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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전남 구례 수해 1년, 끝나지 않은 고통 "살게끔만 해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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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5일시장에서 국밥집을 운영하는 박경화씨가 키보다 높은 곳을 가리키며 지난해 섬진강 범람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최창민 기자

 

지난해 여름 기록적 폭우로 섬진강이 범람해 물바다가 됐던 전남 구례 지역은
1년이 다 되었지만 여전히 수마가 할퀸 상처로 신음하고 있다.

집중호우에 만조가 겹친 데다 댐에서 방류한 물이 만나 제방을 넘었다. 전남 구례 5일장 한복판에 위치한 수구레 국밥집 주인 박경화(70·여)씨는 키보다 높은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1년 전 물이 어디까지 차올랐는지를 설명했다.

"그날이 장날이었어요. 새벽부터 나와 준비하고 있는데 옆 가게에서 물이 제방을 넘었다고 해서 설마 여기까지 오겠냐고 생각했어요."

박씨는 "당시 아무것도 구하지 못하고 몸만 빠져 나왔다"며 "서울에 살다 10여 년 전부터 구례에서 국밥을 팔았는데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었다"고 회상했다.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킨 주민도 거들었다. 철쭉과 유실수 묘목을 키우는 이모(61)씨는 지난해 물난리로 한해 농사를 모두 망쳤다고 했다.

이씨는 "물에 쓸려간 나무가 2억원 어치는 되는데 받은 피해 보상이라곤 고작 300만원"이라며 "개인 돈을 털고 빚을 내 복구를 했지만 나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며 축산농가가 모여 있다는 건넛마을을 가리켰다.

바로 옆 철물점도 수마(水魔)를 피해가지 못했다. 매대 한켠에는 수해 때 물에 잠긴 녹이 슨 공구를 헐값에 내놓고 있었다. 철물점 사정을 잘 아는 한 주민은 "일부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거져주고 단돈 천원이라도 주면 감사하게 받고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다시 찾은 구례5일시장은 겉보기에 피해 복구가 상당히 이뤄졌지만 1년째 이어지는 정부 조사에 상인들의 눈에는 울분이 서려 있었다.

꽤 높은 제방 옆에 위치한 구례 양정마을에서는 수해 복구를 위해 집이나 하우스를 고치는 주민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구례 양정마을 곳곳에는 지난해 수해 피해로 완파된 집터가 시멘트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최창민 기자

 

오이와 호박을 키우는 강화영(66)씨는 그늘막이 쳐진 하우스로 안내하며 거처라고 소개했다. 이내 바깥으로 손가락을 들어보이며 "저 전봇대를 넘을 정도로 물이 찼다"고 말했다.

강씨는 "시내에서 물이 차 내려왔고 갑자기 양쪽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소지품도 챙기지 못했다"며 "수해 초기에는 멀리서 봉사단체도 오고 군인도 있었지만 지금은 수천만원을 들여 대출을 받아 사비로 인력을 써가며 복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보상에 대해 강씨는 "농협에서 무이자로 천만원을 빌렸는데 곧 갚아야 한다.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보험 해약하고 사채 써서 버티고 있다"며 "살게끔만, 빚에서 헤어나게만 해주면 좋겠는데"라고 말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부인 오점순(53)씨도 "한해 농사로 번 돈을 싹 밀어 넣었고 올해 농사 지은 것도 빚을 갚는데 써야할 형편"이라고 거들었다.

1년 만에 다시 장마가 시작됐다. 강씨 부부는 최근 100mm 정도 내린 소나기에 아예 문을 걸어 잠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씨는 "우리뿐 아니라 잠긴 사람들 다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강씨 부부의 거처인 하우스를 나와 길에서 만난 박창주(67)씨는 전파돼 허물어버리고 남은 이웃 집터를 일일이 손으로 가리켰다.

축사를 운영하는 박씨는 "집이 완전히 무너져서 다시 집을 짓게 됐고 축사도 모두 물에 잠겼다"며 "연매출이 억대였는데 1년 동안 10원짜리 하나 못 벌고 있으니 막막하다. 집 짓는 데만 2억이 넘게 들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우리 마을에서만 17채가 완파됐고 지금도 건너편 컨테이너에 생활하는 가구가 4가구"라고 말했다.

박씨는 정부의 치수(治水)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물을 돈으로 생각하고 우수기에도 만수를 내놓았다가 갑자기 아침에 몇분 전에 문자로 통보하고 댐 방류했다"며 "전날 물만 좀 뺐어도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섬진강 수해복구 구례군민 대책본부 김창승 상임대표는 1년 가까이 이뤄지고 있는 정부의 수해 원인조사를 언급하며 전면적인 투쟁을 예고했다.

김 대표는 "구례는 1100가구 2천여 명, 재산피해로는 1800억 원으로 소 1500마리가 수장되거나 물에 떠내려간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며 "한밤중에 벌어졌다면 소가 아니라 사람 1500명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댐관리 부실로 인한 인재라는 것이 명백한데 아직까지 조사만 하고 있다"며 "원인이 어떻게 밝혀지느냐에 따라 투쟁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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