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작아지는 대한민국을 피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덜 작아지도록, 더딘 속도로 오도록 대비할 수는 있습니다. 초저출생은 여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녀 모두의 일입니다. 국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개인, 모든 세대의 일입니다. CBS는 연중기획 '초저출생: 미래가 없다'를 통해 저출산 대책의 명암을 짚고, 대한민국의 미래와 공존을 모색합니다. ▶birth.nocutnews.co.kr
20대( •́ ̯•̀ ) 집도 돈도 없는데 어떻게 결혼하죠?
"집도 돈도 없는데 어떻게 결혼하고 자녀를 낳겠습니까."올해 초 한 금융기업에 취업한 홍모(28·남)씨는 '자녀 계획이 있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반문했다. 홍씨는 결혼을 전제로 3년간 만나온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아직 결혼과 출산은 먼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서울에서 월세 70만 원짜리 10평 원룸에 살고 있고, 이제 막 취업해서 모아둔 돈은 없는 상태"라며 "현실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결혼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홍씨는 정부의 저출산 대책에 대해 별로 와닿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출산하면 축하금을 준다는데, 이미 출산한 사람은 그만큼 결혼할 여유가 있고 양육할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며 "당장 집도 차도 없는 20대들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는 지원책인 것 같다"고 말했다.
홍씨를 비롯해 미혼의 20대들은 정부의 저출산 대책에 대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원을 다니는 유시영(27·여)씨 역시 정부의 대책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유씨는 "몇 년 걸리는 대학원을 마치고 이후 회사생활까지 생각해봤을 때, 아무리 강력한 대책을 내놓아도 자녀를 낳을 생각이 안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유씨는 "함께 대학원을 다니는 지인들이나 주변 친구들을 봐도 20대 후반이지만 결혼생활보다 개인적인 회사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기혼의 20대들은 정부의 출산 지원 제도가 당장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지만, 그것 때문에 자녀를 더 낳겠다고 생각했다는 사람은 드물었다. 정부 지원이 아이 양육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출산율을 더욱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말이다.
경기 수원시에서 9개월 자녀를 키우는 이모(29·여)씨는 "국민행복카드로 임산부 지원금 60만 원을 받아 산부인과 비용을 지불했다"며 "당장 경제적으로 직접 도움이 되니까 효과적이라고 느꼈다"고 밝혔다.
임신부는 국민행복카드로 단태아 60만 원, 다태아 100만 원을 지원받는다. 내년부터는 단태아 100만 원, 다태아 160만 원으로 지원금이 늘어난다.
하지만 이씨는 이후 자녀 계획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애초에 한 명만 낳을 생각이었다"며 "계속 직장을 쉬다가는 복귀하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정말 일하지 않고 아이만 키울 수 있을 정도로 완벽히 지원해줄 수는 없으니까 결국 직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점점 늦어질수록 압박감만 커진다"고 덧붙였다.
30대(•̀‸•́‶) 애 안 낳는 '딩크족' 이해돼
물류 회사에 다니다가
이직을 준비 중인 임모(30·남)씨는 2~3명의 자녀를 낳는 것이 꿈이다. 하지만 아직 자녀는커녕 결혼도 하지 못한 상태다. 임씨는 "38살에는 자녀를 낳아야 환갑 전에 성인 되는 것을 볼 것"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임씨는 정부의 저출산 대책 중 하나인 육아휴직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2013년 호주에 살았는데 그때 놀이터를 가보면 육아휴직하고 자녀랑 놀러 온 아빠들이 많았다"며 "한국에서는 여전히 남성들이 육아휴직을 쓰기 어려운 분위기인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임씨가 외국계 회사를 다닐 때 회사 내규로는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이 권장됐지만 한국의 직장 분위기상 눈치가 보여 다들 사용하지 못했다고 했다. 임씨는 "이렇게 출산에 대해 문화적인 것이 개선돼야 하는데 당장 몇 년 안에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또 "이렇게 분위기가 바뀌지 않으니까 주변에는 '딩크족(결혼만 하고 자녀를 낳지 않는 부부)'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 송파구에서
3살 딸을 키우고 다음 달 둘째를 출산할 예정인 김모(39·여)씨도 딩크족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했다.
김씨는 "나는 자녀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요즘 세대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게 이해가 된다"며 "현실적으로 특히 여성이 일하면서 아이를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여성들은 자기 경력을 쌓기 원하는데 아이 낳는 순간 그게 어려워진다"며 "나도 기존 풀타임으로 하던 강사일을 파트타임 쪽으로 바꿔서 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거주지마다 지원금이 크게 다르다는 점이 의아하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출산장려금이 구마다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다. 송파구는 지원이 많이 안되더라"며 "경기도만 해도 둘째 낳으면 100만 원 수준으로 지원하더라"며 아쉬움을 보였다.
실제로 임신육아종합포털 아이사랑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출산축하금은 첫째 20만 원, 둘째 40만 원, 셋째 50만 원, 넷째 100만 원, 다섯째 이상 200만 원 수준인데 강남구는 첫째 30만 원, 둘째 100만 원, 셋째 300만 원 수준으로 인근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차이가 컸다.
40대(•̀‸•́‶) 도움받는 '금수저' 아니면 출산 어려워
40~60대는 사회초년생이 부모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결혼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세 아들을 둔 정모(40·여)씨는 "금수저이면서 본인 월급은 적은 사람이 국가에서 가장 큰 지원을 받는 게 현실"이라며 "부모 혜택 없는데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돈 많이 벌면 오히려 국가 지원을 못 받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물려받을 집도 없고 돈도 없는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결혼하고 자녀 낳을 생각을 할까"라며 "결국 그러다 혼자 사는 쪽으로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씨는 자신도 세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더 큰 집으로 이사해야 하는데 정부가 대출을 조여 쉽지 않은 상태라고 토로했다.
조부모의 도움 없이 젊은 부모가 혼자 자녀를 양육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평가는 50~60대에서도 나왔다.
경기 광주에 살면서 20대 후반의 자녀가 있는 이지순(54·여)씨는 "자녀가 중소기업에 들어간 지 얼마 안됐다"며 "당장 집도 없는 상황에서 '왜 결혼 안 하냐'고 묻기도 민망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잘 사는 집안은 부모가 자녀와 함께 집에서 손주를 봐줄 수 있지만, 당장 내가 일을 관두고 그럴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정부가 몇 백만 원 지원금 준다고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직장도 탄탄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느냐"며 "결국 기본적으로 육아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지 지원금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경북 안동에 사는 최모(67·남)씨는 "지금 초등학생인 손주가 더 어렸을 때는 방학이 되면 종종 내려와서 놀다가 올라가기도 했다"며 "방학 내내 집에서 돌봐줄 수가 없으니까 와서 봐준 것"이라고 말했다.
"출산 복지 혜택에 만족" vs "먼저 결혼할 수 있도록"
그래픽=김성기 기자 인천 강화군에서 7개월 자녀를 키우는 김인경(22·여)씨는 정부의 출산 지원 정책에 대해 만족한다고 평가했다. 특히 거주 지역 지방자치단체가 다른 곳보다 지원금을 많이 준다는 점을 꼽았다.
김씨는 "인천시와 강화군에서 총 300만 원가량의 지원금을 받았고, '영양플러스'라는 제도로 이유식 할 때 쓸 수 있는 유기농 채소도 지원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강화군은 다른 엄마들 사이에서도 혜택이 가장 좋은 곳 가운데 하나로 소문이 자자하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지자체의 복지 덕분에 자녀를 더 낳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했다. 김씨는 "어렸을 때부터 외동은 외로울 것 같아서 더 자녀를 낳고 싶었다"며 "자녀를 낳을수록 복지 혜택이 커지는 점도 이런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출산을 위해서는 우선 청년들이 결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미혼인 이유정(32·여)씨는 "청년들이 자녀를 낳지 않는 것을 해결하고 싶다면 우선 결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며 "주변에서도 자녀 생각은 없다가도 결혼하니 계획이 생기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순히 자녀를 낳으면 지원해주기보다 먼저 결혼을 할 수 있도록 직장이나 주거 마련에서부터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