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씨, 손 좀 흔들어 주세요.""눈 깜빡일 수 있나요? 윙크 좀 해 주세요."팬들의 요청에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그녀가 웃으며 응답한다. 수아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자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가 자연스럽게 찰랑거린다.
온마인드 소속 '연예인' 수아가 지난해 10월 팬들 앞에 섰다. 공식 활동을 시작하기 전, 수아의 '탄생' 과정과 향후 활동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디지털 셀럽 수아가 라이브 방송에서 팬들의 요청에 답하고 있다. 유니티 코리아 유튜브 채널 캡처
그녀는 진짜 사람이 아닌 온라인에서 존재하는 '디지털 휴먼'이다. 온마인드 김형일 대표가 그녀의 '창시자'다. 이른바 <수아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수아는 리얼타임 라이브가 가능한 디지털 셀럽을 목표로 제작됐다.
K팝 스타를 모델로, 완벽한 미인보다는 자연스러움에 중점을 뒀다. 사람과 유사한 존재를 볼 때 생기는 불편한 느낌인 '불쾌한 골짜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수아는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외모라는 평가를 받는다.
게임 회사인 넵튠은 지난해 수아를 개발한 온마인드를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게임개발 엔진사인 유니티 코리아 모델로 활동중인 수아는 올해부터 새 기획사인 '넵튠'에서 SNS 개정 신설 등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간다.
인간에 가까운 외모인 수아와는 달리, 애니메이션 형태의 2D 캐릭터인 스마일게이트의 '세아'는 일주일에 3번 라이브 방송을 하는 버추얼(virtual,가상의) 크리에이터다. 모션 캡쳐 방식으로 캐릭터의 움직임을 표현하며 성우가 목소리를 더한다. 친근한 말투와 발랄한 성격이 매력으로 꼽힌다.
스마일게이트의 버추얼 유튜버 세아. 세아스토리 유튜브 채널 캡처
세아는 당초 지난 2018년 스마일게이트의 모바일 게임인 '에픽세븐'을 런칭하면서 게임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제작됐다. 하지만 2년 넘게 팬들과 꾸준히 소통하며 지금은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가 7만명을 넘어선 인플루언서가 됐다.
◇게임 회사에 왜 디지털 휴먼이 필요할까?
온라인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인간, 버추얼 인플루언서는 연예인 못지 않은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인스타그램과 틱톡, 유튜브를 합해 500만명에 가까운 팬덤을 보유한 '릴 미켈라(Lil Miquela)'도 버추얼 인플루언서다.
그녀는 캘빈 클라인, 샤넬 등 명품 브랜드의 모델로 활동했다. 릴 미켈라를 만든 미국 스타트업 '브러드'는 지난 2019년 130억원의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버추얼 인플루언서인 미국의 릴 미켈라(왼쪽)과 일본의 이마(오른쪽). 인스타그램 캡처
일본 3D 이미징 회사가 만든 가상 모델 '이마(IMMA)'도 인스타그램 팔로워 33만명을 보유한 막강한 인플루언서다. LG전자의 디지털 휴먼 '김래아'역시 SNS에 일상 사진을 올리며 팬들과 소통한다.
이처럼 디지털 휴먼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면서 게임회사들도 본격적으로 해당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게임 업계의 향후 도전과제로 '디지털 액터'를 꼽은 엔씨소프트는 지난 2011년부터 AI 조직을 꾸리고 관련 기술을 개발중이다.
날씨 기사를 자동으로 생산하는 AI기자부터 최근엔 KB증권과 함께 AI 프라이빗 뱅커(PB) 서비스를 개발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중이다.
◇커지는 '보는' 게임 시장…디지털 휴먼이 플레이하는 게임
넵튠 제공
e-스포츠 시장 성장도 게임사들이 디지털 휴먼을 개발하는 이유 중 하나다.
'수아'를 인수한 넵튠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20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에 중국 시청자 1억 6천명이 동시 시청했다"며 "하는 게임에서 보는 게임으로 무게중심이 이동중"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휴먼이 인기 게임을 플레이하고 이를 게임 유저들이 관람하는 e-스포츠 컨텐츠 제작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실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게임을 동시에 진행할 수도 있고 사람처럼 지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소수자 혐오 논란을 일으킨 AI 챗봇 이루다처럼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AI 디지털 휴먼의 윤리 문제는 풀어야 할 숙제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개발자들의 사회적 규범 준수가 중요하지만 AI는 데이터를 학습하기 때문에 이용자의 윤리도 중요하다"며 "이번 논란으로 AI 연구가 위축되기보다는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