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열전]SLBM 만드는 한국, 핵잠수함은 미국 눈치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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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씩 바다에 숨었다가 순항·탄도미사일로 정확한 목표 타격
노무현 정부 '362 사업' 좌초 이후 SLBM 개발 중
한국 핵잠수함에 대해 군은 '함구', 정부는 "추진해야"
한미 원자력 협정 저촉 여부와 외교적 마찰 해결 등이 관건

※튼튼한 안보가 평화를 뒷받침합니다. 밤낮없이 우리의 일상을 지키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치열한 현장(熱戰)의 이야기를 역사에 남기고(列傳) 보도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 최초의 3천 톤급 잠수함인 장보고(KSS)-Ⅲ 도산 안창호급의 1번함인 도산 안창호함의 항해 시운전 모습. 해군 제공

 

군이 개발하고 있는 국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지난해 지상 사출 시험에 성공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해군 전략무기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이 최근 8차 노동당 대회에서 핵잠수함 개발을 천명하면서 우리 측에서도 맞대응을 위해 핵잠수함을 운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만 전략무기의 특성상 이를 둘러싼 정치외교적 환경으로 인해 쉽지는 않아 보인다.

북한 관영매체가 2019년 7월 보도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잠수함 시찰 모습. SLBM 발사관이 위치한 것으로 보이는 부분 등이 모자이크 처리돼 있다. 연합뉴스

 

◇핵무기와는 다른 '핵잠수함'…몇 달을 바닷속에 숨어 지내다 정확한 목표 타격

원자력 잠수함 또는 핵잠수함(SSN, Submersible Ship-Nuclear powered)이란 핵무기의 탑재 여부와 관계없이 원자로를 통해 추진 동력을 얻는 잠수함을 뜻한다. 원전이 핵연료를 쓰긴 하지만 핵무기와는 다르듯, 핵잠수함도 핵무기와 다르다.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기존의 재래식 잠수함은 주기적으로 수면 위로 부상해 엔진을 돌려 축전지를 충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잠수함은 이 때 가장 위험해지는데, 헬기나 수상함 등의 공격을 받는 경우 말 그대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이동이 가능한 대부분의 무기체계가 그러하듯이 주기적인 연료 재보급도 필요하다.

핵잠수함은 이런 과정이 필요 없이 자체적으로 물과 공기를 만들어 이론적으로 수십 년 동안 무제한 잠항이 가능하며, 승조원의 피로와 식량 문제 등을 감안해도 몇 달 동안은 바닷속에서 계속 숨어 지낼 수 있다.

대잠전을 치르려면 해상초계기 또는 같은 잠수함 등이 위치를 탐지한 뒤, 어뢰 등으로 공격해야 한다. 때문에 북한의 잠수함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핵잠수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전략핵무기를 탑재한 핵잠수함을 SSBN이라고 부른다. SSBN은 2차 보복 능력을 골자로 하는 상호확증파괴(MAD)를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한 나라가 다른 한 나라에 핵공격을 가하더라도 잠수함은 살아남아 핵보복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어느 나라도 선제 핵공격을 하지 못하게 된다.

미 해군은 현재 적의 함대를 상대하는 공격용 잠수함이든, 전략핵무기 탑재를 위한 SSBN이든 재래식 잠수함 없이 핵잠수함으로만 잠수함 전력을 구성하고 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작전을 펼친다는 점 등을 감안해서다.

꼭 핵무기가 아니더라도 이런 식으로 바닷속에 숨어 있다가 미사일로 지상의 목표를 정확히 타격하는 능력은 공포 그 자체다. 실제로 2003년 이라크전에서 미국과 영국 해군은 구축함과 핵잠수함 등을 동원해 수백발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수도 바그다드에 쏟아부었고, 이는 이라크군의 지휘체계 등을 사실상 마비시켰다.

미 해군 구축함에서 토마호크 미사일이 발사되는 모습. 미 국방부 영상정보시스템

 

지난 2017년 한미연합 탄도미사일 사격훈련 당시 현무-2 탄도미사일의 발사 모습. 군은 현무-2B를 기반으로 국산 SLBM을 개발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십수년 전 무위로 돌아간 '362 사업'…국산 SLBM은 수중 사출 시험만 남겨

과거 노무현 정부는 핵잠수함 보유를 비밀리에 추진했다. 당시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위기가 고조된 것 등이 배경이었다. 해군은 2003년 6월 2일 핵잠수함 건조 계획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해 승인받았고 이 날짜에서 이름을 따 '362 사업'이라 불렀다.

하지만 200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우라늄 농축 비밀실험에 대한 사찰을 통보하면서, 파장 등을 고려해 362 사업은 유야무야됐다.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나는 사이 북한은 지난 2016년 북극성-1형 SLBM의 실제 잠수함 발사 실증에 성공했고 현재 3천 톤급 중형 잠수함도 신포조선소에서 건조 중이다.

이에 대응해야 할 우리 군의 잠수함 전력은 현재 장보고(KSS)-Ⅰ과 Ⅱ를 거쳐 3천 톤급인 Ⅲ(도산 안창호급)의 배치-Ⅰ까지 왔다. 1번함인 도산 안창호함과 2번함인 안무함이 이미 진수돼 취역을 기다리고 있으며, 여기에는 6개의 발사관이 달린 수직발사대(VLS)도 있다. SLBM을 탑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군 당국은 몇 년 전부터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탄도미사일의 탄두 중량과 사거리를 제한하는 한미 미사일 사거리 지침 안에서 SLBM을 개발해 왔다. 이미 잠대지 순항미사일인 해성-3가 있긴 하지만, 제트엔진을 쓴다는 특성상 속도가 느리기에 탄도미사일도 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문재인 정부 들어 지침이 개정되면서 탄도미사일의 탄두 중량은 무제한, 사거리는 800km까지 개발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지난 13일 정부 소식통 등에 따르면, 군 당국은 지난해 국산 SLBM의 지상 사출 시험에 성공하고 올해 수중 사출 시험을 앞두고 있다. 다만 군은 이것이 전략무기라는 점을 의식해 공식적으로는 함구하고 있다. 탄두중량 2톤에 사거리 800km로 추정되는 현무-4 지대지 탄도미사일과 마찬가지다.

국방부 부승찬 대변인은 14일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우리 군은 그동안 전력 현대화를 통해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등에 대한 대응 능력을 갖추고 있고, 앞으로 이를 더욱 보완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단위 전력에 대한 개별적인 확인은 제한된다"고 했지만, 부인은 하지 않았다.

◇원자력 협정엔 "군사적 목적 안 돼"…우회할 수도 있다지만 외교적 문제가 큰 과제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부터 핵잠수함이 필요하다고 역설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이 핵잠수함과 SLBM에 대해 공식적으로 함구하는 이유는 단순히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의식해서만은 아니다. 복잡한 외교적 문제가 함께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한미 원자력 협정 13조 '폭발 또는 군사적 적용 금지'의 내용
이 협정에 따라 이전된 핵물질, 감속재 물질, 장비 및 구성품과 이 협정에 따라 이전된 핵물질, 감속재 물질, 장비 또는 구성품에 이용되었거나 이러한 핵물질, 감속재 물질, 장비 또는 구성품의 이용을 통하여 생산된 모든 핵물질, 감속재 물질, 또는 부산 물질은 핵무기 또는 어떠한 핵폭발 장치, 어떠한 핵폭발 장치의 연구 또는 개발이나 어떠한 군사적 목적을 위해서도 이용되지 아니한다.
한미 원자력 협정에 의해 한국은 우라늄 235를 20%까지 농축할 수 있다. 이러한 저농축 우라늄도 핵잠수함의 원료가 될 수는 있다. 문제는 이것이 '어떠한 군사적 목적을 위해서도 이용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는 13조를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이정익 교수는 지난해 11월 한국해양전략연구소의 'KIMS Periscope'에 실린 글 '우리나라 핵잠수함 개발에 대한 오해와 사실'에서 "국산화에 성공한 대형 상업용 원자력 발전소 설계, 제작, 건설 등의 기술은 모두 미국에서 출발한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됐다"며 "이를 이용해 핵잠수함을 개발할 경우 미국의 시각에 따라서 이것이 평화적 목적이 아니라고 하면, 협정을 위반한 것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잠수함은 들키지만 않는다면 다른 나라 앞바다에도 몰래 숨어들어가 작전을 펼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해에서 잠수함이 800km 사거리를 가진 탄도미사일을 쏘면 평양은 물론이고 유사시엔 베이징도 타격할 수 있다. 미군은 특수부대도 잠수함을 통해 작전 지역에 투입하곤 하며, 반대로 데려오는 일도 가능하다. 한국의 핵잠수함과 SLBM 개발을 주변국들이 경계하는 일이 그다지 신기하지 않은 이유다.

이 때문에 국방부는 지난해 발표한 국방중기계획에서 장보고-Ⅲ 잠수함의 개량형(배치-Ⅱ, 배치-Ⅲ)으로 3600톤급과 4천 톤급 잠수함을 만들기로 하면서, 핵추진 연료 사용 가능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는 정확한 언급을 피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1월 11일 문홍식 부대변인이 핵잠수함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추진체계에 대해서는 결정된 바가 없으며, 기술 수준과 국방 재정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추진해야 할 사안이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다만 범정부 차원에서의 입장은 핵잠수함이 한미 원자력 협정과는 별개라는 식이다. 대표적으로 청와대 국가안보실 김현종 2차장은 지난해 7월 28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한미 원자력 협정과 핵추진잠수함은 완전히 별개"라며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말했다.

같은 해 10월 6일에는 동아일보가 우리 정부가 핵잠수함 개발에 필요한 핵연료를 미국으로부터 구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했다고 보도했고, 청와대는 "외교안보 사안이기 때문에 확인해드릴 수 없으며, (이는) 국익과 관련된 문제로 신중한 접근을 당부드린다"며 함구하기도 했다.

이정익 교수는 "한미 원자력 협정은 미국과 한국의 원자력 물질과 기술에 대한 문제이지 다른 나라의 원자력 기술을 사용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며 "미국과 다른 방식으로 원자로를 개발한 다른 나라나,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하는 경우 이 협정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이 교수는 "핵잠수함이 가지는 민감성 때문에 동맹국과 사전에 외교적인 양해와 조율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핵잠수함이 필요하다면 비확산 등을 기조로 하는 민주당 바이든 행정부와의 긴밀한 조율 등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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