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노동자들 "과로사 대책 세워달라"…21일부터 분류작업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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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임금 분류작업'에 대한 문제 제기
코로나19로 배송 물량↑…택배노동자들 '과로' 호소
"정부가 한시적 인력충원 권고했지만…택배사들 '묵묵부답'"
노동자들 "죽음 막는 비용으로 크지 않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 동시 택배차량 추모행진'에서 참석 택배차량이 정부종합청사 방향으로 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무임금으로 물류 분류작업을 해온 택배 기사들이 추석 연휴를 앞두고 과로사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오는 21일부터 택배 분류작업을 거부하기로 했다. 올해만 택배 노동자 7명이 과로로 숨졌다.

노동·시민단체들로 구성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17일 오전 서울 정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4천여명의 택배 기사들이 오는 21일 택배 분류작업 거부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대상이 되는 택배회사는 롯데택배·한진택배·CJ대한통운·우체국 등이다.

대책위는 "분류작업은 택배 노동자들이 새벽같이 출근하고 밤 늦게까지 배송을 해야만 하는 장시간 노동의 핵심 이유"라며 "하루 13~16시간 노동의 절반을 분류작업에 매달리면서도 단 한 푼의 임금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앞서 대책위는 지난 14~16일 택배 기사들을 대상으로 분류작업 전면 거부 총투표를 진행했다. 투표에는 민주노총 택배연대노조 조합원을 포함한 4399명이 참가해 4200명(95.48%)이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 177명, 무효 23명 등이었다.

대책위는 투표 참가자 가운데 500여명은 조합원이 아니라며 "그만큼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를 우려하고 있고 분류작업 인력 투입에 대한 요구가 강하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는 택배 기사가 사실상 분류작업까지 도맡고 있다. 허브터미널을 거쳐 서브터미널로 넘겨진 물류들을 분류하고 상차한다. 정해진 업무 시간보다 일찍 물류센터에 도착하는 등 업무 시간의 절반가량을 분류 작업에 쓰지만, 배달 건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탓에 사실상 이에 대한 보상은 받지 못한다.

전국택배연대노조 김세규 교육선전국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분류작업은 새벽~이른 아침에 시작해 빠르면 오후 1~2시, 코로나로 물량이 많아지면서 늦으면 오후 3~4시에 끝난다"며 "추석 물량이 늘어 일주일에 80~90시간 일하는 노동자들도 많다"고 전했다. 노동자들은 "배송 시작 전부터 피로가 쌓여 몸이 녹초가 된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과로로 쓰러진 이들도 곳곳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택배노동자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택배노동자 분류작업 전면거부 돌입,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손 피켓을 들고 있다.(사진=이한형 기자)

 

노동자들은 명절 연휴를 앞두고 '한시적으로라도' 택배 분류작업 인력을 충원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으로 평소보다 30% 이상 물량이 증가할 것으로 국토교통부는 예상했다.

김 국장은 "분류작업 문제는 노사 간의 논쟁이 많았던 지점이다. 당장 근본적으로 해결하라는 게 아니라, 사람이 죽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한시적으로라도 인력을 투입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로 택배 물량이 늘면서 택배사들이 돈을 많이 벌지 않았나. 기사 5명당 1명꼴로 분류작업 인력을 투입하는 건 '죽음을 막는 비용'으로는 크지 않다"고 밝혔다.

앞서 CJ대한통운 등 택배사는 물량 축소제, MP(Multi Point) 도입 등의 대책을 내놨다. 택배 기사가 배송 물량 축소를 자발적으로 요청할 수 있도록 하거나, 소형 택배 상품 분류를 전담하는 자동화 시설 MP를 운영하는 등의 안이다. 이를 두고 노동자들은 "과로사를 막기 위한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짚었다.

김 국장은 "그러면 남은 물량은 누가 소화하나. 결국 다른 택배노동자의 '부담'으로 이어지는 구조"라고 말했다. 또 "MP가 도입된 곳의 노동자들도 이전과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노동 강도를 개선할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전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0일 택배 종사자 보호 조치를 발표하며 분류 작업에 필요한 인력을 한시적으로 충원하라고 택배업계에 권고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14일 택배 노동자의 과중 업무를 지적하며 임시 인력 투입을 당부했다.

하지만 아직 뚜렷한 해결안을 내놓은 택배사는 없다. 대책위는 "택배사들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라며 "온 사회가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를 우려하며 분류작업 인력 투입을 요구하고 있는데 택배사들은 눈과 귀를 가린 채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면서 "분류작업 전면 거부는 죽지 않고 살기 위한 택배 노동자들의 마지막 호소"라며 "전국 4천여명의 택배 노동자는 오는 21일부터 죽지 않고 일하기 위해,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배송하기 위해 분류작업을 거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안타깝다"며 "배송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더는 과로로 쓰러지는 택배 노동자는 없어야 한다는 택배 노동자의 심정을 헤아려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택배사들에는 "물량축소 요청제, MP 도입 등 거짓꼼수 대책으로 국민들을 속이고 노동자를 기만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분류작업 인력 투입 등의 실질적인 방안을 하루 빨리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택배 노동자들은 사측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한다면 언제든지 분류작업 전면 거부 방침을 철회하고 대화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복수의 택배사 관계자들은 "주요 택배사들과 한국통합물류협회를 통해 의견을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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