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곤에서 군경과 대치 중인 쿠데타 항의 시위대. 이라와디 캡처
미얀마의 민주화 항쟁이 예사롭지 않다.
쿠테타가 발생한 미얀마에서 군경이 시위에 나섰던 비무장 시민에게 실탄을 발포해 지금까지 최소 54명이 숨지고 1,700명이 구금됐다고 유엔이 밝혔다.
사망자와 다친 사람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여 진다.
더욱이 내일(6일)과 모레, 주말과 휴일을 맞아 시위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돼 많은 희생이 우려되고 있다.
우리는 부정선거를 빌미로 쿠테타에 나선 미얀마 군부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한 달여간 안타까운 심정으로 목도해 왔다.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국민들은 군정종식을 희망했고 결국 영향력이 축소되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던 군부의 조바심과 욕심이 이 같은 유혈참극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내세운 명분이 합리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평화적 시위를 하는 선량한 자국민을 총칼로 위협하고 살상까지 일삼는 것은 범죄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 5일(현지시간) 의료인과 학생들이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며 저항의 표시로 세 손가락을 세우고 있다. 연합뉴스
미얀마의 3월은 40여 년 전 5월 광주를 꼭 닮았다.
공무원과 학생, 노동자 등 시위대와 이들을 뒷바라지 하는 시민들, 그리고 총검으로 무장한 무자비한 군경의 모습이 흡사하다.
맨 몸의 시위대를 붙잡아 무릎꿇려 사정없이 발길질하고, 아무런 경고도 없이 시민에게 실탄을 발사하는 진압 군인들, 이에 굴하지 않고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로 나선 19세 소녀, 맨손의 수녀, 공무원과 노동자들의 불복종 운동...
빨랫줄에 여성 옷을 걸어 시위대를 감싸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라며 거리에서 헬멧과 보호조끼를 나눠주는 시민들의 모습이 과거 광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5.18 민주화 운동,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진 우리와 1988년 민주항쟁, 2007년 샤프란 항쟁을 거친 미얀마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염원도 닮았다.
이러한 처절한 저항에도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자국의 이익에 따라 셈법을 계산하기에 바쁘다.
허울뿐인 경고와 성명만 난무할 뿐 실효적 조치는 찾아볼 수 없다.
미얀마군에 체포된 시위자. 유엔은 쿠데타가 발생한 지난달 1일 이후 미얀마에서 군경에 살해된 시위자가 최소 54명에 달한다고 4일(현지시간) 밝혔다. 연합뉴스
유엔안보리는 긴급회의를 열고서도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를 이유로 규탄성명서 하나 채택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인접한 국가들의 모임인 동남아시아 국가연합(아세안)도 ‘물리력 사용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을 뿐 ‘내정간섭을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모양새다.
미국이 수출규제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미얀마는 제재에 익숙하다”며 군부는 이를 비웃듯 아랑곳 하지 않는 눈치다.
시장을 개방한지 5년도 되지 않은 폐쇄 경제인데다 대외 경제적인 의존도가 낮아 추가 경제제재가 있더라도 버틸 수 있다는 교만함이다.
전체 무역량의 40%를 차지하는 중국도 경제. 정치적 이해관계가 크게 손상되지 않는 한 현 상황이 어떤 방향으로 개편되더라도 개의치 않을 개연성이 높다.
냉정한 국제사회의 룰이 미얀마의 학살을 방치하는 합리적 도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선량한 미얀마 국민들의 무고한 희생을 방관해선 안된다.
광주정신을 계승한 촛불정부는 더욱, 미얀마의 숭고한 희생을 지켜만 봐선 안된다.
불의에 항거하는 미얀마 국민의 처절한 염원과 가치를 함께 공유해야 한다.
지난달 18일 청와대가 ‘미얀마의 헌정질서가 회복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협력한다’고 밝힌데 이어 국회가 ‘미얀마 군부규탄 결의안’을 냈지만 여기서 그쳐선 곤란하다.
미얀마 군부와 연계된 한국기업의 투자문제를 비롯해 사업관계를 청산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노력을 선도해 가야 한다.
민주화 연대를 호소하는 미얀마 국민들의 목소리에 ‘연대’와 ‘지원’으로 적극 화답해야 함은 물론이다.
‘유엔이 나서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체가 필요합니까?’란 글을 남기고 총격으로 사망한 젊은 시위자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광주의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