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작아지는 대한민국을 피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덜 작아지도록, 더딘 속도로 오도록 대비할 수는 있습니다. 초저출생은 여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녀 모두의 일입니다. 국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개인, 모든 세대의 일입니다. CBS는 연중기획 '초저출생: 미래가 없다'를 통해 저출산 대책의 명암을 짚고, 대한민국의 미래와 공존을 모색합니다. ▶birth.nocutnews.co.kr
박종민 기자 폭발적인 집값 상승세가 급기야 저출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2명 정도 낳을까" 하는 고민이
"1명도 벅차다"는 깨달음으로, 또는
"아예 낳지 말자"는 결심으로 이어진다. 안정적인 '내 집' 없이 자녀는 '언감생심'이란 판단 끝에 초저출생 시대가 이어진다.
"아이 포기하니 84㎡→59㎡ 목표 낮아져…차라리 홀가분"
결혼 2년 차를 맞이한 김유미(39‧가명)씨의 비출산 결심에 결정적인 마침표를 찍어준 것은 '집값'이었다.2019년 하반기 부산 강서구에서 전세냐 매매냐를 고민하다가 '정부 정책을 믿고 전세로 시작한' 김씨 부부는 "떨어지겠지" 하며 눈여겨보던 옆 동네(수영구) 아파트가 같은 기간 매매 기준 5억 원대에서 10억 원을 넘겨버리는 등 초유의 상승세를 지켜봐야만 했다.
김씨는 "양가 도움 없이 전세살이를 시작했는데, 지금 집값은 '이게 대체 뭔가' 싶을 정도"라며 "'딩크(Double Income No Kids,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가 되기로 결심하니, 그래도 둘이 벌면 집 한 채는 산다는 마음으로 버텨본다"고 말했다.
'전세 말고 매매를 할 걸' 하는 후회도 해봤지만, "아이를 포기하면서 내 집 마련 목표치를 84㎡에서 59㎡ 타입으로 바꾸니, 이제는 차라리 홀가분한 것 같다"는 설명이다.
맞벌이 중인 김씨는
"덜컥 임신이라도 하면 출산 후 1명은 1년은 쉬어야 할 텐데, 입은 늘어나고 수입은 반토막, 집값은 2배가 되는 것"이라며
"(신혼부부) 특별공급도 아이 1명으론 어림없다는데, 그냥 둘이 열심히 돈 모으고 투자하면서 사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출생' 억누르는 '주거비' 부담
클릭하거나 확대하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실제 신혼부부의 주거비 부담 상승이 가구의 출산 기피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다수 존재한다.
육아정책연구소 이재희 부연구위원과 한국감정원(현 한국부동산원) 박진백 책임연구원의 '주택가격과 주택공급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 서울시를 중심으로'(2020년)에 따르면, 연구 결과 아파트가격과 합계출산율은 음(-)의 관계를 보였다.
합계출산율은 특히 최근 3년간 주택가격 추이에 강한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최근 3년간 평균 주택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면 출산을 기피할 유인이 더 커진다는 것이며, 지금 주택가격이 상승하고 있다면 향후 3년간은 출산율이 더 감소할 유인이 있다는 설명이다.
초저출생 시대, 집값 부담이 자녀계획에 큰 변수가 되고 있는 가운데 자녀를 둘지 말지 갈림길에 선 이들은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저출산에 대응한 통합적 정책 방안'에 따르면, 한국개발연구원(KDI) 설문조사에서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가장 노력해야 하는 부문으로 응답자의 22.5%가 '주거문제 해결'을 꼽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했다.
신혼희망타운, 맞춤주택…'더딘' 공공물량
이에 따라 정부 역시 저출생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신혼부부 등을 지원 중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새로 만들어진 '주거복지로드맵'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다듬어진 '주거복지로드맵 2.0'에서는 △신혼희망타운 분양 10만 호, 임대 5만 호 포함 15만 호 입주자 모집 완료(2018~2025년) 등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앞서 주거복지로드맵(2018년), 신혼부부‧청년 주거지원방안을 거치며 목표 물량을 꾸준히 추가한 결과다.
하지만 2025년을 우선 목표 지점으로 삼은 현재,
결실은 아직 더디기만 하다. 신혼부부 특화형 공공주택단지인 신혼희망타운의 경우, 현재까지 전체 물량의 약 13%가량인 1만 9774호(분양 1만 6155호, 임대 3619호)가 입주자 모집 공고를 마친 상태다.
신혼부부, 생애최초(현재 혼인 중 또는 유자녀 가구로 자격 한정, 향후 1인가구 추가 예정), 다자녀 등 분양 주택 특별공급 물량(현재 공공분양에서는 전체 물량의 65%, 민간분양에서는 37~45%)의 경우 경쟁이 치열하다.
일례로 분양 정보 전문 분석업체 '리얼하우스'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공급된 아파트 특공 경쟁률이 10대 1 이상을 기록한 단지는 93개에 달했다. 이 중 신혼부부 특공이 49.2대 1, 생애최초가 118.99대 1, 다자녀가 10.6대 1의 평균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밖에도 △신혼부부 특화 건설임대‧매입임대 등 맞춤주택(임대) 40만 호(2018~2025년) △다자녀가구 공공임대 3만 호(2020~2025년) △다자녀가구 공공임대(매입, 전세)의 경우 3만 호는 임대주택이란 점에서 보편성의 한계를 지적받는다.
이런 가운데
혼인 건수는 매년 꾸준히 줄어든다지만, 지난 5년 동안에만(2016~2020년)
125만 건이 넘었다.
신혼부부의 주택 수요가
압도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집값 자체가 내려가는 것만이 해답"
공적 공급이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동안 시장에서 집값은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
결국, 이러한 직접적인 공적 공급보다도 전반적인 집값 상승 저지로 '내 집 마련'의 기회를 달라는 게 여러 '예비 부모들'의 요구다.
자녀를 낳을지, 낳는다면 1명일지 2명일지, 아직 '긍정적인 고민' 상태에 있는 이들은 더욱 그렇다.
결혼 3년 차인 이소희(30‧가명)씨는 "소득기준이나 자녀 수 같은 여러 조건을 고려했을 때, 신혼희망타운이나 다자녀임대 등은 우리와 맞지 않는 것 같더라"며 "평범하게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부 같은 경우는 전반적인 집값 자체가 내려가는 것만이 해답일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아득하다. 신혼부부가 아이를 낳고 살만한 집 자체가 값비싸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중형 아파트(전용 62.8㎡ 이상 95.9㎡ 미만 기준) 매매가격지수는 지난 5년간 꾸준한 상승세를 보였다.
지수(2019년 1월=100)는 2018년 85.8에서 2019년 8월 94.0, 이듬해 100.2에서 지난해 110.4까지 올랐는데, 올해 8월 기준으로는 129.0까지 치솟은 상태다.
이씨는 "키우면 어떻게든 키우게 돼 있다는 게 아이라지만, 제대로 집 하나 장만하지 못한 상황에서 선뜻 결심이 서지 않는다"라며 "교육도, 건강도, 다른 삶의 질도 너무 중요한데 집 문제부터 꼬이니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정부가 다자녀 기준을 완화(3명→2명)하는 등 변화가 있다고는 하지만, 꼭 임대주택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고서야 와닿기가 힘들지 않겠나"라며 "집값이 이렇게 '미친' 상황에서 나만 좋자고 뭔가를 선택하기가 두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