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합니다.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거리에서, 가정에서 오늘도 일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쉼없이 조금씩 세상을 바꾸는 모든 노동자에게, 일터를 찾은 나와 당신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판깔아봅니다. [편집자 주]기존 사회안전망 밖에 놓인 플랫폼 종사자, 프리랜서를 지원하겠다며 '공제회 설립'이라는 새로운 실험에 도전한 한국노총, 성공할 수 있을까?
한국노총은 지난 26일 (재)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이하 한국노동공제회)를 출범하고, 생활안정을 위한 각종 공제사업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 집중 투자한 공제회, '홀로서기'까지 성공할 수 있을까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윤창원 기자이번 한국노동공제회는 최근 한국노총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대표 사업이다. 한국노총 김동명 위원장이 새로운 지도부로 선출될 때 공약으로 내걸었고,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을 역임했던 김동만 전 위원장이 공제회 초대 이사장을 맡아 사업비를 마련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어렵게 설립된 이번 공제회 가입 대상은 비단 플랫폼 종사자, 프리랜서 뿐 아니라 사회보험 등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단기계약직 등 불안정, 비정형 노동자 누구나 해당된다.
공제회의 첫 사업은 '목돈 만들기' 지원사업이다. 공제회 회원이 시중 적금상품에 새로 가입하면 납입금액 월 10만원에 대해 연간 최대 24만원의 이자를 지급한다. 사전 수요조사에서 대리기사 등에서 선호도가 가장 높았던 사업으로, 금융산업 노사가 공동출연한 '금융산업공익재단'이 연간 30억원씩 지원한다. 이어 내년이면 공공기관 노사가 마련한 '공공상생연대기금'을 활용해 건강검진 등도 진행할 예정이다.
한국노총 플랫폼노동공제회설립추진단 송명진 본부장은 "본래 주요 사업으로 보험도 고려했지만, 노조가 보험업을 직접 영업할 수 없어 단체로 보험을 가입해야 하기 때문에 충분한 인원이 모인 뒤에 다시 추진할 것"이라며 "재원의 여유가 생기면 소액 융자 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시도하겠다"고 소개했다.
공제회가 마주할 첫 문제가 바로 이러한 돈 문제다. 첫 출발에는 한국노총 노조원들이 6억여원을 모금했고, 금융산업공익재단 등의 도움도 구했다. 사업이 본궤도에 오를 때까지 한국노총은 정부, 지자체나 공익재단 등의 지원을 구할 계획이다.
하지만 모두 일시적인 미봉책일 뿐, 결국 공제회원의 회비나 상호부조, 그리고 자체 수익사업을 활용해 홀로서기에 성공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노총으로서는 아직까지는 안정적으로 재원을 마련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송 본부장은 "앞으로 재원과 관련해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은 것도 현실이지만, 이제 막 출범한만큼 초기에는 사회적 지원이 불가피하다고 본다"며 "정부, 지자체가 하는 정책 사업과 연계하는 등 사업 다각화를 통해 사업비는 마련할 수 있다고 보는데, 자칫 지나치게 정부 등에 의존해 노동자가 스스로 서로를 돕는 자조 조직의 성격이 흔들리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노동법·사회안전망 '사각지대' 갇힌 플랫폼 종사자·프리랜서, 공제회가 대안 될까
이러한 어려움에도 한국노총은 공제회를 추진한 이유에 대해 당장 기존의 사회안전망에 들어가기도, 노동조합을 조직해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운 사람들의 권익을 '지금 당장' 보호하기 위한 보완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스마트이미지 제공대다수 플랫폼 종사자 등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기존의 노동법 체계나 사회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정부와 국회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아서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 발의로 '플랫폼종사자법'이 올해 발의됐다. 아울러 정부는 '전국민 고용보험'을 추진하는 등 사회보험 대상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는 새로운 법을 따로 만들지 않고 기존의 노동법, 사회보험 체계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별도의 법·제도를 만들면 자칫 플랫폼 종사자 등이 기존의 노동법 등을 적용받지 않는 '회색지대'에 계속 남겨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반면 경영계는 기존의 '낡은' 규제를 적용하면 새로운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족쇄가 될 뿐이라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이호근 교수는 "플랫폼 종사자를 노동자로 볼 수 있느냐는 문제는 해외에서도 논쟁 중인 사안으로, 국내에서도 20여년 넘게 치열하게 논쟁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며 "기존의 노동법 체계에 있는 '근로자'의 개념을 그대로 활용할 것인지, 노동법의 외연을 확대할 것인지, 반대로 노동법을 최소한만 남기고 민법의 자율적 영역에 둘 것인지, 아예 새로운 법을 제정할 것인지 등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이와 관련된 대법원 판결 등이 내려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배달, 운송 업계에 치우쳤을 뿐, 다른 영역은 여전히 답을 찾기 어렵다"며 "새로운 노무 공급 형태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법적 보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다양한 접근법이 필요하고, 공제회도 그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한국노총이 공제회를 추진한 또 하나의 이유는 플랫폼 노동 등은 '노동자 결집-노조 설립-교섭 진행'이라는 노동계의 전통적인 접근 방식만으로는 접근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송 본부장은 "플랫폼 노동자나 프리랜서는 기업에 소속되지 않다보니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나 직업의식을 갖기 어렵고, '잠깐 하다 그만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며 "공제회에 가입하고, 직업 교육을 제공받고, 새로운 가입자와 교류하는 과정 등이 이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할 밑바탕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 전선 일탈? 깃발 꽂기?…"새로운 노동에 대한 대응, 공제회로 수렴되면 안돼"
행진하는 민주노총 참가자들. 연합뉴스하지만 새로운 노무형태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연장선에서, 노동계 일각에서는 한국노총이 공제회를 추진하는 배경과 파장에 대해 우려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우선 한국노총이 플랫폼 종사자, 프리랜서를 기존 노동법 체계에 포섭하기를 포기하고, 노동자가 아닌 별도의 보호장치가 필요한 '예외'로 인정하기로 입장을 바꾼 것이냐는 의심도 제기된다.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고 노조를 세우려는 노동계의 해법에 필요한 동력이 자칫 공제회에 소모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한편 최근 민주노총에 제1노총 지위를 뺏긴 한국노총이 아직 노조 조직화가 이뤄지지 않아 '무주공산' 상태인 플랫폼 종사자 등을 대상으로 접촉면을 넓히면서 일찌감치 '깃발 꽂기'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송 본부장은 "근본적으로 한국노총도 이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교섭체계를 만들어 근로조건, 복지 등을 결정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고, 관련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며 "다만 노조 조직에 성공한 사례도 있지만, 최근 노조를 조직하는 사례가 더 늘어나지 않고 있는 현실을 냉철하게 보고, 노조를 조직하기 위한 새로운 계기와 자원을 마련해야 할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비단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뿐 아니라 최근 노동자들의 요구는 기존의 노조에서 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 다양한 지점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공제회, 노조를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조직을 만들어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태도도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신여대 법학부 권오성 교수는 "근로자로 인정될 여지가 충분한 플랫폼 노동자도 있지만, 웹툰작가나 오픈 클라우드 워커 등을 기존의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로 곧바로 적용되기는 매우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며 "이런 영역에서는 공제회 모델이 사실상 거의 유일한 해법에 가깝기 때문에 충분히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권 교수는 "다만 앞으로 당연히 근로자로 인정받아야 할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노총의 대응이 그저 공제회로 수렴될 뿐이라면 매우 우려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노총이 가입된 노동자만을 대표하는 노조를 넘어 더 넓은 영역을 포섭하고 사회적 역할을 다하겠다는 측면에서 공제회를 운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