이지 캡처
또 시약을 판매하는 자는 구매자에게 화학물질의 용도와 취급 기준을 '고지'해야 한다. '시험용·연구용·검사용 시약은 해당 용도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과 '취급 시 유해화학물질 취급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야 하는데, 규정이 명확하게 지켜지고 있지 않는 셈이다.

다만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선 독극물 구매가 그나마 까다로운 것으로 파악된다. 50년간 화학약품을 취급했다는 한 화학용품 취급점 주인은 "여기 있는 물질은 허가 없이 개인에게 팔지 않는다"며 "팔았다간 큰일 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거래하는 회사에서 와도 '외부인 출입 관리대장'에 인적사항을 쓰게 한다"고 했다.

또 다른 화공약품 판매관계자는 "허가받은 거래 공장에만 물질을 납품한다"고 말했다. 개인에게도 판매하느냐고 묻자 "그런 건 인터넷 업자들이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 "구매자 신분 검증 철저히 하는 등 판매 단계 개선 필요"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하지만 온라인상에선 독극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특정 독극물 명을 검색하면 구매를 안내하는 SNS 게시글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생명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화학물질에 규제가 필요하단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이번 '생수병 사건'처럼 독극물로 인한 범죄는 끊임 없이 이어지고 있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살인 사건에서 독극물이 사용된 경우는 131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극물을 이용한 극단적 선택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보건복지부의 '자살예방백서'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3872명이 '기타화학물질'을 사용해 세상을 등졌다. 이 중 2015년의 경우 522명이라는 가장 많은 사망자를 기록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화학물질의 인터넷 판매를 원천 차단하기란 어렵다고 분석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필요에 의해 화학물질을 구매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며 "판매 자체를 막는 규제 일변도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대신 구매자의 신분 확인을 더 철저히 하고 인증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등 판매 단계에서의 보완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온라인 판매를 할 때 구매자의 신분 확인 절차를 강화하는 등 인터넷 판매자들이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한 관계자는 "흔히 자살 도구로 인식되는 번개탄의 경우,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어디에 사용할지'를 물어보도록 하는 '번개탄 판매 개선 사업'을 하고 있다"라며 "화학 물질 판매를 할 때도 구매 목적을 확인하는 캠페인 등 방법이 있을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안락사 약물도 인터넷으로 구매를 할 수 있는데 현재 재단은 이를 자살 유발 정보로 보고 국내외 인터넷 사업자와 협의 통해 삭제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도 대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환경부 제공환경부 제공
정부는 제도 개선을 고민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화학물질이 워낙 일상생활이나 생활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물질이다 보니 온라인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건 해외와 비교해도 과도한 규제"라며 "유독물질을 오용하는 개인적 일탈까지 막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여러 의견을 듣고 있고 다른 제도들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생수병 사건'에 사용된 독극물 이름이 구체적으로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모방범죄를 우려하는 지적도 나왔다. 이덕환 교수는 "생수병 사건에 나온 화학물질은 평소 개인들이 구매할 일이 거의 없는 화학물질"이라며 "언론이 해당 물질을 강조하는 바람에 그 이제 또 하나의 범죄 수단이 등장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생수병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은 강씨에게 살인·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강씨의 범행 과정과 동기를 추정할 수 있는 메모 여러 장을 회사 사무실에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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