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고용노동부가 소규모 사업장의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해 운영 중인 '기초 노동질서 자율점검 지원' 사업의 예산과 점검 항목을 대폭 축소하면서, 노동 약자 보호를 위한 정책 의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육아휴직과 출산 전후 휴가 같은 모부성 보호 항목이 점검표에서 전면 삭제됐으며,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 등 주요 항목도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노동부, '소규모 사업장 지원' 예산 삭감…점검 항목도 축소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고용노동부의 '기초 노동질서 자율점검 지원' 사업 예산은 올해 13억 7500만 원으로 책정돼, 2020년 대비 40% 이상 삭감된 것으로 확인됐다.
'기초 노동질서 자율점검 지원' 사업은 소규모 사업장이 법을 준수할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가 자율점검표를 제공하고 공인노무사 등 전문가가 점검과 컨설팅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사업주는 별도의 비용 부담 없이 노동 조건 점검과 개선 기회를 얻을 수 있어, 노동자와 사업주 모두에게 유의미한 정책으로 평가받았다.
직장갑질119가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해당 사업의 연간 예산은 2020년 24억 2100만 원, 2021년~2023년 20억 4100만 원이었으나, 2024년에는 13억 7500만 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점검 항목도 2020년 15개에서 2023년 18개까지 늘어났으나, 올해 10개로 대폭 줄었다. 삭제된 항목은 △육아휴직 △출산 전후 휴가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 △연장근로의 제한 △휴게시간 보장 △계약서류 보존 △취업규칙의 작성 신고 △기간제‧단시간제 서면근로계약 등이었다.
삭제된 '모부성 보호' 항목…"정부 저출생 대책과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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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육아휴직과 출산 전후 휴가와 같은 모부성 보호 제도 관련 점검 항목의 삭제는 저출생 문제를 '국가적 위기'로 강조한 정부의 대책과 모순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육아휴직 등 모부성 보호 제도 사용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갑질119가 올해 1분기 직장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61.6%가 육아휴직 제도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직장갑질119는 "육아휴직과 출산 전후 휴가 관련 점검 항목은 2022년 추가돼 2023년까지는 점검표에 있었으나 2024년 갑자기 사라졌다"며 "정부가 저출생을 '국가 위기'로 명명하고 예산을 투입해가며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행보"라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과 근로계약과 관련해 중요한 서류를 3년 간 보존하고 있는지 등 현실적으로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보호의 사각지대를 보완할 것으로 기대됐던 점검 항목이 삭제됐다는 점이 지적됐다.
현행법에 따르면 모든 사업장은 연 1회 이상 성희롱 예방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직장갑질119가 올해 2분기 직장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 10명 중 7명은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직장갑질119 김서룡 노무사는 "근로조건 자율개선 사업은 법제도에 대한 인지와 활용이 저조한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노동조건 감독과 점검은 물론, 사업주와 노동자에게 법제도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중요한 사업"이라며 "점검 항목을 간소화하는 것은 해당 사업의 취지와 본질을 약화시키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은 "최소한의 내용으로 추려낸 기초노동질서 점검표를 감독 당국이 또다시 반 토막 낸 상황에서 법을 위반한 사용자들이 위기감을 느껴 근로조건 개선에 나설 리 만무하다"며 "한정된 근로감독 인력과 작은 사업장의 현실을 감안하면 관련 예산 및 점검 항목을 오히려 확대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