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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잔인한 법원의 시간…日강제동원 소송 어디쯤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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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최근 1심, 강제동원 손배시효 2012년부터 기산
'사법농단' 재판거래 의혹 대상되며 판결 확정 늦어져
10월 말 소멸시효 완성 가능성 커…연장입법 필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열린 '강제징용 소송 각하 판결 규탄 기자회견'에서 강제동원공동행동 관계자들이 손 피켓을 들고 있다. 이한형 기자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열린 '강제징용 소송 각하 판결 규탄 기자회견'에서 강제동원공동행동 관계자들이 손 피켓을 들고 있다. 이한형 기자
2021년 8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징용) 피해자들의 평균연령은 90세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정부가 2015년까지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조사한 강제징용 피해자는 14만여명 수준이었다는데, 현재 생존자는 10여명 남짓으로 추정됩니다.
   
오늘 법정B컷에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은 현재 어디쯤 와있는지 짚어보려 합니다. 대법원의 늦은 판결과 그 이후 하급심의 변칙, 일본정부와 기업의 노골적인 방해로 늘어지는 압류·추심 절차. 이 모든 것들이 강제동원을 그저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해방 이후로도 76년째 계속되는 현재의 문제로 만들고 있습니다.

▶ 2021.8.11. 서울중앙지법 민사25단독(박성인 부장판사) 강제동원 손해배상 1심 판결: 원고 청구기각
"법원조직법 제8조는 '상급법원 재판에서의 판단은 해당 사건에 관하여 하급심을 기속한다'라고 규정하고, 민사소송법 제436조 제2항은 '사건을 환송받거나 이송받은 법원은 다시 변론을 거쳐 재판하여야 한다. 이 경우에는 상고법원이 파기의 이유로 삼은 사실상 및 법률상 판단에 기속된다'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상고법원으로부터 사건을 환송받은 법원은 그 사건을 재판할 때 상고법원이 파기 이유로 삼은 사실상·법률상 판단에 기속된다. 다만 환송 후 심리과정에서 새로운 주장이나 증명이 제출돼 기속적 판단의 기초가 된 사실관계에 변동이 생긴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기속력이 미치지 않을 수 있다."

"대법원이 2012.5.24자 대법원 판결로 판시한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관한 법리는 파기환송심 및 재상고심에서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따라 그대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 할 것이므로, 원고들의 객관적 권리행사 장애사유는 2018.10.30.자 대법원 판결이 아닌 2012.5.24.자 대법원 판결로써 이미 해소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연합뉴스연합뉴스
지난 11일 강제징용 피해자 A씨의 유족들이 미쓰비시 마테리아루(전 미쓰비시광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재판부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유가 다소 어렵게 쓰여 있지만, 쉽게 설명하자면 민사상 손해배상을 제기했어야 할 시기가 이미 지나 기각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민법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는 가해자가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10년, 불법행위의 가해자와 그 손해를 피해자가 안 날부터 3년까지 보장됩니다. 일제강점기에 발생한 강제징용 불법행위는 당연히 10년이 훨씬 지났지만, 한일청구권 협정 등으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못한 '장애사유가' 있다고 인정됐습니다. 이 경우 '장애사유'가 없어진 날부터 손해배상 청구 시작점이 정해집니다.
   
그런데 그 '장애사유'가 언제 해소됐는지에 대한 판단을 두고 이번 재판부는 '2012년 5월 대법원이 강제노역 피해자들에 대해 최초로 손을 들어준 판결을 한 때'라고 판단한 겁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7년에 제기된 소송은 받아줄 수 없다는 게 결론입니다.
   
문제는 그 2012년 대법원 판결은 확정판결이 아니었고, 파기환송심과 재상고심을 거쳐 2018년이 돼서야 확정됐다는 겁니다.

2012년 5월 24일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씨 등 4명이 일본 신일청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처음으로 피해자 측 승소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시 쟁점은 강제동원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됐는지 여부였는데, 개인청구권은 소멸된 것이 아니라며 하급심의 패소 판단을 처음으로 뒤집은 겁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이어진 파기환송심도 대법원 결론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일본 기업이 또 상고를 해 2013년 8월 다시 대법원에 이 사건이 접수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려 2018년 7월 전원합의체에 회부되기까지 5년간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은 겁니다.
   
그 이유는 추후 '사법농단' 사태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상고법원 설치라는 특별한 목표를 위해 달리던 양승태 대법원장 이하 법원행정처가 2013년 임기를 시작한 박근혜 정권에 협력하는 과정에서 고의적으로 이 사건을 지연시켰다는 게 검찰의 수사내용입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양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에 대한 직권남용 1심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통상적인 경우라면 파기환송심에서 특별한 사정변경의 증거가 나오지 않은 이상 심리불속행(재판에서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것)으로 상고기각 판결이 유력했을 겁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5단독이 언급한 '환송판결의 기속력'이 바로 이러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2012년 대법원 판결이 2013년 겨울쯤이면 확정될 것이라 기대했을 피해자들로서는 미처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오랜 시간 재판 진행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지연된 이유도 상상 밖의 '재판 개입'이라는 사법농단 사태였던 것입니다. 기속력을 이유로 소멸시효를 계산해도 될 만큼 법원에 예측가능성, 신뢰성을 부여할 수 있는 사안인지 의문이 듭니다.
   
반면 광주고법은 2012년이 아닌 2018년 전원합의체 선고로 판결이 확정된 시점을 소멸시효 기산점으로 봐야한다며 아래와 같이 이유를 밝혔습니다.

▶ 2018.12.6. 광주고법 민사2부(최인규 부장판사) 강제동원 손해배상 2심 판결: 피고 항소기각
"2012년 대법원 판결은 환송판결로써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즉시 확정되지 않았다. 위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에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되는지 여부와 일본 기업이 배상 책임을 부담하는지 여부에 대해 여전히 국내외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청구권협정에 의해 과거 반인도적 불법행위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도 소멸됐다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했다."

"원고 등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2012년 대법원 판결이 선고될 무렵 이미 상당한 고령이었고, 그 지위나 교육 수준 등에 비춰볼 때 충분한 법률적 지식을 갖고 있다거나 적절한 법률적 조언을 받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또 2012년 대법원 판결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 것은 맞으나, 일본 기업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배상을 거부하면서 환송심과 재상고심에서 계속 법적 다툼을 벌였다. 이들이 새로 제출한 주장이나 증명에 따라 앞선 대법원 판결의 판단의 기초가 된 사실관계 등이 변동됨으로써 손해배상청구권이 다시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 대법원이 2018년 10월 30일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강제동원 피해자 등의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확정하고 청구권협정에 관한 해석을 명확하게 밝힘으로써, 그때부터서야 비로소 대한민국 내에서 원고 등과 같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었던 장애사유가 해소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결국 이같은 엇갈린 판단들은 대법원에서 다시 종합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2018년 전원합의체 선고와 어긋난 판결은 지난 6월에도 한차례 난 적이 있었는데요. 해당 판결은 당시 전합의 소수의견 논리를 그대로 이어받은 수준인 데다 일부 부적절한 내용과 태도 등으로 논란이 된 바 있어 2심에서까지 그 결론이 유지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한편 시급하게 다가오고 있는 진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확정 이후 민사상 손해배상 소멸시효를 계산하더라도, 오는 10월이면 3년을 맞는다는 겁니다. 특별한 입법적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10월 이후 추가로 제기되는 손해배상 소송은 시작부터 벽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이같은 상황 속 일본 정부와 기업의 압류·추심 방해, 재판 대응은 더 치밀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손해배상 사건에서 승소가 확정된 후 2019년부터 집행절차에 나선 사건은 3건인데, 아직 실제 배상으로 연결되지 못했습니다. 손해배상 금액만큼 일본 기업의 특정 자산을 묶어두는 압류의 효력은 발생한 상태지만, 압류결정의 확정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압류결정이 확정돼야 추후 절차로 넘어갈 수 있지만 일본 기업이 압류결정문을 송달 받기까지도 한참이 걸렸고, 이후 압류결정에 불복해 항고와 재항고도 진행 중입니다. 최근 피해자 측이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채권을 찾아 압류조치를 하면서 드디어 배상이 이뤄지는가 싶었지만, 해당 채권의 주인이 미쓰비시중공업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와 또 한참을 다투게 됐습니다.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수십년간 법원에서 개인적으로 피해구제를 호소하고 있는 상황. 잔혹한 법원의 시간을 정부와 국회가 함께 나서 끝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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