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 '관심사건'만 주목한 수사심의위…'약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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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시민위원장 1인이 "심의 사안 아니다" 결정
수사심의위 성비·계층·장애인 등 포함 여부 '깜깜이'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우리'를 위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은 없나 봅니다"

사업주의 임금체불 문제를 고소한 이주노동자 측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를 요청한 지 오늘로 20일째가 됐지만 검찰은 감감 무소식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불법 승계문제에서는 9일 만에, 채널A 검언유착 의혹 사건은 5일, 정의기억연대 회계부정 의혹 사건은 2일 만에 심의위 소집 여부를 결정하는 부의심의위원회가 열렸던 것과 비교됩니다.

지난 6월 30일 의정부지검은 이주노동자에게 임금을 주지 않아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고소된 사업주를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이주민 인권단체들은 수사기관이 사업주의 진술에만 신빙성을 부여했고 추가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을 살펴달라며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했지만 답답한 상황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단체들은 "해당 사업주는 고용허가제 비전문취업(E-9) 비자로 입국한 이주노동자에게 연장근로 수당과 퇴직금 등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쟁점은 노동시간을 확정하는 문제였는데 수사기관은 이주노동자가 수첩에 기재한 시간을 전부 배척하고 사용자에게 면죄부를 줬다"고 반발합니다. 이런 주장이 '사회적 통념'에 타당한지 판단 받아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른바 '사찰노예' 사건의 피해자 측은 지난 10일 서울북부지검이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자신들이 신청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결과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피해자인 지적장애인 A씨는 32년간 서울의 한 사찰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했습니다. 사찰의 주지승려 B씨는 A씨에게 폭력도 행사했고 명의를 도용해 아파트를 구입하는 등 부동산실명법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최초 수사 단계에서 경찰이 B씨의 폭행 혐의 일부만 인정했고 검찰이 이를 송치 받아 그대로 약식기소하면서 A씨의 강제노동은 '울력'이라는 사찰 내의 협동노동 관행으로 치부돼 버릴뻔 했습니다.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를 비롯해 장애인 인권단체에서 이를 문제시하고 재수사를 요청하자 뒤늦게 서울북부지검이 사건을 맡아 B씨를 장애인차별금지법 제32조의 '괴롭힘 등의 금지' 조항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하는 등 한 차원 강한 사법 처리에 나섰습니다. 그럼에도 피해자 측의 불만은 여전합니다.

최 변호사는 "뒤늦게라도 노동력 착취에 대한 기소가 이뤄진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장애인복지법상 강제노동 금지 조항을 적용하지 않은 소극적 해석은 이해할 수 없다"며 검찰의 조치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입장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적용해 기소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지만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량 상한이 크게 올라갑니다.

수사심의위가 열렸다면 B씨 행위가 지적장애인에 대한 단순한 차별인지 중대한 강제노동인지 '사회적 통념'이라는 잣대로 따져 볼 좋은 기회가 됐을 것입니다. 향후 유사한 사건에 대한 검찰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변곡점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울북부지검 검찰시민위원장은 피해자 측에 이런 기회마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검찰시민위원장은 왜 이런 판단을 내렸을까요? 수사심의위 예규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이 심의 대상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규정에 적합한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각 지역 50~60대 남성들이 대다수인 검찰시민위원회 구성도 이런 판단이 내려지는데 한 몫을 했을 것입니다. 수사심의위 소집 여부를 결정하는 각 지역 검찰시민위원회는 물론 비공개인 수사심의위원 명단에도 소수자와 약자들을 대변할 인사가 반영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2017년 말 문무일 검찰총장은 수사심의위 제도를 도입하면서 검찰의 수사절차와 결론을 시민의 눈높이에서 재점검해 검찰 수사의 신뢰성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충분한 법률적 조력을 받기 힘든 사회적 약자들이 혜택을 볼 것이라는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기소 여부가 걸린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게 사건과 채널A 검언유착 사건 등에 수사심의위원회가 소집되면서 재벌과 권력의 입맛에 맞게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습니다.

앞서 사찰노예 사건 피해자 측의 최 변호사는 "부의심의위위원회를 열지도 않을 만큼 사소한 사건으로 치부하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반면 대검찰청은 수사심의위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위원회 구성 단계부터 소집, 심의, 의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결정은 위원회가 자율적으로 결정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국민적 관심사건'을 판단하는 주체와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수사심의위는 검찰의 불편한 입장 표명을 대신하는 기구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이미 많은 눈이 주시하는 이재용 부회장이나 한동훈 검사장 등 일부 권력가들의 사건만큼이나 '평범한 사람들'의 사건 처리가 공정하게 이뤄지는 지 감시해줄 기구가 '우리'에게는 꼭 필요합니다.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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