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싸움 속 폐기된 택배법, 그 사이 9명이 스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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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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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 '택배법' 발의했지만…여야 싸우다 폐기
과로사 매년 있어 왔는데…국회 '안일한 인식' 비판
화운법 등에 애매하게 걸쳐있던 택배업…"별도법 필요"
또 발의됐지만 이번엔 다를까…이해관계자 '설득' 관건

(사진=자료사진/이한형 기자)

 

배송업무 중 과로로 숨진 택배기사가 올해만 9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 같은 '참사'를 막을 수 있던 법안이 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여야 의원들이 '공청회를 어느 단계에서 열 것인가'로 논쟁을 벌이다 결국 폐기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다가 올해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졌고 택배 물량이 폭증하면서 참사로 연결됐다. 코로나19 사태까지 예상할 수는 없겠지만, 이미 이전부터 매년 과로사가 발생해 왔던 점을 고려하면 국회가 이 문제에 안일한 인식을 갖고 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0대 국회, '공청회 어느 단계에서 열까' 싸우다가 논의 지연…결국 '폐기'

지난 2019년 11월 1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4차 전체회의를 열고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안'(일명 택배법)을 안건으로 상정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이 이를 대표 발의한 지 약 3개월 만이었다.

해당 법안에는 △표준계약서 보급 △계약갱신청구권 보장 △택배회사·대리점의 손해배상 연대책임 및 지도·감독 의무 △산업재해 보험 가입 확대 △부당한 대가(이른바 백마진) 지급·수취 금지 등 택배기사를 보호할 방안이 모두 제시돼 있었다.

하지만 당시 국토위 소속 여야 국회의원은 해당 법에 대한 공청회를 언제 열 것인지를 두고 싸우다가 결론을 내지 못하고 논의가 무산됐다. 통상 새로 만드는 제정법의 경우 공청회를 거치도록 돼 있는데, 이를 상임위 전체회의 단계에서 할 지, 법안 소위로 넘긴 다음에 할 것인지를 두고 공방만 벌인 것이다.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은 "통상 제정법의 경우 공청회를 가지는 관례를 따랐다"며 "소위 회부 전에 다양한 이해관계인과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는 상임위 차원의 공청회를 한번 개최하고 소위에서 심사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냈다.

박홍근 의원(사진=연합뉴스)

 

반면 법안을 대표 발의한 박 의원은 "지난번 드론산업법 등 몇 가지와 관련해서는 우리 위원회 전체 공청회가 아니라 소위 공청회 방식으로 절차를 압축해서 심사의 효율성을 가한 바가 있다"며 "여야 간사 협의를 통해 소위에서 약식으로 이해관계자를 불러서 의견을 듣고 심사에 임하면 절차상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같은 당의 윤관석 의원 또한 "아까 사전 간사 회의에서는 소위 공청회로 합의를 했었다"면서 "(회의에서) 새롭게 전체 공청회 제안이 나왔지만 여기서 바로 바꾸기는 어려운 상태이니 간사 간에 합의를 하기로 하자"고 제시했다.

하지만 당시 야당 간사였던 박덕흠 의원은 논의를 하겠다며 정회를 요청하고는 소속 의원들과 함께 회의장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당일 회의는 추가로 열리지 않았고, 8일 뒤에나 열린 5차 회의에서 간신히 공청회를 진행하기로 의결됐다.

이후 같은 해 12월 6일 공청회가 열리긴 했지만, 더 이상의 진척은 없었다. 곧 21대 총선거가 다가오면서 택배법에 대한 관심은 시들어졌고, 국회의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여러 법에 끼어 누더기로 버텨 온 택배업…"별도법안 필요"

택배는 '신산업'이지만 규제할 법안이 따로 없다. 기존 화물 운송 사업자를 규제한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화운법) 일부를 조금씩 고쳐가면서 간신히 관리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더 이상 한계에 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택배법이 별도로 제정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택배가 아닌 일반 화물 운송 사업자는 '독립성'이 핵심이다. 한 차례 물건을 싣고 간 다음에 빈 공간에 다른 업체 물건을 다시 싣고 돌아오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화운법은 이 같은 독립성에 초점을 맞춰 설계됐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반면 택배기사는 이들과 달리 택배회사에 '전속' 돼 있다. 예를 들어 CJ대한통운 택배기사면 오직 CJ대한통운 물건만 옮겨야 한다. 택배기사가 차에 공간이 남는다고 타사의 물건을 받아 배송해 줄 수는 없다. 한 회사에만 노무를 제공하는 이 같은 전속성 때문에 택배기사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된 것이다.

다만 개인이 계약을 맺어 운송 사업을 영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차량 등록·관리가 필요했다. 이 때문에 택배 차량도 화운법의 적용을 받았다.

택배회사의 직접고용이 많았던 초기에는 화운법을 적용해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택배회사는 점차 대리점으로 아웃소싱 하기 시작했다. 2018년 한국교통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택배기사가 대리점과 계약을 맺는 경우는 93.9%, 택배회사와 직접 계약은 6.1%로 나타났다. 형태는 위탁계약이 92.6%였다. 문제는 화운법에서는 '주선'이 금지돼 있어 이 같은 중간 대리점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에 택배업의 특성 중 하나인 '시설물'도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택배회사가 '일일배송' 등 빠른 배송이 가능한 이유는 중간에 '서브(sub) 터미널'을 만들어 '분류업무'를 추가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구역별로 물건을 분류했고, 택배기사는 맡은 구역만 반복해서 배송하면 됐다. 터미널과 같은 물건을 보관하는 곳은 '물류시설물법'의 적용을 받는다. 하지만 '분류업무'에 대한 규정은 따로 없다.

결국 법의 사각지대인 '대리점'과 '시설물', 이 두 가지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관리·감독 의무에서 벗어난 대리점은 택배기사를 상대로 각종 갑질을 일삼기 시작했다. 최근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택배기사 고(故) 김광택씨는 유서를 통해 대리점의 위약금·보증금·권리금 등 갑질 문제를 폭로한 바 있다. 물론 마찬가지로 대리점도 본사 등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했을 때 보호받지 못한다.

과로사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 배송 전 '분류업무' 역시 규정이 없다보니 택배기사에게 떠맡겨지는 구조가 됐다.

한국교통연구원 물류정책·물류4.0연구팀 민연주 팀장은 "화물운송 시장과 택배 시장은 기본적인 구조와 체질이 다르다"면서 "앞으로 택배 시장이 더욱 커질텐데, 시설물까지 같이 다룰 수 있는 별도법을 만들어 서비스를 진흥시키는 방법으로 가는 것이 적합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시 발의된 택배법…이번엔 통과될까

21대 국회가 개원된 후 박 의원은 기존 법안의 내용을 일부 수정해 택배법을 다시 대표 발의했다. 지난 6월에 한 번, 이달 8일에 한 번 총 두 차례였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사업자 단체도 반대하고 야당도 반대해 법안이 폐기됐던 것이라, 6월 발의 이후 이해당사자 간 의견 차이를 좁히기 위해 협약식 등 중재 과정을 거쳤다"며 "일부 조문을 조정해 중재안을 마련했고 10월에 다시 발의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법안이 발의된 지난 8일 국회에서는 '생물법(택배법) 연내 제정을 위한 사업자·종사자·국회·정부 협약식'이 열리기도 했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 박홍근 의원을 비롯해 국토교통부 손명수 2차관, CJ대한통운택배대리점연합 김종철 대표, 전국택배연대노조 김태완 위원장 등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자리했다.

이번 법안에서는 종전과 달리 '분류' 작업을 '생활물류'의 정의에서 제외하고 책임 소재를 명시하지 않았다. 업체 간 편차가 커 일괄적으로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사업자와 종사자가 별도로 맺는 표준계약서에 분류 업무에 대한 책임 소재를 담도록 규정했다.

택배법 제5조 1호에는 '화물자동차 운송사업의 허가를 받은' 경우에 한 해 택배서비스사업자로 등록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전부터 화물업계에서는 택배법을 통해 '무제한 증차'가 가능한 것 아니냐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택배법에 따라서 임의로 증차되는 부분은 없다"며 "화운법으로 허가가 된 사업자 중에서 등록신청을 별도로 하는 단계를 거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화물업계는 물론 택배기사들까지 볼멘소리가 나오는 모양새다.

일부 택배기사들은 국회가 중재안이라는 이름으로 택배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일방적으로 악화시키고 택배사업자에 대한 특혜를 강화한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택배지부 박성기 지부장은 "새로 발의된 택배법은 두 차례 발의된 법과 달리 택배종사자 중 분류종사자의 규정 자체를 삭제했다"며 "표준계약서로 해당 부분을 해결한다고 하지만, 표준계약서 자체도 권고사항이지 전면 도입한다는 내용은 없다"고 비판했다.

화물업계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화물업계 관계자는 "택배노동자쪽의 민원이 많이 들어간 법안이라고 본다"며 "기존 화운법 내에서도 운수업자를 규정하는 내용이 많다.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화운법을 개정해 택배 관련 문제를 규제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최근 이어지는 택배기사 과로사 대책의 하나로 택배법을 이번 정기국회 안에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택배법이 지난 국회와는 다른 결론이 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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