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 동작구 쌍용C&B 서울사무소 앞에서 '화물노동자 사망사고 책임 회피 쌍용C&B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박하얀 기자
"최근에 이런 쪽에서 (산업재해) 사고가 많았잖아요. 그래서 그 전날에도 아빠한테 '이런 일이 있었다. 아빠도 그러니까 조심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했었어요. 그러니까 아빠도 '뉴스 보고 있다'고…" ('쌍용C&B 산재 사망' 노동자 고(故) 장창우씨의 딸)산재 사망 사건과 관련한 소식을 접한 딸은 아버지와의 저녁 자리에서 '조심하시라'며 걱정을 내비쳤다. 뉴스에서만 접했던 이야기는 '우리 가족의 일'이 됐다. 다음 날 일하러 간 아버지는 가족의 품에 돌아오지 못했다. 수백 킬로그램의 파지 더미에 깔려 숨진 노동자의 이야기다.
◇"안전하지 않은 현장, 회사에 말해도 바뀌는 것 없었다"지난달 26일 오전 9시쯤 화물 운송 노동자인 장창우(52)씨는 세종시 조치원에 있는 쌍용C&B 공장 안 도크에 차를 세운 뒤 컨테이너 문을 열었다. 그러자 300~500kg가량의 파지 더미가 그를 덮쳤다. 그 밑에 그대로 깔린 장씨는 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았지만, 이튿날인 27일 끝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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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씨의 유가족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2일 오후 1시 서울 동작구에 있는 쌍용C&B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산재 사망 사건 이후 현장을 훼손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쌍용C&B를 규탄했다.
장씨의 21살, 23살 두 딸은 상복을 입고 기자회견에 참석해 마이크를 잡았다. 장씨의 딸들은 "쌍용C&B의 잘못이 분명한데 왜 발뺌하며 책임을 전가하나"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힘 없는 사람에게 사과시키지 말라. 형식적인 사과는 필요 없다"며 "힘 있는 책임자가 나와서 고개 숙여라"고 말했다. 유가족은 진정한 사과와 책임있는 조치 등을 쌍용C&B에 요구하며 장례를 미루고 있다.
"회사에 말해도 들어주는 것도 없고 바뀌는 것 없다고 항시 말씀하셨어요. 퇴근하시고 집에 와서도 (작업 환경이) 위험하다고 말씀하셨고. 안전장치 하나라도 있었다면 괜찮았을 텐데…" ('쌍용C&B 산재 사망' 노동자 고(故) 장창우씨의 딸)안전하지 않은 현장, 최소한의 안전 조치도 취하지 않는 회사. 유가족은 이전부터 '비용'에 밀려 뒷전인 '안전'에 대한 이야기를 장씨에게 들어왔다고 전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합원들이 2일 오후 서울 동작구 쌍용C&B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화물노동자 장 모씨 사망사고에 대한 책임을 인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쌍용C&B의 공장 안 도크는 30도가량 아래로 경사져 있다. 화물차가 운전과 정지를 반복하다 보면 컨테이너 안의 화물이 입구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크다. 노조에 따르면 컨테이너 개폐 업무의 위험성을 우려한 현장 노동자들이 여러 차례 "수화인 쪽에서 별도의 안전 인력을 배치해달라", "경사진 곳이 아닌, 평지에서 컨테이너 문을 열고 진입할 수 있도록 해달라" 등의 요구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조 관계자는 "'평지에서부터 컨테이너 문을 열면 쓰레기가 떨어진다"는 등의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사고 당일 장씨가 한 컨테이너 개폐는 현행법상 화물차 기사의 업무가 아니다. 화물운송사업법에 따른 화물차 기사의 업무는 '화물차를 이용해 화물을 유상으로 운송하는 일'로 한정돼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화물을 받는 업체(수화인) 측이 화물차 기사에게 컨테이너 문을 열거나 안에 있는 물건을 꺼내라고 요구한다. 기사들은 수화인(쌍용C&B)과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는 특수고용노동자이지만, 소속된 운송업체로부터 계약 건당 수수료를 받는 탓에 현장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다.
◇"뻔뻔하게 현장 훼손하고 작업 이어갈 수 있나""그렇게 뻔뻔하게 (현장을) 훼손하고 (작업을) 이어갈 수 있습니까. 존엄한 생명을 멸시하는 행동입니다. 공장에 날리는 먼지만도 못한 취급입니다.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지켜져야 하는 것을 지켜달라는 겁니다." ('쌍용C&B 산재 사망' 노동자 고(故) 장창우씨의 딸)사건 이후 쌍용C&B 측은 현장을 훼손한 것으로 파악됐다. 산재 사건 발생 시 현장을 보존해야 하는 원칙을 어긴 것이다.
노조가 입수한 사건 직후 현장 CCTV 영상을 보면, 사측은 장씨를 나르는 구급차가 출발하기도 전인 당일 오전 9시 42분 지게차를 움직였고 9시 43분 지게차로 파지 더미를 이동시키는 등 사실상 작업을 재개했다. 오전 10시 10분 장씨를 덮친 파지 더미를 치우고, 장씨의 화물차에 실려 있던 파지 더미도 모두 내렸다. 이후 장씨의 화물 차량을 별도의 장소로 이동시켰다.
화물연대는 지난달 28일 공장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정세영 기자
노조에 따르면 쌍용C&B 측은 "큰 사고가 처음이라 경찰에 사고 조사 후 현장을 정리해도 되냐고 물었고, 된다고 해서 현장을 정리했다"고 밝혔으나, 경찰은 "경찰에는 이같은 권한이 없다"며 "그런 이야기를 한 적 없다"고 선을 그었다.
사측의 이 같은 조치는 지난 2017년 5월 27일 작성된 쌍용C&B 내부의 '사고 보고 및 사고자 관리' 매뉴얼과도 정면 배치된다고 노조는 지적했다. 매뉴얼은 '사고 원인 조사를 위해 현장을 보존하되, 보존 여부는 관련기관과 상황 협의 후 이에 따른다'고 명시했다. 아울러 이 매뉴얼은 '조치원 공장 내 전구역, 조치원 공장 전 사원 및 외부 작업자(방문자 포함)'에게 적용된다고 규정했다.
노조는 "사고 현장을 은폐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작업중지도 하지 않았다. 사고 이후 사고 원인을 파악하지 않고 동일한 방식으로 작업했다"며 "쌍용C&B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한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기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화물 노동자가 청소, 씰 개방 등 운전자 고유 업무 이외의 업무를 하는 것도 CCTV를 통해 확인됐다"고 했다.
화물연대 전남지역본부는 사고 발생 다음 날인 지난달 27일부터 공장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노조는 "조속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코디·모나리자 불매 운동을 할 것"이라며 "전국 동시다발 기자회견과 6.18 화물연대 경고 파업 일정을 통해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유가족은 전날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리고 "저희 아빠와 같은 사고가 처음이 아니다. 이 사고 전에도 다른 곳에서 비슷한 사고가 몇 차례나 더 있었다"며 "이러한 사고가 빈번함에도 회사는 위험을 무시하고 돈을 덜 쓰기 위해 화물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본인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 바로잡지 못한다면 이러한 사고는 더 많이 생길 것"이라며 "저희 아빠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안전한 작업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했다. 이날 오후 3시 기준, 8천 명가량이 청원에 동의했다.
이날 취재진과 만난 장씨의 딸은 "존엄한 생명을 멸시하는 행동이다. 공장에 날리는 먼지만도 못한 취급"이라며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지켜져야 하는 것을 지켜달라는 것이다"라며 울먹였다. 유족 측에 따르면 쌍용C&B 측은 현재까지 유가족을 찾아오지 않았다.
CBS노컷뉴스 박하얀 기자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