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집단 LAS 제공SF멜로를 표방하는 연극 '산책하는 침략자'는 기발한 설정, 흥미진진한 전개, 여운이 오래 가는 결말 등 삼박자가 척척 맞는 작품이다.
2018-2019년 초·재연 이후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산책하는 참략자'는 '재밌다'는 입소문 덕분에 2주간(8월 15일 폐막·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이어진 공연이 매진 사례를 이뤘다.
이 작품은 마에카와 토모히로의 동명희곡을 무대로 옮겼다. 전운이 감도는 작은 항구 마을을 배경으로, 외계인이 인간의 몸에 영혼처럼 침투한 후 가족·혈연, 소유, 구별 같은 '개념'을 수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무개념 외계인은 개념을 쌓아가며 조금씩 인간다워진다. 반면 특정 개념을 상실한 인간은 평소 모습을 잃고 딴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극중 신지(윤성원)는 3일간 실종됐다가 길거리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아내 '나루미'(한송희)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변한다. "실은 나, 외계인이야." 그의 고백처럼 신지는 빈 껍데기일 뿐이다. 그의 영혼은 외계인에게 점령당했다.
외계인은 '인간의 개념 수집'이라는 자기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한다. 나루미의 언니인 '아스미'(김희연)가 '가족·혈연'의 개념을 떠올리는 순간, 외계인은 이를 빼앗아 온다. 그러자 아스미는 평상시 가족을 끔찍하게 아꼈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나루미와 엄마를 냉대한다.
창작집단 LAS 제공또다른 등장인물 '마루오'(고영민)는 실업급여로 연명하는 실직자 창년이다. 재취업 걱정에 한숨 쉬고 푸념하는 게 일상인 그는 외계인이 '소유'의 개념을 빼앗자 오히려 '뭔가를 이루고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져 진정한 해방감을 맛본다.
이 작품의 백미는 결말이다. 개념을 차곡차곡 수집한 외계인은 신지의 몸에서 자신의 영혼을 거두려 한다. 하지만 그 순간 신지는 죽게 된다.
다급해진 나루미는 외계인에게 "나한테서 사랑의 개념을 가져가라"고 말한다. 자신이 사랑이라는 개념을 모르면 신지가 죽어도 슬프지 않을 테니까. 나루미로부터 사랑의 개념을 가져 온 외계인은 어떻게 됐을까.
남편에 대한 아내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된 신지는 갑자기 울음을 쏟아냈다. 반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결핍된 나루미는 그런 신지를 무덤덤하게 바라볼 뿐이다.
산책하는 세상의 모습을 퍼즐처럼 엮은 무대가 인상적이다. 이기쁨(창작집단 LAS 대표연출) 연출은 "관객이 장난감 세상 보듯, 다양한 인간 군상이 복닥거리며 만들어내는 이 기이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관망하듯 볼 수 있도록 했다"고 했다. 이번 시즌은 창작집단 LAS와 두산아트센터가 공동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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