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혀있는 울분이란 건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또 신기한 게, 우리나라 판문점에서 누구와 누구가 만난다 하면 모든 기자들이 총동원돼 가서 사진 찍고 그러죠? 여기 판문점이 또 하나 있어요. 우리는 안에 갇혀 있고, 연대하기 위해 오시는 분들은 (건물로) 들어올 수가 없어요." (홍이정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새해를 맞아 모두가 희망을 말하고 있을 때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한파 속 회사 로비에서 농성 중인 이들이 있다. 지난해 11월 사측으로부터 '집단해고' 통보를 받은 LG 청소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근무해온 이들은 '용역업체 변경'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지한 사측에 '고용 승계'를 유일한 조건으로 걸고 지난달 16일부터 농성에 돌입, 2021년 새해를 회사 로비에서 맞았다.
공공운수노조 LG트윈타워분회에 따르면, 사측은 지난 1일 오후 3시쯤 농성장에 공급되던 전기와 난방을 끊었고, 이날 청소노동자들의 점심으로 반입되던 도시락마저 차단했다. 사측은 이 과정에서 어머니를 염려해 노동자의 자녀가 직접 싸들고 온 식사까지 막아세운 것으로 파악됐다. 노조 등의 강력한 반발로 전기와 난방은 이튿날(2일) 오후 1시경부터 다시 공급됐지만, 노조와 시민사회계는 LG에 대한 전방위적 '불매운동'을 진행하겠다고 선전포고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LG트윈타워 집단해고 사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4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LG불매운동을 선포했다. 이은지 기자)
4일 'LG트윈타워 집단해고 사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LG트윈타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한 달간 집단해고 사태를 해결하고자 공대위는 계속해서 LG 측에 공문 발송, 면담 요청 등 대화시도를 해왔다. 그러나 LG는 어떠한 대화나 답변조차 거부하며 새해 첫날부터 음식과 난방, 전기를 끊는 것으로 대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LG는 그동안 쌓아온 '윤리경영에 신경쓰는 착한 기업', '좋은 제품 만들고 선행을 하면서 홍보도 잘 못하는 기업'이란 이미지가 허구에 불과하단 걸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며 "우리는 LG트윈타워의 청소노동자들이 제자리에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당분간 LG제품을 자리에서 치워주시길 모든 시민들께 호소한다. LG가 30%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LG전자·LG생활건강·LG유플러스 제품을 우선적으로 불매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LG그룹의 건물 관리를 전담해온 자회사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S&I Corp.)은 10여년간 LG트윈타워의 관리를 지수아이앤씨에 맡겨왔다. 지수아이앤씨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고모인 구미정씨와 구훤미씨가 각각 50%씩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다. 지수아이앤씨는 지난해 11월 30일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80여 명 전원에게 '계약 만료'를 고지하고, 이들을 개별적으로 불러 200~300만 원 상당의 각기 다른 금액을 '위로금' 명목으로 지급, 회유하려 한 것으로 나타났다.
'LG트윈타워 집단해고 사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4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앞에서 LG 제품을 구매하지 않겠다는 의미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은지 기자
공대위는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이 △미화 부문만 계약을 해지하고 시설 부문은 지수아이앤씨와 계약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다른 업체와 계약을 하며 고용승계 조항을 넣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을 해고하기 위한 '표적 해지'라고 주장했다.
서울서부비정규노동센터 김희연 상임활동가는 "구훤미·구미정은 지수아이앤씨 주식 배당금으로 지난해에만 60억 원을 가져갔다. 그리고 지난해 청소노동자들에게 시급 '60원' 인상안을 제시했다"며 "LG는 자신들과 이 문제는 상관이 없다면서도 언론에 '청소노동자가 무리한 정년 연장을 요구했다'고 퍼뜨리고 있다. 사실관계도 잘못된 주장이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의도는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어 "구광모 회장은 청소노동자의 평균 나이를 알고 있나? 60세에 가깝다. 구 회장 양아버지 구본무 회장은 회장직만 20년을 넘게 했고, 구광모 회장은 벌써 15년째 LG에 있었다. 할 만큼 하셨으니 이제 퇴직하시겠나"라며 "주로 중년의 여성들이 젊은이들이 오지 않는 곳에서 자기 목숨을 갈아넣어 하는 일이 청소다. 최저임금을 주고 부려왔으면서 '돈에 미쳐 오래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로 언론플레이를 하니 행복하신가"라고 반문했다.
LG 제품 불매를 뜻하는 피켓을 들고 LG트윈타워 앞에 서있는 'LG트윈타워 집단해고 사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이은지 기자
김 상임활동가는 "구 회장의 자산은 2조 원이 훌쩍 넘지만 청소노동자들은 자기 집을 포함해도 자산이 2억을 넘는 분이 많지 않다. 당신들이 그동안 준 월급이 200만 원이 되지 않는다"며 "차라리 삼성처럼 '우리는 노조가 싫다'고 말하라. 우리는 지금부터 청소노동자들의 고용승계가 보장되고 노조의 요구안이 관철될 때까지 LG를 불매하겠다"고 선언했다.
공대위가 불매 대상으로 지목한 기업은 ㈜LG가 34%의 지분을 소유하고, LG트윈타워에 본사를 둔 LG전자, 역시 34% 가량의 지분을 보유한 LG생활건강, 통신사 LG유플러스다. 구체적으로 이들이 제조, 판매하는 △엘라스틴 △페리오 △죽염치약 같은 생활용품부터 △샤프란 △자연퐁 등의 세제류, △이자녹스 △더페이스샵 등 화장품, △코카콜라 △환타 △스프라이트 등 LG가 수입판매하는 음료들까지 포함됐다.
'고용승계'를 주장하며 LG트윈타워 로비에서 농성 중인 청소노동자들이 창밖을 향해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은지 기자
홍이정 청소노동자는 "추운 바닥에서 보름째 자고 있지만, 서로의 체온으로 유지하고 있고 보내주신 밥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게 돼 있나보다"라며 "하지만 여러분이 와주시지 않으면 저희는 힘이 없다. 코카콜라를 드시지 말고, 주방에서 쓰는 퐁퐁을 쓰지 말아 달라"고 불매운동 동참을 호소했다.
김 상임활동가는 "5G 시대에 이르기까지 휴대전화도 LG를 썼고, (오늘) 발언을 준비한 것도 LG '그램'(노트북)이다. 불매할 수 있는 제품이 많아 슬프면서도 씁쓸하다"며 "LG 홈스타로 화장실을 청소하는 노동자, 수퍼타이로 바닦을 닦는 노동자들을 LG가 어떻게 짓밟았는지 우리는 똑똑히 기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대위에 따르면 지난달 17일부터 현재까지 2900여 명의 시민들이 '한끼' 연대를 위해 4500만 원에 이르는 개인 후원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LG 청소노동자들의 집단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온라인 서명은 총 2만 명 가량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LG트윈타워 집단해고 사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한편, 지난 2018년 '하청 여성 청소노동과 한국 사회안전망의 허구성'을 주제로 중고령 여성 청소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심층연구를 진행한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이승윤 교수는 해당 논문에서 대부분의 청소노동자들이 하청업체에 '간접고용'돼있는 현실을 이같은 사태의 구조적 원인으로 진단했다.
이 교수는 "원청의 입장에서는 노동자의 고용과 관련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노무관리에 신경도 안 써도 되고', 입찰경쟁을 통해 '말 잘 듣는 하청업체에 건물을 좀 더 주는' 방식으로 노무관리의 비용을 축소할 수 있다는 이익이 존재한다"며 "하청업체의 입장에서도 실질적 관리비용은 얼마든지 축소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리운영비라는 명목으로' 가질 수 있는 이윤이 있기 때문에 원-하청 구조가 이익이 된다"고 짚었다.
아울러 "이러한 구조로 인해 청소노동자들은 고용된 하청업체와의 계약해지나 해고로 인한 고용 불안에 더해 원-하청업체 간 계약해지에 따른 불안정성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고용안정성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