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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차별채용 인정돼도…벌금·손배 '솜방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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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 하나은행 신입채용서 여성 합격률 0.7%
벌금 700만원 그쳐…손해배상 청구도 어려워
독일선 차별 피해자 임금까지 배상해야

은행 채용공고. 연합뉴스

 

※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2020.12.9. 서울서부지법 하나은행 채용비리 판결문(업무방해·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
"하나은행 신입직원 공채에 응시한 지원자의 남녀 비율은 대략 55:45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합격 예상인원 배분'에 따라 결정된 합격자 남녀 비율은 2013년 상반기 9(남)대1(여), 2013년 하반기 8대2, 2014년 7대3, 2015년 4대1, 2016년 4대1 등으로 지원자 성비와 큰 차이가 납니다."

"2013년 상반기 채용 서류전형 합격자의 합격권이 서울 남성그룹은 1060위, 서울 여성그룹은 49위 부근에서 형성됐습니다. … 거의 대부분의 경쟁그룹과 전형단계에서 여성 지원자들의 커트라인이 남성 지원자들의 커트라인보다 상당히 높게 나타나, 여성 지원자들이 불리한 평가를 받게 됐습니다."
취업준비생들을 공분케 했던 금융권 채용비리 사태에 대한 법적 처벌이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지난달엔 하나은행 채용비리 책임자들에 대한 1심 선고가 있었는데요. 오늘은 성적 미달인 '특별 추천자'를 합격시킨 비리 부분 보다 성차별 채용 부분에 집중해 살펴보려 합니다.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된 내용이지만 다시 봐도 '이게 실화냐'라는 말이 나올겁니다.

◇사기업 채용 자유 있지만…명백·타당한 근거 없는 차별 '금지'

하나은행의 신입사원 공고엔 성별을 분리해 모집하겠다는 내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내부적으로는 지침이 정해져 있었죠. 매해 많게는 9대1, 통상 4대1 비율로 남성을 더 많이 뽑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은행도 기본적으로 사기업이기 때문에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면서 기업의 운영상 필요에 따라 신입직원 채용 규모나 방식, 조건 등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가 불합리한 차별과 배제까지 허락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은행 측은 행원과 책임자급 여성 비율을 장기 인력수급 계획에 따라 현재보다 낮추려는 내부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여성 지원자들을 적게 합격시킬 필요가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해당 계획안에 따르더라도 현재 66.7%인 행원A 직급 여성 비율을 43.6%로, 42.2%인 책임자급 여성비율을 30%로 낮추는 수준입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채용에서 매번 9대1, 4대1 수준으로 여성 지원자를 차별한 근거가 되기엔 궁색해 보입니다. 특히 관리자급 여성인력 비중은 7.8%에 불과해 오히려 20%까지 높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2020.12.9. 서울서부지법 하나은행 채용비리 판결문(업무방해·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
"그 밖에 (하나은행 등) 피고인들이 주장하는 여성 행원들의 여신 업무 비선호 현상, 격오지 영업점의 남성 행원 배치 필요성 등이 '직무의 성격에 비추어 특정 성이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여성을 직무에서 배제하고 그 대신 남성을 채용할 만한 합리적인 사유가 아닙니다."

사기업에게 채용의 자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여성보다 남성을, A대학 출신보다 B대학 출신을 우대 선발하려면 명백하고 불가피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단순히 '남성 직원이 업무에서 잘 버티고 영업도 잘 하더라'는 막연한 평가나 통계 정도로는 차별이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수백명 피해' 차별 채용 벌금형은 500만원?…손해배상 받기도 어려워

하나은행의 2013년 상반기 신규채용 합격자 101명 중 여성은 8명(7.9%)에 불과합니다. 2013년 하반기 신규채용에선 합격자 104명 중 19명(15.4%), 2014년 신규채용에선 130명 중 24명(18.5%)만이 여성입니다. 2015년 신규채용 합격자 450명 중 75명(16.7%), 2016년은 150명 중 30명(20%)으로 매년 여성 지원자가 극히 불리한 위치에 놓였습니다.

이번 하나은행 판결문에 따르면 위 5번의 채용에 서류를 낸 응시생은 4만9651명입니다. 이 중 45%를 여성이라고 보더라도 2만2343명에 달합니다. 여성 지원자 합격률은 0.7%, 남성 지원자 합격률은 2.8%로 4배 차이가 납니다.

법원은 채용절차에 관여한 인사팀 관계자들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부과하고, 하나은행에 대해서도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남성 지원자보다 4배 이상 불리한 조건 때문에 떨어진 여성 지원자가 수백명일 텐데 회사가 받은 처벌은 너무 가볍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현행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부과할 수 있는 최대 수준의 벌금입니다. 법 제37조에서 사업주가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한 경우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하나은행은 다년간 그러한 행위를 한 점이 인정돼 경합범 가중으로 벌금형이 700만원으로 오른 겁니다.

처벌도 약한데 피해를 본 당사자들이 손해배상을 받기도 어렵습니다. 대대적인 수사 과정에서 학교차별이나 '은행 내·외부 관계자 채용 추천' 때문에 특정인에게 부당하게 밀렸다는 점이 확인된 소수의 피해자들만 법원에서 손해배상을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죠.

내가 '광탈'한 이유가 다른 지원자보다 스펙이나 실력이 모자라서 인지, '여자여서'인지 대부분의 탈락자들은 알지 못합니다.

◇차별·비리 채용 피해자 손해도 '재산상 배상' 아닌 '위자료'만 인정

다행히 피해가 특정돼 소송을 하게 되더라도 아직 우리 법원에서는 '정상적으로 채용됐을 경우의 이익'까지 보전해주진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2018.8.28. 서울남부지법 금융감독원 채용비리 손해배상 판결문
"원고(채용비리 피해자)가 2차 면접 결과 최고득점자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정만으로 원고와 피고(금융감독원) 사이에 당연히 고용관계가 성립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원고가 지급받을 수 있었던 미지급 임금 상당액의 재산상 손해배상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위자료 청구에 대해서는 … (금감원 채용비리) 불법행위로 인해 원고가 직업 선택 및 수행을 통한 인격권 실현 가능성에 큰 타격을 입게 되는 등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다고 봄이 상당합니다. 따라서 원고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습니다."

금융감독원 채용비리 사건 1심 재판부는 채용비리 피해자인 A씨에 대해 금감원이 8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정신적 손해에 대한 금액치고는 상당한 수준이지만, 정상 채용시 얻었을 이익에 대한 배상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A씨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또 다른 채용비리 피해자 B씨는 일부 사정이 다르다는 이유로 1000만원의 위자료만 인정됐습니다. 각 지원자들의 사정과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기관·회사의 책임이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죠.

이쯤에서 해외 법원에선 이런 사건을 어떻게 다루는지 살짝 들여다보겠습니다. 일반평등대우법(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있는 독일의 경우, 적극적·고의적인 차별행위를 한 회사는 그 피해자가 차별을 당하지 않았다면 얻었을 이득을 배상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배상 책임에는 채용 지원자가 지원하기 위해 사용한 비용이나 차별 이후 정신과 상담료, 법률상담료 등이 포함되며, 차별을 당하지 않고 정상 채용됐다면 법률상 하자 없이 해고를 할 수 있는 때까지 받을 수 있었을 임금까지 포함된다는 게 학계 다수설이라고 합니다. (※참고문헌: 황수옥, '간접차별금지 실효성 강화를 위한 구제방법과 절차',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2017)

이렇게 보니 금감원과 하나·우리·국민·광주·부산·대구은행 등 금융권을 비롯해 대학과 지자체, 공기업 등 한국에서 노골적이고 광범위한 차별·비리 채용이 계속되는 이유가 짐작이 됩니다. 벌금도 손해배상도 솜방망이. '그깟 차별' 좀 해도 충분히 괜찮기 때문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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