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올스타엔터테인먼트 제공)
※ 스포일러 주의어딘지 낯설지 않은 이야기임을 깨닫더라도 아니쉬 차간티 감독이 주는 긴장과 초조함에서 쉽게 발을 뺄 수 없을 것이다. 영화 '런'은 초록색 알약으로부터 시작된 모녀 사이 의심과 이를 덮으려는 거짓말이 얽히고설키면서 빚어내는 숨바꼭질에서 시작, 착실하게 스릴러를 향해 나아간다.
'런'(감독 아니쉬 차간티)은 선천성 질병 때문에 외딴집에서 엄마 다이앤(사라 폴슨)과 단둘이 지내던 소녀 클로이(키에라 앨런)가 엄마에 대한 사소한 의심으로 인해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클로이는 태어날 때부터 온갖 질병과 장애로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그는 오직 엄마와 함께 살며 엄마를 통해 일상을 보낸다. 불편한 몸 때문에 공부 역시 홈스쿨링을 해야 했다. 클로이는 자신을 사랑으로 돌보는 엄마 덕분에 힘들지만 하루하루 긍정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클로이는 식탁에 놓인 장바구니에서 물건 하나를 발견하게 되고, 믿었던 모든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초록색 알약에서 시작한 균열은 클로이의 삶 전체로 퍼져나간다.
(사진=㈜올스타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는 '서치'로 스릴러 장르에 두각을 드러내며 할리우드의 주목받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아니쉬 차간티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다.
전작 '서치'에서 감독은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이용해 현대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들 심리를 자극하며 새로운 스릴러를 선보였다. 이와 반대로 신작 '런'에서는 온라인 세상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클로이의 상황에 비추어 아날로그적인 방식이 이용된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클로이가 가진 한계를 강조하고 관객에게 인식시킨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면서 클로이가 초록 알약을 보며 엄마에 관해 의심을 품게 되면서 관객 역시 점차 초반의 인식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어쩐지 의심스러운 초록 약을 발견한 클로이, 그걸 가져왔지만 부인하는 엄마 다이앤 사이 관계는 초조함을 자극한다. 무언가 숨겨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과 그것이 언제 드러날지, 그리고 집안에 고립돼 휴대폰도 없고, 인터넷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클로이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진실을 찾을지 그 사이 시간이 긴장감으로 촘촘하게 차 있다.
어찌 보면 익숙하고 전통적인 스릴러 영화의 기본 구성처럼 보이지만, 그 낯익은 모습 안에서도 관객들을 초조하게 만드는 것은 감독이 가진 능력이자 장점이다. '서치'를 21세기가 만들어 낸 스릴러라고 한다면, '런'은 고전적인 스릴러 장르에 대한 감독의 재해석에 가깝다.
(사진=㈜올스타엔터테인먼트 제공)
음향 효과를 통해 관객들의 공포 심리를 자극하는 점도 뛰어나지만, 시각적인 요소들을 이용해 클로이와 다이앤의 심리와 상황을 알리기도 한다.
'런' 속 상징적인 색은 초록색과 보라색이다. 두 색은 서로 보색대비를 이루는 색으로, 보색끼리 대비시키면 두 가지 색의 채도가 높아진다. 실제로 극은 후반으로 갈수록 다이앤과 클로이 사이 대비가 점점 명확해진다.
색 대비뿐 아니라 색이 갖는 의미가 전반과 후반에서 달라지는 것 역시 두 인물의 변화를 통해 알 수 있다.
초반 다이앤을 초록색 병실 한가운데 둠으로써 초록색을 다이앤의 상징색으로 드러낸다. 녹색은 생명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독'을 상징하기도 한다. 다이앤이 마련한 수상쩍은 약 역시 초록색이며, 이는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이다.
반면 클로이의 색은 보라색이다. 클로이가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의 상징색 역시 보라색이다. 보라색은 병약함과 죽음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치유와 강력함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다이앤과 클로이의 색 대비를 생각하며 영화를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영화 곳곳에는 감독이 숨겨 놓은 이스터 에그도 발견할 수 있다. '서치' 속 배우들이 어디 숨어 있는지, 클로이가 초록 약의 정체를 알기 위해 찾아간 약사의 이름이 무엇인지, 클로이는 정말 걸을 수 없는 게 맞는 건지 등등 말이다.
스릴러 장르에서 특히 강렬한 존재감을 선보인 배우 사라 폴슨이 다이앤으로 변신해 또 다른 섬뜩함을 보여준다. 이번 영화가 첫 장편 영화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사라 폴슨의 카리스마에 맞서 끝까지 극을 끌고 나간 신예 키에라 앨런도 돋보인다.
혹시나 '서치'를 보지 않은 관객이 '런'을 본 후 '서치'를 본다면 아니쉬 차간티 감독의 역량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90분 상영, 11월 20일 개봉, 15세 관람가.
(사진=㈜올스타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