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고 싶은 손주, 할머니는 고위험군"…'조손가정' 덮친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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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2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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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1년을 돌아보다]④취약계층 노인·아이
"아무도 안와 너무 외로워"…독거노인 삶 덮쳐
'조손가정'엔 더욱 치명…"어려운 언택트 시대"
무력감 느끼는 아이들…"잠재된 것 폭발할수도"

※지난해 말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11개월 전인 올해 1월 20일 국내에 처음으로 상륙했다. 누적 확진자는 4만여명을 돌파하며 언제 끝날지 모를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공장이 멈추고 집 앞 상가의 문은 닫혔다. 가족과 친한 친구를 떠나보내게 될까 마음을 졸여야만 했다. '가장 큰 규모이자 장기적인 유행'이 될 것이라는 '3차 대유행' 위기 속 2020년을 돌아봤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지독했던 코로나가 남긴…확진과 완치 그 사이에서
②'코로나 돈가스집' 누명에 폐업…아직 배상 못받았다
③"우린 미개봉 중고"…20학번 대학 새내기의 자조
④"나가고 싶은 손주, 할머니는 고위험군"…'조손가정' 덮친 코로나
(계속)

13일 홀로 사는 할머니가 서울 송파종합사회복지관으로부터 도시락 배달을 받고 있다.(사진=차민지 기자)

 

◇"아무도 안 와 너무 외로워"…독거노인 삶 덮친 코로나19

"우리 앞집 할머니가 가끔 놀러 오고 그러드만 이제는 놀러도 안 와. 어떤 때는 내가 가고도 싶어. 근데 갈 수가 없어. 아무도 안 와. 그럼 외롭기도 해. 너무 외로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내 확진자가 누적 4만4364명을 기록했던 지난 15일 도시락을 배달받던 조모(86) 할머니는 가장 힘든 점을 묻는 질문에 "외롭다"고 답했다. 작년까지는 간간이 있던 이웃 간 왕래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끊겼다. 조 할머니는 "인자 서로 못 보지요. 서로 갈래도 오도가도 안혀. 왜냐하면 무서워서. 무서워서 못 가고 못 오고 그려"라고 말했다.

전염병 사태는 모든 '인간'(人間) 관계에 영향을 미쳤다. 사람과 사람의 접촉이 유일한 감염 원인이 되면서 가족 간 만남도 끊기기 시작했다. 홀로 사는 이모(88) 할머니는 "우리 딸이 지역에 있는데 못 와요. 전화로 '엄마 조심하고 나가지 마세요'라고 해요"라며 "공원이라도 나가고 복지관도 다니고 하면 좋잖아요. 그걸 못하니까 아주 답답해 죽겠어요. 식구라도 있어서 얘기라도 하면 나을 텐데"라고 토로했다.

월드비전이 운영하는 송파종합사회복지관은 이날 독거노인 집 약 70곳을 돌며 도시락을 배달했다. 이름만 도시락일 뿐 안에는 3일 치 식사가 담겼다. 원래 매일 급식을 실시했는데,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가면서 주 2회 방문 배달로 바뀌었다. 노윤호 복지사업팀장은 "초기엔 코로나19 상황이 수시로 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기가 힘든 면이 있었다"며 "이제는 1년 정도 상황이 지속되니까,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분류해서 대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13일 홀로 사는 할머니가 서울 송파종합사회복지관으로부터 도시락 배달을 받고 있다.(사진=차민지 기자)

 

일주일에 두 번 찾아오는 복지관 직원들이 독거노인들에겐 유일한 말벗이다. 노인 대부분이 80대 이상의 고령이다 보니 가족·이웃들과 전화나 화상통화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예전에는 인근 교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반찬 배달을 해주곤 했는데, 이마저도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끊겼다. 80대 중반의 동모 할머니는 "복지관 없으면 못 산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복지관이 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는 외로움만 가중시킨 것이 아니다. 독거노인을 포함한 노인 대부분은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한다. 감염 우려로 노인 일자리 사업이 중단됐고, 집에만 머물다 보니까 이전보다 공과금이나 생활비가 더 많이 나온다. 자식들도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손을 벌리기도 어렵다. 이 할머니는 "딸이 전화로 '엄마 나 죽겠어' 그런다. 코로나 때문에 다 죽을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동 할머니는 "복지관이 열었을 때는 거기서 만나서 얘기하고 놀다 오고 그랬는데, 이제는 맨날 테레비만 보고 있어요. 하루 종일 다 틀어놓고 있고 그러니까 가스비도 무섭고 전기비도 무섭죠"라며 "(전기매트) 쬐깐한거 하나만 틀고 자요. 딸이 전화로 '엄마 보일러 틀었어? 엄마 안 틀고도 틀었다고 하지?'라며 걱정하곤 해요"라고 털어놨다.

13일 송파종합사회복지관에서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을 준비하고 있다.(사진=차민지 기자)

 

◇전염병 사태, '조손가정'엔 더욱 치명…"언택트 시대 적응 어려워"

노인이 유일한 '생계부양자'가 되는 '조손가정'은 코로나19 이후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손가정은 만 18세 이하인 손자·손녀와 65세 이상인 조부모로 구성된 가정을 말한다. 현재 전국적으로 약 5만3천 가구가 있으며, 대상 아동은 약 6만명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8 아동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한부모·조손가구의 월 근로소득은 221만 5천원으로, 일반가구(413만 7천원)의 절반가량에 그쳤다.

초등학교 2학년 손자와 함께 살고 있는 최순자(75·가명) 할머니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다. 밑반찬이 오다가 이제 코로나 때문에 안 온다고 한다. 우리는 그거를 의지해서 밥을 먹고 사는데, 그런 게 끊어진다니까 걱정이 된다"며 "여기는 외딴 곳이라 차가 길에서 한참 들어와야 하는데, 애기랑 같이 집에 있는다는 게 여간 힘이 든 게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아주 그냥 나보고 권투하자, 축구하자 그러는데 어떻게 하나"라며 "컴퓨터 할 줄도 몰라서 애기도 못 가르쳐 주고 있다. 눈도 침침한 데다가 작은 글씨는 볼 수도 없는데, 우리 애기도 얼마나 답답하겠나. 다른 애들은 엄마 아빠가 다 가르쳐주는데, 할머니는 그것도 못하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전북가정위탁지원센터에 따르면 한 70대 할머니는 홀로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인 3형제를 키우고 있는데, 최근 노인 일자리 사업마저 끊기면서 생활고를 겪고 있다. 평소라면 학교에서 급식을 먹을 아이들이 매일 집에 있다 보니 식비나 공과금 등 생활비 지출은 배로 늘었지만, 수입은 줄어들었다. 현재 이들의 소득은 노령연금과 양육보조금, 그리고 일부 수급비가 전부다.

조부모가정 코로나19 영향조사 중 '코로나19로 인해 경험한 가장 큰 어려움'에 대한 설문 결과.(사진=세이브더칠드런 제공)

 

갑자기 닥친 '언택트' 시대를 살아가는 것도 어렵다. 이 가정은 등교가 중단되고 원격수업이 이뤄질 때, 집에 오래된 컴퓨터 한 대 뿐이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정부 지원으로 받았던 것인데, 기종이 오래되고 카메라도 없어서 원격 화상프로그램 '줌(zoom)'을 이용한 실시간 수업에는 제대로 참여하지도 못했다. 또 다른 조손가정의 아동은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 친구 집에 가서 수업을 듣고 오기도 했다.

조손 가정은 외부 활동에도 제약을 받는다. 중학생, 초등학생 아이 2명을 키우는 67세 할머니는 최근 아이들과 한 지역 행사 프로그램에 참여하겠다고 신청했다가 거절을 당하기도 했다. 처음엔 신청을 받았던 주최 측이 나중에 "65세 이상은 면역력이 취약하기 때문에 참여를 안했으면 좋겠다"고 연락을 해 온 것이다. 할머니와 같이 활동하고 노는 걸 좋아하던 초등학생 손자녀가 많이 아쉬워했다고 한다.

전북 지역 약 680명 조손가정 아동을 관리하고 있는 센터의 전미란 팀장은 "아이들도 답답해하는 등 여러 가지 힘든 점들을 가정에 쏟아낼 텐데 조부모님이 이런 아이들을 케어하는 데 어렵다고 주로 말씀하신다"며 "특히 장애 아동이나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아동들을 양육하시는 분들은 아이들이 학교마저 안가다 보니 잠깐의 쉴 수 있는 여력이 없어지면서 체력적 한계를 호소하신다"고 전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진행한 '조부모가정 코로나19 영향 조사'(복수응답)에 따르면 조부모들은 '경제적 어려움'(44%)을 가장 많이 선택했고, '외부활동 제약'(42%), '손자녀 학습활동 관리'(35%), '손자녀 미디어 사용 관리'(26%) 순으로 어려움을 호소했다. '양육에 대한 어려움'과 '감염 불안감' 등도 있었다. 손자녀들은 '외부활동 제약'(86%)과 '미디어 과다 사용'(21%), '끼니 해결'(11%) 등이라고 응답했다.

◇'정서적 성장기' 아이들에게도 악영향…"게임 많이해 우울증 초기 증상도"

재난 상황은 각자에게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사회적 약자인 '노인'과 '아이'는 다른 계층에 비해 큰 치명타를 입는다. '정서적 성장기'인 아이들은 갑자기 바뀐 일상에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가고 있다. 외부 활동에 제약이 생기면서 살이 찌거나 우울증을 호소하는가 하면, 공교육 붕괴로 '교육 공백'의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동·청소년 심리상담센터 마음소풍 관계자는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가면서 무기력감을 많이 느끼고, 집에서 게임을 많이 하면서 부모님들이랑 갈등이 매우 높아졌다"며 "최근 12월부터는 코로나 상황이 심해지니까 무기력감·우울감이 더욱 증폭됐다. 학교 가는 일수는 줄었지만, 그마저도 안 가려는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 3~4월 신학기에 학교생활을 하면서 '신학기증후군' 등 아이가 느끼는 어려움을 부모나 선생님들이 알게 되서 상담을 오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올해는 이런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며 "잠재돼 있다고 봐야 한다. 코로나가 진정되면 그 동안 학교를 못 갔던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대한 어려움이나 이런 게 두드러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중에서도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더욱 취약한 상황에 몰리고 있다. 부모가 한국어에 서툴러 수시로 바뀌는 재난정보 습득이 어렵고, 교육 공백에 대처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9년 전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온 엄마 A(39)씨는 "첫째가 초등학교 2학년인데, 제가 국어를 가르치는 건 잘 못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1~2학년은 EBS를 보라고 하는데, 문제부터 이해하기 어려웠다"며 "모르는 건 나중에 아빠한테 물어보면서 하긴 했지만, 처음 아이가 저한테 물어봤을 때 바로바로 대답을 못하니까 애도 답답해 하더라"라고 말했다.

아이가 초기 우울증 증세도 보였다. A씨는 "아이가 게임을 너무 많이 하길래 남편 아는 사람 중에 아동 심리를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이 계셔서 검사를 받아봤다"며 "아이한테서 안 좋은 생각 같은 게 많이 나온다고 하더라. 아직 우울증까지는 아니고 약간 위험한 상태라고 하는데 걱정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밖에 나가 운동도 못 하고 놀 수 있는 친구도 없다 보니 스마트폰 게임에 빠진 것이다.

A씨는 "최근 거리두기 단계가 또 바뀌면서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만 수업한다고 연락이 왔는데, 그게 학교 수업만 안 한다는 건지 방과후 수업도 안 한다는 건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며 "결국 남편이 일본어로 통역해주고 나서야 정확하게 이해했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A씨는 뉴스를 통해 재난정보를 받아 보려고 해도 말이 너무 빠르고 어려운 말을 많이 써서 이해하기 어렵다고도 토로했다.

13년 전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와 초등학생 세 자녀를 둔 엄마 B(36)씨 또한 "아침마다 대학병원에 가서 통역을 해주는 자원봉사 일을 하고 있는데,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다문화 가정은 언어가 안 돼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더라"며 "다문화 센터에 가야 한국말도 배울 수 있는데, 이마저도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다 보니까 어려운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열매 관계자는 "올해는 코로나랑 경기침체로 정말 어려운 한 해를 보내고 있다. 특히 1인 노인가구나 조손가정 등에 복지서비스가 중단되는 등 어려움이 더 커진 상황"이라며 "초기 긴급 지원으로 천억원 넘는 금액을 모금해 지원했는데, 내년부터는 비대면 복지 서비스 등을 개발할 예정이다. 나눔으로 희망을 선물할 수 있도록 사회의 많은 참여와 관심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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