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성사 과정의 이면 합의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라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이른바 '30억 달러 합의서'를 공개한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내가 아는 고위공무원으로부터 받은, 믿을 만한 출처"라고 CBS노컷뉴스에 밝혔다. 박 후보자는 "위조 서류를 가지고 비겁하다. 제 인생과 모든 것을 걸고 책임지겠다"고 부인했다.
◇주호영, '30억 달러 합의서' 제시…"실제 북한에 얼마나 제공됐는지 밝혀야"박 후보자를 '적과 내통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던 주 원내대표는 대북송금 사건을 거론하며 한 문건을 그 근거라고 공개했다.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라는 제목의 2000년 4월 문건이다. 주 원내대표는 "4·8 남북합의서의 비밀합의서"라고 주장했다.
박 후보자는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당시 특사였으며,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실형을 선고받았다.
공개된 4·8 남북합의서는 그해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골자로 하는데, 주 원내대표가 이날 제시한 '경제협력 합의서' 문건은 같은 날 작성된 것으로 총 30억 달러를 북한에 제공하는 내용이다.
문건에는 "2000년 6월부터 3년 동안 25억 달러 규모의 투자 및 경제협력차관을 사회간접부문에 제공한다"며 "남측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해 5억달라분을 제공한다"고 돼 있다.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던 박 후보자와 북측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송호경 부위원장의 서명이 담겼다. 4·8 남북합의서와 문서 양식과 사인이 같다고 주 원내대표는 주장했다.
주 원내대표는 청문회 도중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실제로 북한에 얼마나 제공됐는지 밝혀야 한다"며 "이를 토대로 (박 후보자가) 적과 내통한 사람이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송금 사건은 김대중 정부가 6·15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북한에 뒷돈을 지원했다는 의혹으로, 2003년 특검은 현대그룹이 국정원 계좌를 통해 4억5천만 달러를 북한에 지원하고 이중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금 1억달러가 포함됐다고 결론냈다.
박지원(오른쪽)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박지원 "그런 위조 서류 가지고, 비겁하다"…주호영 "고위공무원에게서 받았다"이에 대해 박 후보자는 문건이 가짜라고 주장했다. 주 원내대표의 오전 질의 때부터 "사실이 아니다. 그런 기억이 없다"고 답변했다.
추가 질의 때는 "나와 김대중 대통령을 모함하기 위해 서명을 위조했다"며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를 하겠다"고 강력 반발했다. 박 후보자는 국정원 관계자 등을 통해 해당 문건을 확인해보니 그런 문건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박 후보자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제 인생과 모든 것을 걸고 책임지겠다", "만약 서명이 사실이라면 대북송금 특검에서 그것을 덮어줄 리가 없다"면서 "그런 위조 서류를 가지고…비겁하다"는 반응도 보였다. "면책특권에 숨지 말고 기자회견으로 공식적으로 밝히라고 해달라. 그러면 제가 고소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질의응답이 오가던 중 두 사람 모두 이런 내용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일"이라는 데 동의했다.
박 후보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대법원 최종 판결에 순종하지만, 사실이 아니다"면서 "저는 지금도, 당시도 어떤 계좌를 통해 현대가 북한으로 송금했는지 모른다"고 부인했다.
주 원내대표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공개한 문건의 출처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믿을 만한 출처다. 내가 아는 사람이고, 고위공무원이라는 것만 밝힐 수 있다"면서 "4·8합의서와 같은 날 작성이 됐고, 박 후보자 판결문에도 이면 합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임동원 전 원장은 CBS와 통화에서 "4.8 남북합의서 외 합의서는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박지원, 비공개 청문회에서 20억~30억 달러 대북 투자 논의는 인정…합의서는 계속 부인박 후보자는 하지만 비공개로 진행된 청문회에서는 20억~30억 달러 규모의 투자 논의가 남북 사이에 있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합의서 작성 사실은 계속 부인하면서도 답변이 다소 바뀌었다는 게 야당 주장이다.
정보위 야당 간사인 하태경 의원은" ADB(아시아개발은행), IBRD(세계은행) 등 민간사업가나 이런 투자자금으로 20억~30억 달러의 북한 투자가 가능하지 않겠냐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박 후보자의 답변을 전했다.
하 의원은 비공개 청문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인정한 것"이라며 "하지만 합의문은 절대 작성하지 않았다고 했다. 합의문에 있는 내용은 언급 했지만 실제 사인을 하지 않았다는 게 박 후보자 답변"이라고 전했다.
박 후보자는 ADB나 IBRD 통해 20억~30억 달러의 대북 투자가 가능할 것이란 원론적인 이야기를 했을 뿐 단순한 현금 지원을 악속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