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북한이 대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등의 도발을 감행할 것이란 일각의 예상은 결국 빗나갔다.
북한은 미국 대선일인 3일(현지시간) 현재까지 미국 차기 대권구도에 영향을 줄 만한 군사 행동을 하지 않았다.
지난달 10일 당 창건 기념일에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을 공개했지만 그 자체를 도발로 보기에는 강도가 약하다.
국내외 상당수 전문가들은 북한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쓴맛을 본 뒤 지난해 연말 '거대한 힘' 비축을 언급하며 강성 기조로 돌아선 무렵부터 연내 도발 가능성을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은 지난 6월 13일 미국 NBC방송 인터뷰에서 북한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응징 차원에서 "10월의 기습 도발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당시 NBC방송은 전날 발표된 리선권 북한 외무상의 6.12 북미정상회담 2주년 담화를 거론하며 북한이 미국과의 '외교적 시간 낭비'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평가했다.
클링너 연구원과 마찬가지로 대북 강경파로 분류되는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6월 17일 한반도 문제 관련 화상회의에서 북한의 다음 도발은 SLBM 시험발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수미 테리 CSIS 선임연구원도 이날 회의에서 "북한이 미국 대선을 앞두고 도발을 통해 긴장을 고조시켜 차기 미국 대통령과의 협상에서 협상력을 키우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 석좌는 심지어 9월 22일자 국내 일간지 칼럼에선 "미국 대선이 북한 도발 없이 치러진다면 그건 뭔가 '평시'(business as usual)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암시한다"며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 미국 대선을 전후해 북한의 도발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국내에서도 비슷한 관측이 나왔다. 대표적으로 위성락 전 러시아 대사는 5월 24일 국내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의 7~8월 도발설을 제기했지만 낭설이 됐다.
그는 북한이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해 제재 완화·해제를 받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핵실험이나 ICBM보다는 한 체급 아래인 신형 SLBM을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이 같은 도발설은 북한이 당 전원회의나 중앙군사위 등을 소집해 강경 어조를 보일 때마다 거론됐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빗나갔다.
지난달 10일 열린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공개된 신형 ICBM(사진=노동신문/뉴스1)
반대로, 북한이 미국 대선 전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낮다고 예상하고 적중시킨 전문가도 있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차관보나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 등으로, 그런 판단의 이유는 매우 간명했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바란다는 것이다.
탈북민 출신인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도 8월 12일 헤리티지 재단 화상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자신에게 유리한 합의를 성사시키는 데 최적의 기회라는 것을 잘 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승리 가능성을 해칠 수 있는 그 어떠한 도발적인 것도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북한이 워낙 예측 불가한 존재이긴 하지만, 이처럼 전혀 상반된 전망이 아무렇지 않게 병존할 수 있다는 것은 북한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물론 북한은 미국 대선을 앞두고 도발을 자행해온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선대와는 달라진 김정은 정권의 행태나 트럼프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관계 등을 감안하면 기존과 다른 예상이 충분히 가능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한편 서욱 국방부 장관(9월 14일 인사청문회)이나 마커스 갈로스카스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북한담당관(8월 27일 RFA방송) 등은 북한의 미 대선 후 도발 가능성도 언급했다. 아직은 여전히 상황이 유동적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