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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대상화 되지 않을 자유 침해"…불법촬영 '무죄' 깬 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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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깅스 입은 여성 뒷모습 불법촬영한 사건
대법 "성적수치심, 창피함 넘어 분노와 모멸감"

연합뉴스

 

버스 안에서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뒷모습을 동영상으로 몰래 촬영한 사건에서 대법원이 불법촬영죄 성립 기준을 새롭게 제시했다. 강간·추행 범죄가 '원치 않는 성행위를 하지 않을 자유'를 침해한 행위라면, 불법촬영은 '자기 의사에 반해 성적대상화가 되지 않을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는 판단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뒷모습 하반신을 몰래 동영상 촬영한 성폭력처벌법 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의 의사에 의해 드러낸 신체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본인의 의사에 반해 함부로 촬영 당하는 맥락에서는 성적 수치심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성적수치심은 (단순히 성적 창피함·부끄러움이 아니라) 피해자가 느낀 성적 모멸감이며,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이용당했다는 인격적 존재로서의 분노와 수치심"이라고 못 박았다.

이번 사건은 1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벌금 70만 원과 성폭력치료프로그램 24시간 이수가 명령됐지만, 2심에서 무죄로 바뀌면서 논란이 됐다. 피고인은 버스 뒷문에 서있던 피해자의 뒷모습을 약 8초간 동영상으로 촬영했고,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이상하게 느낀 피해자가 휴대폰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자 "내려서 바로 지울게요. 한 번만 봐주세요"라고 용서를 구하며 범행을 시인했다.

그래픽=고경민 기자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 몰래 촬영한 사실 자체를 인정하면서도, 최근 일상복으로 활용되는 레깅스 옷차림을 찍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레깅스 밖으로 드러난 신체 부위가 발목 정도였고, 특별히 피해자의 엉덩이를 부각해 촬영하지는 않았던 점 등이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또 피해자가 느낀 불쾌감이나 분노를 '성적 수치심'으로 보긴 어렵다고 밝히면서 성범죄 피해자의 상을 고정시킨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더욱이 무죄 판결문에 몰래 촬영된 피해자의 뒷모습 사진을 모자이크도 없이 그대로 실으면서, 해당 재판을 맡은 의정부지법 형사1부(오원찬 부장판사)의 성인지감수성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법관 사회 내부에서 제기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법원은 2심 재판부의 판단이 모두 잘못됐다고 기각하며 카메라등이용촬영죄 법리를 새롭게 제시한 것이다.

이한형 기자

 

대법원은 "성적 수치심의 의미를 협소하게 이해해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이 표출된 경우만을 보호의 대상으로 한정하는 것은 피해자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소외시키고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을 느낄 것을 강요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성적 수치심은 분노·공포·무기력·모욕감 등 다양한 층위의 피해감정을 포섭하는 의미라는 판단이다. 기존에 대법원이 통신매체이용음란죄 판결에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과 관련해 '단순한 부끄러움이나 불쾌감을 넘어 인격적 존재로서 수치심이나 모욕감,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판시한 부분을 다시 구체화 했다.

레깅스가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있고 피해자도 스스로 레깅스를 입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았느냐는 2심의 판단에 대해서도 "이러한 사정만으로 타인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볼만한 타당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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