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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공대를 보내 자살임무를 수행할 수도 있다"
지난해 4월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이 남중국해 한복판 스프래틀리 군도에 있는 티투 섬에 중국 어선 수백척이 몰려들자 중국에 보낸 경고 발언이었다.
그러나 1년 뒤인 올해 7월 두테르테의 호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중국과 필리핀이 (섬에 대한 영유권을) 모두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무기가 있고, 우리는 없다.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는가? "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사진=연합뉴스)
두테르테가 고분고분해진 이유는 곧바로 이어진 설명에서 추측할 수 있다.
"9월이면 (코로나19) 백신을 입수할 수 있다. 나흘 전 중국의 시진핑 주석에게 '필리핀에게 우선적으로 중국산 백신을 공급해 달라, 만약 우리가 사야 한다면 외상으로 달라'고 간청(plea)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전세계적으로 장기화되면서 경제가 피폐해지자 세계 각국이 백신 구하기에 매달리고 있다. 이 틈을 노려 백신 개발에 선두에 선 일부 국가들은 자국의 정치경제적 이익 실현에 백신을 이용하고 있다. 이른바 '백신의 정치경제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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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전세계를 상대로 가장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28일 기준으로 집계한 전세계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가운데 임상3상을 실시하고 있는 백신은 10개로, 이 가운데 4개가 중국산이다. 시노팜과 시노백, 캔시노 등의 중국 업체가 이들 백신을 개발했는데, 임상 3상이 남미와 서남아시아, 중동에 집중돼 있다. 미국이나 유럽내 임상은 없다.
남미에서는 브라질이, 서남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대치하고 있는 인도와 대립관계인 파키스탄이, 중동에서는 UAE가 중국산 백신의 임상3상을 실시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세계를 중국 중심으로 한데 묶어 보겠다는 '일대일로' 정책의 주요 관련 국가이기도 하다.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에게는 중국이 더욱 노골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두테르테의 '간청'에 중국 외교부가 나서 지난 7월 '필리핀에 중국산 백신을 우선 공급하겠다'고 약속했고, 8월에는 시노백이 인도네시아에 2억 5천만회 분량의 백신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달 들어서는 양제츠 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미얀마를 방문해 중국산 백신 우선 공급권을 약속했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모두 아세안 회원국이자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미얀마는 친중 노선을 걷고 있는데다 오는 11월 선거를 실시한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고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베트남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약속은 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베트남 정부는 중국산 대신 러시아산 백신을 선주문했다.
서방 언론들과 분석가들은 중국 정부의 '백신 외교'가 공짜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물론 중국이 대놓고 '백신 줄테니 영유권을 달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의 경우에서 보듯 백신이 중국의 정치경제적 이익 실현의 큰 지렛대로 작용하는 것을 최대한 이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백신 개발의 선두에 선 미국은 '글로벌 무대'에서 움직이고 있는 중국과 달리 국내 정치 영역에서 화두가 되고 있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 키트(사진=연합뉴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재선을 바라는 트럼프 대통령은 될 수 있으면 빨리 백신이 나오기를 재촉하고 있다. 트럼프는 '올 연말이면 백신이 나올 수 있다'며 내년 1월까지 3억회 접종분의 백신을 확보하는 '초고속작전'(operation warp speed)을 정식으로 시작했다. 그러면서 'FDA와 CDC가 각종 인허가 절차를 단축시켜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실업률 등 경기 지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미국 유권자들에게 백신 출시의 확신을 안겨줌으로써 경기 반등 심리를 강화하고 이를 지지표로 흡수하려는 의도다.
하지만 전문가 그룹인 FDA와 CDC가 트럼프 의도에 수긍하지 않고 있다. FDA는 최근 백신 개발 지침을 강화해 임상3상이 끝나더라도 백신의 안전성 여부를 두달 이상 추적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이럴 경우 내년 1월을 기한으로 설정한 '초고속작전'은 성공 여부가 불투명해진다. CDC 수장 역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별 것 아니다'는 트럼프 측근을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며 "미국의 코로나 사태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스푸트니크V(사진=연합뉴스)
러시아는 자체 개발한 백신 이름을 아예 '스푸트니크V'로 지었다. 미소 냉전 당시 인류 최초로 발사됐던 인공위성 이름을 본딴 것이다. 러시아 정부는 임상 3상이 끝나지도 않은 이 백신을 브라질과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와 인도에 팔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빠르면 11월부터 세계 10여개국에 배분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러시아가 접촉하고 있는 국가들 역시 지역내 주요 국가들인만큼 러시아 정부는 백신 개발로 인한 경제적 이득은 물론 정치적인 이익도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게 언론들의 분석이다.
이처럼 이들 세나라는 코로나19 백신을 자국의 정치경제적 이익 실현을 위한 지렛대로 폭넓게 사용하고 있지만 정작 백신의 형평성 있는 공급은 외면하고 있다.
WHO사무총장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사진=연합뉴스)
WHO가 전세계 국가들이 신속하고 균등하게 코로나19 백신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공동 프로젝트인 '코백스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는데, 이들 세나라는 모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WHO가 중국 편을 든다'는 이유로 코백스에 참여하지 않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는 별다른 설명없이 불참하고 있다.
코백스는 올해말까지 20억달러의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으나 한국 등 64개국의 지원으로 현재 7억 달러 정도만이 모인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