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사망과 관련해 교내에 붙어있는 대자보. 임민정 기자 폭염 속 에어컨 안 나오는 복도서 마스크 쓰고 근무
지난달 26일 서울대학교 95동 기숙사 휴게실에서 청소 노동자 이모(59)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 퇴근 시간이 지났지만 이씨는 귀가하지 않았다. 가족 중 한 사람이 밤 10시에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쓰러져 있는 이씨를 발견했다.
이씨가 떠난 자리 그는 그곳에 없었지만, 또 다른 노동자들은 같은 일상을 반복 중이다.
13일 아침 8시 반 어느 기숙사에서 만난 노동자 A씨는 밤사이 기숙사에서 나온 쓰레기를 정리해 처리장으로 옮기는 중이었다. 100ℓ 분량의 쓰레기 봉투 2개, 종이가 담긴 마대자루(특수 규격 봉투) 1개를 수레에 싣고 플라스틱 쓰레기가 담긴 100ℓ 짜리 검은색 비닐 봉투는 바닥에 끌면서 한 손으로 겨우 수레를 밀었다.
기숙사에서 90걸음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쓰레기 처리장으로 가는 동안 수레는 균형이 안 맞아 비틀거렸고, 바퀴는 덜컹거리며 위태롭게 자갈 길을 달렸다.
A씨의 근무지는 구식 건물이기에 복도에 에어컨 시설이 없다. 노동자들은 코로나19 상황 이후 폭염이 찾아와도 마스크를 벗을 수 없다. 바라보는 것 만으로 숨이 막혀왔다. 하지만 A씨는 오히려 담담했다. "여름인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유족과 학교는 사망한 이씨의 하루 노동 분량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민주노총 일반노조는(이하 노조) "고인이 매일 100ℓ 짜리 쓰레기 봉투를 6~7개씩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실제 청소 결과 100ℓ 짜리 봉투가 2개 이내로 발생한다고 반박했다. 노동 강도를 정확히 알아야 고인이 겪었을 실제 상황을 추론할 수 있고, 산업 재해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이씨는 정원이 196명인 기숙사 건물 관리를 홀로 맡으면서 지나치게 많은 업무량과 상사의 부당한 지시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는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이씨의 죽음을 '서울대로부터 부당한 갑질과 군대식 업무 지시를 받아 발생한 산재 사망'이라고 규정했다.
청소노동자 이모씨가 숨진 기숙사 주변 곳곳엔 학생들이 쓴 대자보가 붙어있었다. 한 대자보엔 "배달 음식이 담긴 플라스틱 통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다음 날 깨끗하게 치워져 있는 것은 마법이 아니다"라며 "이렇게 대학 안에서 우리의 삶은 수많은 노동자의 돌봄에 기대어 있는데 정작 우리는 노동자의 삶을 돌아보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담겼다.
학생들의 포스트잇(메모지)도 자리했다. "청소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억하겠다"란 대자보 곁엔 "가까운 곳에서 다정한 모습으로 항상 웃으며 근무하시던 이 선생님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청소노동자의 죽음은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타살이다"란 글귀가 포스트잇에 담겨 붙어있었다. 학생들은 청소노동자를 선생님으로 호칭했다.
서울대에서는 2019년 8월에도 공과대학에서 근무하던 60대 청소노동자가 한여름 에어컨과 창문조차 없는 휴게공간에서 사망한 적이 있다.
학생들 "처우 개선해야 한다"면서도 정치적 이용은 경계
서울대학교 관악학생생활관(기숙사)의 쓰레기장 모습. 임민정 기자 이날 서울대 교정에서 만난 재학생들은 청소노동자 사망에 대해 마음 아파하면서 처우 개선 필요성을 한 목소리로 강조했다. 기숙사에서 생활 중인 공대생 김모(19)씨는 "기숙사에 생활하면서 청소하는 아주머니를 뵙는다. 이런 일이 있었단 건 뉴스 기사를 보기 전까지 몰랐다"고 안타까워 했다. 자연과학대학 신입생 김모(19)씨는 "(죽음에 대해) 확실히 애도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며 "정확히 어떤 처우를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근무 중 돌아가셨으니까 '갑질'이 있었는지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모(22)씨는 "150명이 넘는 기숙사를 한 명이 관리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 한다"며 "행정노동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이니 지금이라도 인력을 확충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자연대 2학년 학생 허모(22)씨는 "상하차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식당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갑'의 위치라기보다 '을'의 위치에 있는 일을 해보니까 알겠더라"면서 "그런 분(청소노동자)들 같은 경우는 힘들어도 위에서 자르면 그만이니까 개선에 대해서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기숙사생 이모(23)씨도 "기숙사 한 동에 한 분이 담당하시니까 혼자 하는 건 많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명이 나눠서 하는 쪽으로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한다"고 답했다.
청소노동자의 죽음이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이용돼선 안 된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기숙사생 김모(19)씨는 "정치권이 나서야 문제가 커지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정치인들이) 특정 사건에 대해서만 분노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애도하고 사실 확인을 위해서 찾아왔다고 했지만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많은 사람을 데리고 오는 것은 특권처럼 보였다"고 했다.
자연과학대생 이모(22)씨도 "정치가 실질적인 움직임을 발휘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정치적인 움직임에만 그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청소노동자가 숨진 서울대 기숙사 건물엔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1일엔 이재명 경기지사도 고인이 담당했던 서울대 925동 기숙사를 직접 찾아 유족을 만났다. 이틀 뒤엔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가 청소노동자가 일하던 생활관을 찾았다.
청소노동자 이모(59)씨가 숨진 채 발견된 서울대학교 기숙사 건물. 임민정 기자 한편 서울대 오세정 총장은 13일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과 관련, 논란이 된 뒤 사의를 표한 구민교 학생처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구 전 처장은 기숙사 청소노동자의 사망 사건을 두고 "피해자 코스프레", "역겹다" 등의 글을 써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오 총장은 "고인의 산업재해 신청과 관련해 성실하게 협조할 것"이라며 "인권센터 조사 결과에 따라 미비한 부분이 발견되면 적극적으로 조치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노조는 오 총장의 발언에 대해 성명을 통해 "서울대 인권센터를 통해 '셀프조사'하겠다는 입장에 반대한다"며 유감을 피력했다.
노조는 "페이스북에 2차 가해 글을 남겼던 구민교 교수(전 학생처장), 고인의 근무지 책임자였던 관악학생생활관 관장 노유선 교수가 운영위원회 운영위원으로 있는 인권센터라서 더욱 문제"라며 "진정성과 의지가 있다면 노사 공동조사단(노동조합+학교+국회 등 중립적인 제삼자)을 구성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항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