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이 바닥에서 20년 버텼단다"…연극 '분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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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분장실'

대학로 자유극장서 9월 12일까지

배우들의 배역에 대한 갈망과 배우 삶의 애환 풀어내
서이숙, 정재은, 배종옥, 황영희, 손지윤 등 연기파 캐스팅

T2N미디어 제공T2N미디어 제공
대학로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분장실' 무대는 분장실으로 꾸며져 있다. 극중 무대 위에서 안톤 체홉의 '갈매기' 공연이 한창인 가운데 무대 밖 분장실도 분주하게 돌아간다. 배우 A와 B는 화장대 앞에 앉아 분장을 고치고, C는 막간을 이용해 갈매기의 주인공 '니나' 역 대사를 반복 연습한다.

그러나 활기찼던 분장실은 D가 등장하면서 '다툼의 공간'으로 바뀐다. C의 언더스터디이자 프롬프터(배우에게 대사·동작을 일러 주는 사람)인 D는 "원래 니나 역은 자기 것"이라는 망상에 시달린다. 급기야 "언니(C) 나이에 니나는 힘들고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쏘아붙이며 배역을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연극 '분장실'은 여성 배우 4명이 극을 이끌어간다. 지난 4월 타계한 일본 극작가 시미즈 쿠니오(1936~2021)의 대표작을 무대로 옮겼다. 1977년 일본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한국을 비롯 유럽에서도 꾸준히 공연되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사실 A와 B는 귀신이다. A는 군사독재정권 시절 배우로 살았지만 주로 프롬프터를 하거나 남자 단역을 맡았다. "함께 공연을 준비하던 동료 남자배우가 걸핏하면 끌려갔기 때문"이다. 땜방으로라도 무대에 설 수 있어 감사했지만 여자 역을 맡지 못한 아쉬움은 죽어서도 없어지지 않았다.

B는 생전 한 번도 연기하지 못했던 니나 역에 대한 갈망이 크다. 분장실 귀신인 A와 B는 이제껏 연기했던 혹은 연기하고 싶었던 고전의 주요 배역을 떠올리며 자신들만의 역할극을 펼친다.

T2N미디어 제공T2N미디어 제공
이 작품은 배우의 배역에 대한 갈망은 물론 배우로 사는 것의 애환을 녹여냈다.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좇아가다보면 '니나' 역을 놓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볼썽사납기 보다는 공감으로 다가온다.

어느새 마흔을 훌쩍 넘긴 C가 푸념하듯 내뱉는 대사가 특히 그렇다. C는 "(나이를 먹으니까) 역할은 줄고 생활인으로도 빵점이야. 무대에 자신을 갈아내는 건 젊을 때나 가능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배우로서의 삶을 놓을 생각은 전혀 없다. 주변에서 "그 나이에 무슨 니나 역이냐"며 대놓고 비아냥거려도 끄덕없다.

"배우로 사는 건 잔인해. 여배우는 포기해야 할 게 많지. 하지만 단지 젊다고 니나 연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경험이 축적되어야 진짜 배우가 되는 거야. 서 있을 힘이 있다면 무조건 연기할 거야. 이 바닥에서 20년 버틴 게 무슨 의미인지 알기나 해? 그 지독한 시간이 내 몸에 축적되는 거라구. X같은 축적." (극중 C의 대사)

연기파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극의 재미를 돋운다. A역은 서이숙과 정재은, B역은 배종옥과 황영희, C역은 손지윤과 우정원, D역은 지우와 이상아가 더블 캐스팅됐다. 극중극 '맥베스', '갈매기', 세 자매' 등 고전 명작의 주요 장면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묘미다. 오는 9월에는 남저 배우 버전을 선보인다.


"배우는 평생 기다리고 준비하는 직업이야", "우린 배우잖아요." 배우로서 자부심이 묻어나는 극중 대사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실제 출연배우들이 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9월 12일까지.T2N미디어 제공T2N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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