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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은 지난 14년 동안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살아온 것으로 보이지만, 피해자는 범인이 누군지도 모른 채 불안에 떨며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고통 속에 살았다. 피해 여성의 머리와 얼굴에는 여전히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피해자가 겪었을 고통을 고려하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한 형사법정에 재판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피고인석에 서 있던 남성은 말끔한 회색 코트를 입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징역 8년이라는 실형을 선고받아 구속된다는 말에도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정면만 응시했다.
서울의 한 노래방에서 일하던 여성을 벽돌로 내리찍고, 기절한 여성을 성폭행하려고 한 남성이 범행 후 14년 만에 붙잡혀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지난해 9월 강간 신고로 입건된 피고인의 DNA가 미제로 남아 있던 사건 현장 DNA와 일치하는 사실을 확인해 사건의 실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2부(박상구 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등 상해) 혐의로 기소된 A(38)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고 27일 밝혔다. 전날 열린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A씨 에게 향후 7년간 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 기관 취업 제한도 함께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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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지난 2006년 6월 10일 서울 송파구의 한 노래방에서 근무하던 여성의 머리와 얼굴 등을 미리 준비한 벽돌로 내리치고, 맥주병으로 얼굴에 상처를 내고 성폭력하려고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무려 14년 전 일어난 범행을 두고, 그것도 공소시효를 넘길 수도 있던 상황에서 이제야 재판이 열린 사연은 이렇다.
법원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수사를 진행했지만 범인을 특정하지 못해 사건은 장기 미제 상태로 남게 됐다. 그러던 중 지난해 9월 경찰에 접수된 강간 신고 사건 피의자였던 A씨의 DNA가 2006년 당시 범행 현장에 있던 티셔츠에서 채취한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극적으로 14년 만에 피의자를 검거하는 순간이었다.
강간상해 혐의의 공소시효는 원래 10년이다. 2006년 6월 일어난 범죄의 공소시효 만료는 원칙대로라면 2016년에 끝나지만, A씨의 경우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법) 제21조 2항이 적용됐다. 'DNA 등 그 죄를 증명할 수 있는 과학적인 증거가 있으면 공소시효가 최대 10년 연장된다'는 조항에 따라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고 연장된 것이다.
송파경찰서는 유전자 대조 작업을 벌인 뒤 A씨를 지난 5월 29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서울동부지검은 6월 4일 A씨를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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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범행 후 14년 만에 선 법정에서 "사건 당시 술에 만취했고, 사물 변별력이나 의사결정 능력이 미약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은 미리 벽돌을 준비할 정도로 계획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 노래방에 들어가서도 피해자와 대화를 나눴고, 피해자도 피고인이 술에 많이 취한 상태가 아니었다고 수사 기관에서 진술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 "피고인의 범행 죄질이 매우 나쁘고 사회적 비난 가능성도 높다"며 "피해 여성은 이 사건으로 무려 8일 동안이나 의식을 잃었고 30일이 넘도록 치료를 받았다. 이후 범행 당시 입은 정신적 충격과 공포 때문에 현재까지 공황장애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까지 앓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 14년 동안 피고인은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살아온 것으로 보이지만, 피해자는 범인이 누군지도 모른 채 불안에 떨며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고통 속에 살았다. 머리와 얼굴에는 여전히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있다"며 "피해자가 겪었을 고통을 고려하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