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위안부 망언 하버드 교수, 美 지지받는 이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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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정부, 위안부 관련 극우주장 담은 6권 요약본 유포
램지어 교수도 6권 인용…"위안부, 일본군 사랑했다"
램지어 교수 옹호하는 미국인들도 6권 요약본 들먹여
일본 정부 조직적인 '위안부 역사왜곡 프로젝트' 먹혀

일본군 위안부는 매춘부였다는 글을 쓴 미국 하버드대 존 마크 램지어 교수. 유튜브 영상 캡처

 

'위안부는 매춘부였다'는 미국 하버드 대학 마크 램지어 교수의 주장으로 한반도가 발칵 뒤집혔지만 미국 언론은 침묵 중이다.

이 소식을 다룬 미국 언론사는 8일(현지시간) 현재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국내에 소개된 대로 하버드 대학교 교지(The Crimson)에 관련 기사가 전날 게재됐다.

해당 기사에는 이날 오후 현재 100여건의 댓글이 달려 있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 달리 램지어 교수의 글을 옹호한 댓글들도 적지 않다.

'KenT'라는 필명은 "당시 여성인권 학대(abuse)가 과연 누구 책임인지가 의문"이라면서 "딸들을 끔찍한 상태로 내몬 아버지가 많았다는 당시 기록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3명의 찬성과 3명의 반대를 각각 받은 것으로 돼 있는 해당 댓글은 "당시 한국은 가부장적 사회였다"면서 "일본군이 '사랑하는 부모들'에게서 딸들을 강압적으로 납치해 갔다는 이야기는 근거가 없다"고도 했다.

그는 '소정희' 라는 이름의 한국계 미국인 교수의 '2008년 책'을 인용해 이 같은 주장을 폈다.

한국계 미국인 교수 '소정희'의 '2008년 책'을 인용해 주장한 'KenT'의 댓글. 하버드 대학교 교지(The Crimson) 홈페이지 캡처

 

'소정희' 교수는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교 교수로, 2008년 '위안부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식민지배 이후의 기억'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낸 인물이다.

이 책은 일본 제국주의와 한국의 가부장제가 결합해 어린 여성들을 가정 학대에서 피해 성노예가 되도록 몰아갔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한국 민족주의자들의 정치와 국제 여성인권운동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불완전한 인식(incomplete view)에 기여했다는 논리를 폈다.

램지어 교수를 옹호한 'KenT'라는 댓글러를 '정신무장' 시켜준 것이 바로 소정희 교수의 책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소정희 교수의 책이 일본정부가 미국에서 위안부 관련 역사를 왜곡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에 활용해 온 책이라는 사실이다.

앞서 일본 외무성은 2019년 5월 위안부 문제를 극우적 시각에서 조명한 6권의 저작물을 해외에 유포시키기 위해 2~3페이지의 영어 요약본을 만들었다.

해외 기관의 로비 등록을 의무화한 미국 법무부의 해당 사이트(justice.gov/nsd-fara)에는 뉴욕주재 일본 총영사관이 당시 컨설팅업체(Marathon Strategies)와 관련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고 신고한 것으로 돼 있다.

용역 계약의 목적에 대해서도 일본의 목적에 다가가기 위한 공공 전략을 개발하고 시행하기 위해서라고 명시했다.

6권의 용역 계약서. justice.gov/nsd-fara 자료 캡처

 

바로 이 6권의 저작물에 소정희 교수의 책이 포함돼 있다. 문제의 저작물 목록은 아래와 같다.
6권의 저작물
①소정희, '위안부; 성폭력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식민지배 이후의 기억'
②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③이우연(반일종족주의 공저자), '전시 일본에 동원된 한국인 탄광 노동자들'
④하타 이쿠히코, '전장에서의 위안부와 섹스'
⑤니시오카 쓰토무, '2차 대전 당시 한국인들 모집의 현실'
⑥아치 미야모토, '위안부에 관한 전시 군대 기록'
지금도 소정희 교수를 설명한 '위키피디아'에는 ①번 요약본이 참고자료로 게재돼 있다.

이번에 파문을 일으킨 램지어 교수의 논문 '태평양전쟁의 성매매 계약'도 이들 저작물을 인용한 것으로 돼 있다.

그가 2019년 3월 하버드 로스쿨 교지에 올린 또 다른 글 '위안부와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 글에서 "한국인들은 일본 시민들이었다. 확실한 것은 일본 정부는 한국인들을 여러 면에서 2등 시민들(second-class citizens)로 다뤘다. 일본은 한반도를 점령하고 1910년 병합했다. 그리고 호의가 있어서 정복하지 않았다. 1919년까지 일부 한국인들은 폭력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했다"고 적었다.

일제의 침략을 '호의(kindness)'라는 말로 설명한 반면 3.1운동을 '폭력적 운동'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가 당시 위안부들이 대부분 돈벌이를 위해 자발적으로 모집된 것이라고 주장한 것도 이 같은 시대 인식 때문으로 보인다.

램지어가 재팬 포워드에 기고한 글 "정대협은 공산당". 재팬 포워드 캡처

 

그는 또 이렇게 서술했다.

"모든 한국인들이 맹렬한 항일 정서를 공유한 것은 아니다. 토착 왕조가 부패하고 비효율적이었던 것에 반해 일본 정부는 안정된 명령을 내렸다. 많은 한국인들이 이 새로운 체제를 받아들임으로써 반응했다. 1938~1943년에 백만 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일본군에 자원했다. 입대자 중에는 장교도 있었고, 장군까지 진급한 사람도 있었다."(⑥아치 미야모토의 '위안부에 관한 전시 군대 기록')

그는 이어 위안부와 일본군들 사이에 사랑이 싹텄다고도 했다.

"많은 위안부들은 일본군과 동일한 국가정체성을 느꼈던 것 같다. 바로 그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이 위안부와 일본군 사이의 사랑과 연민이었다. 바로 이 같은 위안부들의 기억을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이 없애려 한 것이다. (중략) 위안부들이 일본군을 사랑하고,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인 역사는 어디에도 없는 역사다."(②박유하 교수, '제국의 위안부')

이렇듯 램지어 교수의 위안부 관련 주장은 일본정부의 왜곡 '프로젝트'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크다.

램지 교수는 논문 뿐 아니라 일본의 극우매체인 산케이 신문의 해외 홍보매체 '재팬 포워드(Japan Forward)'에도 위안부 관련 기고문을 영문으로 싣고 있다.

그는 지난다 12일에도 '위안부에 대한 진실 회복'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국의 수요집회에 대해서 한국 공산당이 만든 단체(정대협)가 조직화했다고 허위 주장을 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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