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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경에게 '웰컴 투 X-월드'는 '변화'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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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다큐 영화 '웰컴 투 X-월드' ② 최미경씨의 이야기
최미경의 'X-월드'

다큐멘터리 영화 ‘웰컴 투 X-월드’ 출연배우 최미경 씨가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12년이다. 남편 없이 홀로 시아버지와 두 아이를 돌보며 집안의 모든 경조사 등을 도맡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갑작스럽게도 시아버지가 선언한다. 독립하라고 말이다.

며느리이자 엄마인 최미경씨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두려운 마음마저 든다. 그렇게 '독립'이라는 낯선 단어를 마음에 안고 딸 태의와 집을 알아보러 다닌다. 그런데 우연인지, 내 마음인지 발걸음 닿는 곳마다 지금 사는 집과 지근거리에 위치한 곳뿐이다.

집을 구하러 다니며 현실의 벽에 부딪히기도 하고, 어쩐지 미래가 불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 엄마로만 존재할 것 같던 미경씨 삶에 변화가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더 넓은 세상, 한정된 'X-월드'에서 무한한 'X-월드'로 한 걸음 내딛는 순간이다.

'나'를 위해 나아가는 미경씨 얼굴은 밝아 보였다. 최근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의 얼굴에 피어난 건 영화에서 말했던 '가능성'이었다. 이날은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웰컴 투 X-월드'(감독 한태의)를 공개한 날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웰컴 투 X-월드’ 출연배우 최미경 씨가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 이제는 자신감이 생긴다

"늘 보면서 많이 울어요. 태의가 아빠에 대한 내레이션을 할 때 안 그러려고 해도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제가 자꾸 보면서 느끼는 게 내가 되게 많이 강해졌다는 거예요. 태의가 옆에서 도와주긴 했지만, 뭐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전에는 무서워서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독립한 지도 3년이 넘었다. 지금, 스크린을 통해 자신의 삶을 마주했을 때 나오는 게 눈물만은 아니었다. 한태의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처럼 엄마 미경씨는 영화를 볼 때마다 '나'로서 살아가는 자신을 마주한다. 그리고 다시금 되새긴다. 나도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웰컴 투 X-월드'는 남편 없이 12년째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엄마 미경과 그런 엄마를 보며 결혼을 피하게 된 딸 태의가 독립하는 여정을 담은 가족 다큐멘터리 영화다.

감독은 자신의 어머니이자 한 여성을 따라가며 '며느리' '엄마'가 아닌 '최미경'이라는 개인이 살아갈 미래와 가능성을 바라본다. 동시에 자신도 미처 몰랐던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며 그간 오롯이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마음을 알아간다.

(사진=㈜시네마달 제공)

 

미경씨는 인터뷰 내내 딸 태의에 대한 자랑과 걱정, 고마움을 표현했다. '나'의 이야기보다 '딸'의 이야기가 더 많았다. 딸에 대해 말할 때 미경씨 모습은 행복 그 자체였다.

"'엄마 혼자서 잘 못 할 것 같은데' '내가 도와줘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니까 얘(태의)도 조금 마음이 놓일 거 같아요. 늘 밖에 나가서도 엄마 걱정을 많이 해요. 친구랑 있을 때는 엄마를 잠깐 잊어도 되는데…. 친구들을 만나면 친구한테 빠져서 즐겁게 지내면 좋겠어요. 엄마도 잘 할 수 있으니까."

비록 기존에 살던 집에서 5분 거리이긴 하지만 모녀만의 집이 생겼고, 각자 공간이 생겼다. 한 감독은 자신의 방이 생기니 무척 좋았다고 했다. 친구들도 불러서 놀 수 있고, 집에서 자고 가라고 말할 수도 있다. 엄마 미경씨도 그 점이 가장 좋았다.

"엄마로서 태의 방이 없었던 게 너무 미안했거든요. 조그맣지만 거실도 있고, 태의만의 공간이 생겼어요. 친구들도 마음껏 둘러앉아 밥도 먹을 수 있다는 게 정말 좋더라고요. 그게 제일 행복했어요.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게 좋아요."

다큐멘터리 영화 ‘웰컴 투 X-월드’ 출연배우 최미경 씨가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 쉽지 않은 결정, 딸을 통해 용기를 얻다

독립해서 가장 좋은 점은 역시나 '딸'과 관련된 것이었다. 딸 태의는 12년 만에 찾아온 독립의 기회인 만큼 살던 집에서 멀리 벗어나길 바랐다. 영화 속에서도 엄마는 집 근처 부동산만 찾았고, 태의는 옆에서 어느 동네가 어떻게 좋다면서 엄마를 유혹했다. 왜 미경씨는 멀리 떠나지 않은 걸까.

"그런 거 있잖아요. 어머님 아버님과 되게 멀어질 것 같은 느낌? 그나마 근처에 있을 때는 무슨 일이 생기면 빨리 달려갈 수 있고, 한 번 볼 거 두 번 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서 멀리 가는 게 용납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태의가 만류하는데도 근처 집을 보게 됐죠."

한 감독은 엄마가 독립해서도 할아버지의 모든 것을 챙겨야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됐다. 처음에는 설득하려던 딸도 어머니 나이에 살던 곳에서 멀어진다는 게 부담이라는 친구들 말을 듣고,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마음 편하다고 하니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 스스로 변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다.

(사진=㈜시네마달 제공)

 

사실 처음부터 미경씨에게 독립이 쉬운 결정만은 아니었다. 영화 속 한 감독의 내레이션으로도 나오지만, 어쩐지 미경씨는 독립을 권하는 시아버지가 달갑지 않았다. 고민스러웠고, 섭섭했다.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끝까지 모시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버님은 네가 편하게 살라고 하시더라고요. 자식을 내치는 것 같아 섭섭하기도 하고, 아버님이 왜 저런 말씀을 하시나 고민도 많이 했어요. 아버님 혼자 계셔야 하니 걱정도 되고요. 그런데도 독립할 수 있었던 건 진짜 큰 결심이었어요. 태의가 있었기에 잘 할 수 있었죠. 지금껏 이렇게 살아올 수 있게 만들어준 것도 아이들이에요."

기승전 '자식자랑'에 옆에 있던 한 감독이 한마디 던졌다. "엄마의 딸 자랑…." 그럼에도 미경씨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아들딸 자랑할 때 제일 행복하다. 내가 해준 것에 비해 정말 잘 커 줘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웰컴 투 X-월드’ 출연배우 최미경 씨가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 아내, 며느리, 엄마…이제는 '최미경'으로서 변화를 시도하다

이전에는 '아내' '며느리' '엄마'의 삶에 비중을 두고 살았다면 독립 이후 미경씨는 조금씩 '최미경'으로서 삶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새로운 가족인 반려견 호주와 함께하는 삶도 즐겁다. 자전거도 배웠다. 작은 카페를 차리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뭔가 하나씩 해보고 싶은 게 생기고, '나'를 위한 것을 해보려 한다. 미경씨도, 한 감독도 좋은 건 바로 이러한 '변화'다.

며느리라는 이름, 엄마라는 이름에 갇혀 잊었던 미경씨 안의 여러 가능성을 꺼내 보는 게 어쩌면 진정한 독립인지 모른다. 이는 한 감독과 미경씨가 '웰컴 투 X-월드'를 통해 세상의 모든 엄마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사진=㈜시네마달 제공)

 

모녀가 이번 추석에 새롭게 시도한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차례를 지내지 않은 거다. 미경씨는 30년 동안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해 정성껏 제사와 차례를 지내 왔다. 그런 미경씨에게 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은 건 정말 큰 도전이었다. 물론 버릇처럼 장을 봐서 냉장고에 넣어뒀지만, 결과적으로 올해는 넘겼다. 미경씨는 "꼭 안 해도 되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몰라도 우리 세대에서는 명절도, 제사도 정말 중요시한다. 그런데 꼭 차례를 안 지내도 성묘 가서 정성껏 인사하면 된다는 말을 듣고 태의에게 우리도 하지 말자고 말했다"며 "엄마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곤 상상도 못 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제사, 차례라는 건 상징적인 단어다. 가부장제 아래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며느리, 엄마의 삶에서 조금쯤은 짐을 덜고 다른 방식으로 해나가도 된다는 의미다.

"고정관념을 싹 버려도 될 거 같아요. 죄짓는 게 아닌 거 같고, 또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더라고요. 엄마들도, 우리 세대도 조금씩 바뀌어도 될 거 같아요. 저도 해보니 몸이 편하기도 하지만, 마음을 그렇게 불편하게 안 가져도 되는 거 같더라고요. 조금씩 조금씩 저도 이렇게 변해 보려고요."(웃음)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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