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렇게 됐을까'…내 인생을 누르는 빚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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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채무자들-왜 그들은 빚을 지게 됐나⑤] 일상과 미래를 좀먹는 빚, 움츠러든 아이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자립을 '해야만' 했던 이들의 이후는 결코 평탄하지 않다. 준비되지 않은 자립은 적지 않은 빚으로, 또 그 빚을 갚기 위한 불법행위와 범죄로 이어지곤 했다. 살얼음을 걷는 듯한 이들의 일상은 사회에서 부각되지 못했다. 하지만 코로나와 맞물려 위험수위에 이르렀고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전CBS는 위기에 놓인 '어린 채무자'들의 현재부터 구조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내밀히 살펴보고 대책을 찾아보고자 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코로나 1년, 집이 사라졌다…쉼터에 머무는 청소년들
②20살 주아의 80만 원 빚은 어떻게 1000만 원이 됐나
③사회로 던져진 청소년들이 말했다…"빚이 있다"
④"'그들'은 20살의 1월 1일과 생일을 노린다"
⑤'어쩌다 이렇게 됐을까'…내 인생을 누르는 빚의 무게
(계속)

빚은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어린 나이에 지게 된 빚은 이들의 심리상태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불안과 좌절이 일상에 녹아들었고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빚은 계속 쌓여갔고, 악순환은 반복되고 있었다.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어린 채무자들. 등에 짊어진, 두 손 위에 놓인 빚의 무게는 덜어질 수 있을까. 김정남 기자

 

만 18세가 되면서 보육원을 떠나 사회로 나와야했던 민우(가명·20). 1년 만에 신용불량자가 되면서 휴대폰 사용마저 끊겼다.

쓸 수 없는 휴대폰이지만 유일하게 날아오는 문자메시지가 있다. 바로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는 통신사의 문자메시지다.

'가개통'과 '신용카드 발급 사기'로 약 1000만 원의 빚이 생겼다. 나날이 커지는 금액과 계좌번호 등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받는 것은 민우의 일상이 됐다. 우편 독촉장도 받고 있다. 보육원을 퇴소한 뒤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고 노숙까지 했던 민우. 독촉장만큼은 민우가 머문 곳마다 꼬박꼬박 날아들었다고 했다.

일을 해서 차근차근 갚아나가고 싶지만 20살의 나이에 신용불량자가 되고 휴대폰조차 못 쓰게 되다보니 사람들이 잘 안 써준다고 했다.

"'왜 휴대폰이 없냐'고 사장이 물으면 거기서 딱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얘를 써도 되나, 우리가 뭘 보장해 일을 맡겨도 되느냐 이렇게 문제가 되는 거죠. 직업훈련도 받아봤지만 마지막 구직 단계에서는 이력도 부족하고 학력도 부족하다보니 구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해결되지 않는 일상을 무기력이 파고들었다. "빚은 아침마다 머리에 맴돌고, 머무는 곳마다 편지(독촉장)는 날아오고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싶은데 그것도 쉽지 않고... 제 상황도 그렇고 뚜렷한 목표가 세워지지 않아요. 혼자 있으면서 계속 후회, 후회만 하는 거죠."

주현(가명·22)이는 가개통으로 생긴 자신의 빚을 '돌덩이'로 표현했다. "돌덩이죠. 너무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는..."

'돌덩이'는 자기 전에도, 일어나서도 주현이를 따라다녔다. 늘 머릿속에 있었다. "자기 전에도 '아, 나 빚, 빚, 빚 있었지'... 자려고 하는데 또 생각나고 일어나서도 또 생각나고... 계속 제게 남아있어요." 가압류를 하겠다는 전화와 우편물들이 돌덩이로 쌓여갔다.

준섭(가명·21)이는 "변명하고 싶진 않지만... 되게 힘들다. 답답하고 불안하고 압박감이 있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해롭다"며 "이 상태로 지속되고 싶지 않은데, 지속되지 않으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일은 안 구해지고 이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고 말했다.

뭔가 해보려고 애쓰지만 거절당하는 경험만 쌓이면서 더욱 위축됐다.

"외모 때문에 그런가? 일을 못해보여서 그런가? 별 생각이 다 드는 거예요. 면접을 이렇게 많이 보는데 아무도 안 써주니 사람이 자신감이 없어지고... 자기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거죠. 나중에는 '어차피'라는 말만 계속 나오는 것 같아요."

스마트이미지 제공

 

지환(가명·23)이도 화살을 스스로에게 돌리고 있었다. 그는 휴대폰 소액결제로 생활비를 마련하다 결국에는 청소년쉼터로 왔다. "당시에는 정말 필요해서 썼던 건데도 자꾸만 후회가 된다"며 "얼른 돈 모아서 방도 구하고 혼자서 알아서 살아야 되는데 빚도 못 갚고 있는"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어린 채무자들의 빚을 무분별한 선택의 결과물로만 볼 수 있을까. 생활비거나, 범죄의 피해거나, 심지어 본인이 쓰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들이 더 깊은 좌절감에 빠지는 이유다. 하나(가명·21)는 어린 시절 자신을 떠난 엄마가 빚을 남겼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어린 하나를 보증인으로 세워 당시 수백만 원에 달하는 물품을 구입했다는 것이다. 물품의 구입 시점은 하나가 두 살 때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4배로 불어나있었다.

신용정보회사에서도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그렇지만 하나 앞으로 된 빚이니 하나가 갚아야 된다고 했다고 한다. 휴대폰을 개통하는 것도 쉽지 않고, 할부거래도 안 된다고 했다.

"내 인생 망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앞으로 살 공간을 만들어야 되는데 그게 안 될 수도 있는 거고, 필요한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것 때문에 막힐 수도 있는 거고. 전 아무것도 안 했는데 벌써 망가져있는 거잖아요."

미래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것. 아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상권(가명·23)이도 그렇다. 드론 쪽을 공부해 업으로 삼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지만, 당장의 빚과 생활비가 발목을 잡고 있다. 적지 않은 나이라 생각해 마음이 더욱 조급하다. "당장 돈을 벌어 반은 빚 갚는데 쓰고 반으로 생활해야 하니까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다"며 "마음은 그냥 일 말고, 계속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데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빚에 쫓겨 극한에 몰린 민준(가명·20)이는 금은방에 들어갔다 돌아선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금은방에 가면 돈이 생기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할 수 있는 유일한 생각은 '당장 돈 어디서 빌리지, 돈 어떻게 하지' 그 생각밖에…."

절대 끊어지지 않는 빚의 고리. 빚만큼 이들을 누르는 것은 이 같은 상황이 언제까지 갈지 모른다는 절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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