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소 '다이살롱' 건물 내부에 남은 일본 후지산 모양의 나무 조각 장식품. 중국위안부문제연구센터 제공
"노후 구역 정비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 기회입니다. '햇볕 정책'으로 새집의 꿈을 이룹니다." 낡은 옛 근대 주택들 사이로 이곳이 곧 재개발될 곳임을 알리는 붉은 현수막 여러 개가 내걸려 있었다. 여기서 햇볕 정책은 상하이의 도시 재개발 정책을 뜻하는 말이다.
여러 건물 외벽에는 보상 계획안 등 내용이 적힌 구 정부의 공고문도 붙어 있었다.
19일 찾아간 중국 상하이(上海)시 훙커우(虹口)구 189제팡(街坊·거리) 일대는 재개발 절차가 한창 진행되고 있어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재개발 구역의 서남쪽 끝자락에는 일본군이 세운 최초의 위안소인 '다이살롱'(大一沙龍)이 있던 2층짜리 서양식 벽돌 건물이 서 있었다.
일본군은 상해사변을 일으킨 1932년 1월부터 1945년 8월 2차 세계대전 패전 때까지 이곳에서 해군 장교를 위한 위안소인 다이살롱을 운영했다.
최초의 일본군 위안소이자 가장 오랫동안 운영된 일본군 위안소가 바로 이곳에 있었다.
패전한 일본이 떠나간 뒤 이 건물은 잘게 쪼개져 일반 주민들의 주거지로 바뀌었다.
이런 상태로 7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 내부의 모습은 크게 바뀌었지만 아직도 다이살롱의 흔적을 일부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 1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虹口)구 둥바오싱(東寶興)로의 옛 일본군 위안소 '다이살롱' 건물 앞을 한 행인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고 있다. 이 일대는 노후 주거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재개발된다. 연합뉴스
어린이 때 이사와 평생을 이곳에 살았다는 주민 루(陸·66)씨는 현관 바닥의 타일을 가리키면서 "집들은 각자 고쳐 사느라 많이 달라졌지만 이 바닥의 문양은 다이살롱 때 모습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루씨는 "오랫동안 각자 집을 고쳐 사느라고 많이 바뀌었지만 오래전까지만 해도 집마다 옆으로 여는 일본식 문이 달려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건물 내부의 문틀 위에는 일본 후지산 모양의 나무 장식도 붙어 있었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내부는 낡아가면서 옛 모습과 많이 달라졌지만 건물의 기본 구조와 외형은 다이살롱 시절의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다이살롱이 일본군 위안소의 '원형'과 같은 곳으로 역사적 의미가 큰 데다가 현재 건물 상태도 양호한 만큼 보전 가치가 크다고 지적한다.
재개발로 오랜 기간 거주해온 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된 만큼 오히려 재개발을 계기로 다이살롱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남기기만 한다면 옛 모습에 더욱 가깝게 잘 보전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도 있다.
19일 일본군 위안소 '다이살롱'이 있던 상하이 훙커우구의 서양식 2층 건물 현관 앞에서 한 할머니가 의자에 앉아 있다. 이 건물 현관 바닥의 타일은 다이살롱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고 주민들은 말한다. 연합뉴스
중국위안부문제연구센터(이하 센터)에 따르면 이곳을 시작으로 중국 등 일본군이 가는 곳마다 위안소가 급속히 늘어났다.
센터 측이 상하이 한 도시에서만 실재한 것으로 확인한 위안소만도 172곳에 달한다. 센터가 지금까지 중국 전역에서 찾아낸 위안소의 이미 개수는 1천100여개에 달하는데 연구가 진행될수록 그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
중국위안부문제연구센터 소장인 쑤즈량(蘇智良) 상하이사범대 교수는 "악명 높은 일본군 성노예 제도가 여기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이 유적을 보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