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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직장 내 괴롭힘' 신고했더니 '부당 인사'로 보복한 公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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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지자체장 이사장인 충북테크노파크…5달 만 '견책' 의결
가해자 퇴사 후 急 타 팀 발령…직급도 팀장→팀원 '강등'
지노위·중노위 '부당 인사' 인정에도…사측, 행정소송 제기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지방자치단체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공기관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내부자를 상대로 '부당 인사'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당 기관은 경징계 의결 후 가해자가 퇴사하자 신고자를 급작스럽게 타 부서로 발령 낸 것으로 파악됐다. 직급도 팀장에서 팀원으로 '강등'된 피해자는 "보복성 인사"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10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충북테크노파크는 지난해 4월 중순 B 부서 팀장으로 근무하던 A씨를 보직해임하고 C 부서 팀원으로 임명했다. 충북테크노파크 측은 통상적 인사라고 해명했지만, 실상 '직장 갑질' 신고에 따른 '낙인'이 작용한 결과라는 게 A씨의 주장이다.
 
A씨는 지난 2008년 대리로 입사해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왔다. 지난 2018년에는 B 부서팀장으로 임명돼 인사 당시 2년간 충실히 근무해온 상황이었다. 매년 4월마다 찾아오는 정기 인사였지만, A씨가 사측의 '보복'을 직감한 데는 석연치 않은 배경이 있었다.
 
사건은 지난 2019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B 부서가 속한 상급 조직의 D 단장을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사측에 신고했다. D 단장은 2018년 B 부서의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편애하는 부서와 인원을 임의로 바꿔치기 하려다 좌절되자, 지속적으로 욕설을 하는 등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파악됐다.
 
D 단장은 A씨가 단둘이 면담하는 자리에서 부적절한 인사 개입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자 "내가 부원장인데, 직장생활 30년 만에 이런 일은 처음이야" 등 소리를 지르며 행패를 부린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못해 A씨에게 사과를 한 그는, 실수인 척 계속 험한 말을 뱉거나 업무 상 A씨를 일부러 배제하는 방식으로 '은밀한' 괴롭힘을 일삼았다.
 
매주 진행되는 주간 업무회의에서 B 부서 관련사안을 두고 A씨를 외면한 채 팀원에게 질의하는 것은 예사였다. 2019년 정기인사 당시 원장은 A씨의 업무 성과를 높게 평가해 '특별 승진'을 거론하기도 했지만, D 단장은 "아직 때가 아니다"라며 A씨와 B 부서의 실적을 일부러 폄하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B 부서가 진행하고 있던 '스마트 특성화 사업'도 다른 부서로 넘기라 독촉했다. 막상 업무가 이관되자 원장은 본인의 허락도 없이 임의로 사업을 넘겼다며 A씨를 꾸짖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 앞에서는 말이 없다 팀원들에게만 그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일종의 '뒷담화'도 이어졌다.
 
연합뉴스연합뉴스
이에 D 단장에게 장문의 메일을 보내 자제를 호소하기도 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A씨는 사내 고충처리시스템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기에 이르렀다.
 
사측은 신임 원장이 취임한 같은 해 12월에야 정식 조사에 착수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지난해 1월, 1차 조사위원회는 D 단장의 가해사실을 인정하고 '중징계'를 권고했다. 하지만 이내 '감경'이 논의됐고, 2차 심의위원회는 '감봉'으로 D 단장에 대한 징계수위를 낮췄다. 이마저도 3차 인사위원회에서는 한 단계 더 감경한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재단 인사위원회는 신고 다섯 달 만인 지난해 3월 11일 D 단장에 대한 '견책' 징계를 의결했다. 신고가 처리되는 수개월 간 A씨가 요청한 '피해자-가해자 분리'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한 그는 '적응 장애' 소견을 받았다. 결정 공문을 받기까지 진행과정에 대한 어떠한 통보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설상가상 징계처분 통보를 받은 지 2주도 안 돼 D 단장은 회사를 제 발로 나가 버렸다.
 
사측은 가해자의 퇴사 나흘 만인 지난해 4월 A씨가 몸담아온 B 부서의 명칭을 변경하고 업무 일부를 타 부서로 이관했다. 회사가 내세운 표면상 명목은 '조직 개편'이었다. 하루 아침에 A씨는 갑작스럽게 C 부서 팀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입사 이후 10여년간 실무자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성격의 업무였다.
 
A씨는 D 단장에 대한 징계의결 전 자신이 원장에게 '신속한 처리'를 촉구한 문자메시지가 인사와 연관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인사대상자 중 팀장 직에서 팀원으로 직급이 바뀐 사람 역시 A씨 한 명뿐이었다. 보직 해임되면서 자연히 관련 수당도 사라졌다.
 
사측은 A씨의 항의에 "재단의 이사회 서면 의결을 거친 것으로 원장의 고유한 권한 행사"라며 "재량권의 일탈이나 남용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A씨는 "사측은 팀장에서 팀원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자주 있었다며 인사명령이 정당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경우 대부분은 징계성으로 이뤄진 것이지, 업무상 필요성과는 관계가 없었다"고 말했다.
 
보직수당보다 더 많은 '시간 외 근무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사측의 주장에 대해선 "보직수당은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반면 시간 외 근무수당은 비(非)고정적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인사 이후 보직수당보다 많은 시간 외 근무수당을 수령했단 사유만으로 생활상 불이익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충북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해 9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지노위는 "사용자는 조직개편에서 팀 명칭 면경 및 업무를 조정한 것이 정부 정책사업 등에 대한 부서업무 명확화를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이에 대한 객관적 사유나 필요성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A씨만 유일하게 팀장에서 팀원으로 인사명령을 하면서 의사결정 과정이 합리적으로 이뤄졌다는 입증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사측이 주장하듯) 최근 5년간 유사사례가 11건 있었다는 사유만으로 인사명령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인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보직 수 제한'을 들어 일부 직원이 팀장급으로 승진하면, 팀원으로 이동하는 팀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한 사측의 주장도 타당치 않다고 봤다. 지노위는 "이 사건 인사명령 후 3개 팀의 팀장을 공석으로 뒀다 몇 달 후 (A씨가 팀장이었던) B 부서 팀원을 팀장으로 임명하고 나머지 2개 팀장 직위는 현재까지도 공석인 것을 볼 때 그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인사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원장이 A씨와의 대화에서 "이번에 조직(B 부서)이 없어진 건 네가 (신고) 이후 책임감 없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대목도 구체적 근거로 함께 언급됐다.
 
사전에 근로자와 협의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신의칙 위반'이라 보기는 어렵다는 사측의 입장도 기각했다. 지노위는 "해당 인사로 인해 매월 보직수당으로 받던 수십 만원의 실질적인 금전적 불이익이 발생했고 이는 A씨의 급여 액수를 감안할 때 통상 감수해야 할 정도를 벗어나 과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시간 외 근무수당으로 해당 손실이 만회된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고 봤다.
 
이에 따라, "사측은 신의칙 상 요구되는 사전 협의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부당 인사'라고 결론지었다.
 
사측은 불복해 즉시 재심을 청구했지만, 중앙노동위원회 또한 올 1월 같은 판단을 내렸다. 중노위는 "사측이 A씨에게 행한 인사명령은 부당인사"라며 "이 사건 인사명령을 취소하고 이로 인한 임금 차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중노위는 "재단의 팀장이 팀원을 관리하는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점, 재단 전체 근로자 중 팀장 등 직위를 부여받은 근로자는 소수인 점, A씨가 팀장으로 재직한 기간 등을 고려하면 팀장 직에서 해제되며 상당한 정신적 부담이 있었을 것"이라며 "자존심이나 명예심 역시 크게 훼손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 사원으로 입사해 팀장에까지 이른 A씨의 근무경력을 고려할 때 "일반적 전보와 달리 실질적으로는 직책의 강등이 수반된다고 볼 수 있다"고도 했다.
 
사실상 사측의 '완패'지만, A씨의 싸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사측이 중노위를 상대로 재심판정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냈기 때문이다. 오는 16일 첫 변론기일이 열릴 예정이다.
 
A씨는 "저만 힘들면 모르겠는데, 저희 부서 팀원들이 승진에서도 손해를 보고 이유 없이 포상에서 배제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많이 답답했다"며 "사실 인사권은 폭넓게 재량권이 인정되는 개념이라 95% 정도는 보통 사측이 이긴다고 하더라. 승산 없는 싸움이 아닐까 해서 지노위에 구제신청을 할 때도 많은 고민을 했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소송으로 사측에) 트집을 잡히지 않으려고 근무시간 중에는 잠깐이라도 밖에 나간다던가 하는 일 없이 더욱 조심하고 있다"며 "중노위 판정 이후엔 마무리가 될 줄 알았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하루 빨리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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