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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안장이 꿈인 당신이 왜 현충원에 잠들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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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리뷰] 항일과 친일이 공존하는 현충원을 발로 조명한 <현충원 한 바퀴>
"백선엽 포함 국가공인 친일파 12명 잠들어 있어"
"친일파 무덤이 애국지사 무덤 내려다 보는 구조...통탄할 일"
"주체사상 만든 황장엽이 현충원에 잠들어...역사의 아이러니"
"의열단 김익상 등 유해조차 찾지 못한 애국지사 많다"

■ 방송 : 전북CBS 라디오 <사람과 사람> FM 103.7 (17:05~18:00)
■ 진행 : 박민 참여미디어연구소장
■ 대담 : 오마이뉴스 김종훈 기자, <현충원 한 바퀴> 저자

 

동네 사람들이 들려주는 책과 음악 이야기, 용정동책방. 오늘은 신간 책 한 권 소개합니다. <현충원 한 바퀴>의 오마이뉴스 김종훈 기자 연결돼 있네요. 김종훈 기자 안녕하세요.

◆김종훈> 네, 안녕하세요.

◇박민> 지난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의열단 창립 100주년을 맞아서 함께 고정 코너를 진행했었는데요. 또 언제 신간을 내셨어요?

◆김종훈> 거의 10개월 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건강하셨고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사람과사람'에서 임정로드와 약산로드를 방송한 이후 열심히 새 책 준비했습니다. <항일과 친일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줄여서 '현충원 한 바퀴'.

◇박민> 지난해 소개했던 임정로드와 약산로드에 이은 가이드북이라고 보면 될까요?

◆김종훈> 네, 가이드북 시리즈라고 보시면 됩니다. 개인적으로 '로드' 시리즈를 이어가고 싶었지만, 주제가 묵직하다 보니 가이드북을 지향하는 인문서가 됐습니다.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지만 자주 가지 못했던 현충원, 이 책을 통해 우리 두 발로 찾아가게끔 만드는 동기부여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박민> 임시정부 터를 순례하고 약산 김원봉의 흔적을 좇고 난 뒤 다음 순례지로 현충원을 선정한 이유는 뭘까요?

◆김종훈> 임정로드를 통해 김구와 임시정부를 추적했습니다. 김구의 흔적을 좇다 보니 독립운동의 큰 산 김원봉과 의열단을 발견했습니다. 이를 약산로드로 풀었고요. 그런데 잘 아시겠지만 해방 후 대한민국 땅에서 두 사람은 모두 설자리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했습니다. 결국 친일파 때문이더라고요. 그 결과를 보여주는 공간이 현충원이었습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그리고 친일파가 한 공간에 잠든 현충원에 집중한 이유입니다. 그것이 이번 책으로 나온 겁니다. 다음 주 12일께 출간 예정이라 오늘 '사람과사람'에서 처음으로 소개하는 겁니다.

◇박민> 항일운동가와 친일파가 함께 잠든 공간인 현충원을 이해하려면 그 역사와 배경부터 짚어봐야 할 듯싶네요?

◆김종훈> 어쩌면 시작부터 현충원이라는 공간 자체에 독립운동가들이 묻힐 장소가 없었다고 봐야 합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사상자가 급격히 늘어났고,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서울 동작구, 지금의 국립서울현충원 자리에 국립묘지를 마련한 겁니다. 그런데 서울 최중심부,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랐고, 결국 준비과정을 거쳐 전두환 씨가 대통령을 재임했던 1985년께 서울현충원의 두 배 크기로 계룡산 일대에 국립대전현충원이 마련됐습니다.

 

◇박민> 서울과 대전현충원에 묻혀있는 국가공인 친일파는 모두 몇 명이나 됩니까?

◆김종훈> 다소 생소할 수도 있지만 한 명 한 명 이름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울현충원에 7명, 대전현충원에 5명입니다. 우선 서울은 김백일, 김홍준,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그리고 백낙준입니다. 연세대 초대 총장 백낙준을 제외한 6인이 군 출신입니다. 대전은 5명이 있습니다. 원래는 4인이었는데 백선엽이 최근에 안장됐습니다. 백선엽, 신현준, 김석범, 송석하 그리고 백홍석입니다. 모두 군 출신 인사들입니다. 속 사정을 알면 참 말도 안 되는 현실이라 개탄스러워요. 그중 가장 안타까운 장소가 독립군 머리 위에 마련된 서울현충원 장군2묘역입니다. 야스쿠니 신사에 묻히는 걸 목표라고 말한 신태영이 잠든 장소이기도 합니다.

◇박민> 야스쿠니에 묻히는 게 꿈이라는 사람이 애국자로 둔갑해 현충원에 잠들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던 거죠?

◆김종훈> 솔직히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현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장군 출신이라는 이유로 훈장을 받았다는 이유로 현충원에 잠든 겁니다. 법에 그렇게 명시됐습니다. 다만 신태영은 일본 육사를 나와 일본 군인으로 30년을 복무한 친일파입니다. 무려 대령까지 역임했던 인물입니다. 전선에서 직접 활약하기도 했고요. 이런 인물이 해방 후 여순사건과 제주4.3을 거치며 우리 군에 중추로 자리매김했고. 나중에는 국방부 장관까지 역임했습니다. 신태영 옆에 잠든 이응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본군으로 30년 이상 복무한 사람이 우리나라 초대 육군참모총장이 됐습니다. 이들의 무덤이 정말로 독립군 머리 위에 있습니다. 직접 가서 보면 정말로 울화통이 치밉니다.

◇박민> 유독 현충원에 친일 군인이 많은 점은 어찌 해석할 수 있을까요?

◆김종훈>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기준으로 69명입니다. 이중 국가공인 친일파가 12명. 한국전쟁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현충원에 친일파가 이렇게 합법적으로 잠들게 된 겁니다. 이후엔 반공을 국시로 한 군사독재정권이 권력을 잡아 독립운동가 출신들이 설자리를 완전히 잃었습니다. 결국 관련 법이 부재했고 친일파 출신 군인들은 호의호식하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상징인 현충원에 방해 없이 잠들게 된 겁니다. 최근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백선엽도 같은 논리고요.

◇박민> 친일파 묘역에서 독립운동가 묘역을 바라보자고 제안했던데 이건 무슨 취지인지?

◆김종훈> 직접 보면 제가 왜 이 책을 썼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현실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문제는 현충원 그 어디에도 친일행적에 관한 기록은 없다는 점입니다. 이 책을 들고 가서 살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박민> 친일파 아래 잠든 애국지사들. 여러분이 계신데요. 그중 몇 분을 살펴볼까요. 먼저 신규식 선생. 김종훈 기자는 이분을 임시정부의 아버지라고 부른다고요?

◆김종훈> 제가 가장 존경하는 지사 중 한 분입니다. 목숨 바쳐 독립운동하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신 분. 중국 상하이에서 1919년 4월 대한민국이 탄생하는 데 가장 크게 일조한 분입니다. 시간상 다음 기회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만 신규식 선생 역시 중국에서 70년 동안 잠들었다가 93년에 이장돼 고국에 왔는데. 무덤이 친일파 발아래였습니다.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요?

◇박민> 5월 14일을 로즈데이라고 해서 장미를 주고받기도 하는데. 로즈데이를 기념하는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한 분이 있다고?

◆김종훈>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조명하 선생입니다. 로즈데이에 거사를 일으켰습니다. 그것도 대만에서요. 일제강점기 일왕의 장인이자 육군대장이었던 구니노미야 구니요시를 독을 바른 단도 한 자루를 던져 사망케 한 인물입니다. 그해 10월 10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교수형 당했습니다. 대단한 업적을 기록한 분인데, 조직이 없다는 이유로, 소문을 통제한 일제의 영향으로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애국지사입니다. 애석하게도 그의 무덤 머리맡에 친일파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박민> 그런가 하면 주체사상을 만든 황장엽 씨도 현충원에 묻혀있던데 이 분은 무슨 근거로 현충원에 안장된 건가요?

◆김종훈> 가장 아이러니한 인물입니다. 대한민국에 공헌했다는 이유로 이명박 대통령이 사후 훈장을 수여해 대전현충원에 안장케 했습니다. 북한 주체사상을 만든 사람입니다. 말년에 권력투쟁 과정에서 밀려 대한민국에 망명한 인물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런 사람이 국가사회공헌자 묘역 최상단에 잠들어 있습니다. 건너편에 임시정부의 어머니 정정화 지사가 잠든 독립유공자1묘역입니다.

◇박민> 최근 고 백선엽 장군 현충원 안장 논란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항일과 친일이 공존하는 현충원. 김종훈 기자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김종훈> 자꾸 한국전쟁의 공이 있다며 공과 과를 동시에 평가하자 하는데. 이점 하나만 말씀드리면 백선엽은 평양사범학교를 나온 뒤 선생님이 될 것을 포기하고 만주군이 됐습니다. 그것도 항일 독립군을 때려잡는 간도특설대 장교였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미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 상태였습니다. 백선엽은 적국 일본의 장교로 활동한 인물입니다. 당연히 국가에서 공인한 친일파고요. 이런 사람이 최근에 현충원에 안장된 겁니다.

◇박민> 그래도 조금씩 역사의 발전도 이루어 왔죠?

◆김종훈> 참으로 고맙습니다. 함께 걸은 시민들 덕분입니다. 관련 법이 부재해 친일파의 현충원 안장 및 이장을 추진하지 못했던 겁니다. 그런데 시민들의 관심 덕분에 21대 국회에서 법안을 마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앞서 여러 차례 관련 법이 발의됐었지만, 그때마다 국민 통합 운운하며 막혔는데 이제야 관련 법이 제대로 마련된 겁니다.

◇박민> 이번 국회에서 친일파 이장 법안도 검토하고 있더라고요?

◆김종훈> 제가 속한 오마이뉴스와 광복회가 지난 총선 전에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지역에 출마한 국회의원 후보자 전원을 대상으로. 놀랍게도 지역에 당선된 253명 중 185명이 친일파 이장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미래통합당 43명을 포함하는 수치입니다. 지역구 의원만 따졌을 때 무려 73%가 넘는 수치입니다. 21대 국회가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박민> 반대로 그럼 모시고 싶은 독립운동가가 있나?

◆김종훈> 의열단원 김익상 지사입니다. 이미 현충원에 위패가 있지만 유해가 없는 상태인데요. 김익상 지사는 후손이 없는 선열들을 위한 무후선열제단에 모셔졌습니다. 김 지사는 1921년 일제강점기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일제의 심장인 조선총독부에 폭탄 의거를 성공시킨 인물입니다. 놀라운 기지를 발휘했는데. 1921년 9월에 베이징을 출발해 의거 성공하고 돌아오기까지 딱 7일 걸렸습니다. 이듬해인 1922년 상하이에서 다나카 기이치라는 이름의 상해점령군사령관이 방문했는데요. 이때 다시 한번 의거를 일으켰지만. 현장에서 김익상 지사는 잡히고 맙니다. 이후 사형 판결을 받고 복역하다 감형돼 일본에서 지냈고요. 그 기간이 20년이 넘습니다. 문제는 1942년 20년 만에 감옥에서 나왔지만, 그 사이 딸과 부인은 행방불명됐고, 1차 의거 때 자신을 숨겨준 동생은 일제의 핍박을 못 이겨 자살했고요. 이후 중노인이 된 김익상 지사를 일제 형사가 찾아왔는데, 이게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이후 김익상 지사는 실종됐고요. 그의 유해는 지금까지도 찾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현재 그의 위패는 친일파 무덤 정말로 발아래있습니다.

◇박민> 끝으로 소감 한 말씀.

◆김종훈> 현충원 한 바퀴, 현장을 걷고 걷고 또 걸으며 만든 책입니다. 저도 발로 걸으며 직접 느꼈습니다. 여러분들도 두 발로 직접 걸으며 우리의 현실을 마주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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