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연합뉴스
최근 동아제약에서 신입사원 면접 도중 여성 지원자에게 한 질문을 두고 '성차별 논란'이 거센 가운데, 피해자가 법적 조치를 취할 시 처벌 가능 여부를 놓고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A씨는 지난 5일 유튜브 예능 프로그램 '네고왕' 채널 댓글에서 "지난해 11월 동아제약 신입사원 면접 당시 인사팀장에게 '여자라서 군대를 가지 않았으니 남자보다 월급을 적게 받는 것에 대해 동의하냐, 군대 갈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그는 면접에서 겪었던 불쾌한 사건을 폭로하게 된 경위부터 유튜브 댓글 사과의 문제점을 나열하면서, 동아제약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을 시 다음 스텝을 밟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이와 달리 A씨와 함께 면접을 봤다는 B씨는 해당 자리에서 "아직도 우리나라의 많은 회사에서는 병역 이행을 기준으로 남성과 여성의 임금에 차이를 두는 것이 사실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원자의 답변 후) 병역 의무를 이행할 수 있다면 군대에 가겠는가?"라는 질문을 들었다고 전했다.
논란 직후 한 법률 관련 블로그에는 지난 9일 '유명 제약회사의 성차별 면접, 고용평등법 위반일까'란 제목을 통해 면접 과정에서 성차별적인 질문을 하는 경우 실제 처벌하기 쉽지 않다는 의견을 내놨다.
채용 과정에서 남녀를 차별하는 건 국내서도 법으로 금지돼 있다. 그런데도 피해자가 동아제약을 상대로 법적인 조치를 취했을 때 실제로 처벌을 할 수 없는 걸까.
그래픽=고경민 기자
◇여성 비하적인 발언은 맞지만…처벌은 안된다?
CBS노컷뉴스가 다수 변호사들의 자문을 구해본 결과, 동아제약 채용 과정에서 면접관이 여성 비하적인 발언을 한 건 분명하나 형벌 여부는 단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 많았다.
'직장갑질119'의 이환춘 변호사는 11일 CBS노컷뉴스 전화통화에서 "해당 발언이 여성 비하적인 내용에 해당될 수 있지만, 질문의 취지가 법적인 처벌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쉽지 않은 문제"라고 내다봤다.
그는 "'남녀고용평등법'에서는 채용 단계에서 남녀간 차별이 금지돼 있고 용모나 키, 체중, 신체적 조건 등을 제시하거나 요구해서도 안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문제가 된 발언이 법에 위배되는 내용일 수 있겠지만, 벌칙 조항에 이를 정도의 행위인가에 대해선 단정 짓기 어렵다"고 전했다.
또 "실제로 면접 과정에서 면접관이 남녀 차별적인 행위를 한다 해도 사업주가 벌금형에 처해질 가능성이 얼마나 있느냐에 대해선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라며 "현행법규상 처벌이 쉽지 않은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박수진 여성 인권 변호사 또한 한목소리를 냈다. "남녀 차별적인 내용은 맞지만, 실제 이 발언으로 채용에서 탈락했다는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는 한 처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어 "형법상 모욕죄 성립 조건도 비공개 면접 자리였기 때문에 공연성이 인정되지 않아 쉽지 않다"며 "현실적으로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고 회사에 권고를 주는 정도에 머무를 것"이라고 밝혔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 |
제7조(모집과 채용) ①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해서는 아니 된다.
②사업주는 여성 근로자를 모집·채용할 때 그 직무의 수행에 필요하지 아니한 용모·키·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 미혼 조건, 그 밖에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조건을 제시하거나 요구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39조(과태료) ②사업주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위반행위를 한 경우에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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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 없는 법, 처벌 가능하다 해도 '솜방망이' 지적도일명 존재감 없는 법이라고 불린다는 '남녀고용평등법'은 처벌 수위도 매우 약하다는 지적이다.
대한변호사협회 김신 변호사는 "이번 동아제약 성차별 발언에 대해서는 법적 처벌까지 이뤄지기엔 가능성이 낮은 편이나, 인정이 된다 하더라도 현행법상 최대 500만원 과태료 정도의 솜방망이 처벌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2015년부터 2016년까지 하나은행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여성 지원자들을 고의로 적게 채용해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인정된 사례가 있다. 당시 남녀 성비를 사전에 나눠 채용한 혐의를 받은 하나은행은 벌금 700만원에 그쳤다.
김 변호사는 "채용 차별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자신의 커리어에 중요한 시점을 망칠 수도 있는 중대한 사건이라 할 수 있는데 단순한 벌금형에 그치는 현실이 아쉽다"면서 "이번처럼 1회성 발언에 대한 사안은 낮게 처벌할 수 있지만, 지속적인 차별 행위가 드러난 경우 실형을 살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법 조치를 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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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직장 내 남녀차별 사례들, 처벌은 '글쎄'동아제약이 쏴올린 성차별 논란의 현주소는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제자리다.
고용노동부가 고용상 성차별 익명 센터를 운영한 결과, 4개월 만(18.9.10~19.1.9)에 총 122건이 접수됐다. 지난 2년간 신고된 101건(2017년 39건, 2018년 62건)보다 많은 수치다.
모집·채용에서의 성차별은 크게 △채용공고에서의 차별(공고문에서 남성으로 제한하거나 남성우대 조건) △채용 과정에서의 차별(결혼·출산·육아 등을 이유로 여성채용 거부) △면접에서의 부적절한 질문(결혼·임신계획 질문, 외모 지적) 등으로 나타났다.
신고는 갈수록 늘어나는 반면 처벌 수준은 극히 드문 실정이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고용노동청에 접수된 성차별 사건 접수는 매년 18~46건 수준이었다.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더욱 적다. '남녀고용평등법' 시행 이후부터 2012년까지 성차별 소송의 숫자는 32건에 불과하고 그 후로 추가된 판결도 10건 미만에 불과하다. 관련 법 미비와 사회적 대책 마련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박수진 변호사는 "매년 성차별 신고 건수는 많이 들어오지만, 법적 처벌까지는 극히 드물다"며 "요즘 청년들의 취업이 더욱 어려워진 상황에서 채용 단계 중 성차별 발언이나 부적절한 언행을 통해 명예가 훼손되는 발언이 많이 이뤄지는 건 사실이나 현행법에서 형사 처분까지 이르게 하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입법 사각지대"라고 전했다.
또 "구조적으로 채용 단계에서 피해자들이 취약한 위치에 놓여있음에도 법적인 조치 혹은 방지를 위한 법률적인 구조가 부재인 상황에서 제2의, 제3의 동아제약 성차별 피해자들이 꾸준히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충고했다.
동아제약은 논란이 된 인사팀장에게 보직 해임과 정직 3개월 처분을 내린 상태다. 동아제약 측은 "(인사팀장의) 면접 과정에서의 부적절한 언어 사용으로 인한 업무 태만, 회사 질서 문란 초래 및 직원 품위 손상을 이유로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