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언유착' 의혹을 받고 있는 전 채널A 기자 이동재씨가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이한형기자
검언유착 의혹 사건으로 구속된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측이 22일 이 사건의 증거로 언급된 한동훈 검사장과의 '2월 부산 대화'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이 대화가 중요 증거임을 시사해 온 검찰 수사팀, 범죄 공모의 핵심 정황이라고 의혹을 제기한 일부 언론과 여권 일각을 향한 반격 차원의 행보로 풀이된다. 당시 대화가 그대로 공개돼도 불리할 게 없다는 게 이 전 기자 측의 입장으로, 24일 검찰수사심의위원회를 앞두고 승부수를 던진 모양새다.
◇ '부산대화' 녹취록 공개에도 논란 지속…녹음파일 공개로 정면대응이 사건의 쟁점으로 부각된 '부산 대화'는 이 전 기자가 지난 2월13일 동료 백모 기자와 함께 부산고검을 찾아 한 검사장과 나눈 대화를 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형사1부)은 줄곧 이 대화에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에게 불리한 내용이 담겨있음을 시사했다. 그만큼 중요한 증거일 것이라는 분석도 뒤따랐다. 지난달 한 언론이 '부산 대화' 내용과 관련해 '한 검사장이 유시민 의혹 취재에 선을 그었다'는 취지로 보도하자 수사팀은 이례적으로 입장을 내고 "관련자에게 유리할 수 있는 부분만 선택적으로 보도했다"고 반발했다.
수사팀은 이 전 기자 측이 전날 해당 대화 녹취록 전문을 공개했을 때에도 입장을 내고 "사안과 관련성 있는 내용 중 일부 대화가 축약되거나, 기자들의 취재 계획에 동조하는 취지의 언급이 일부 누락되는 등 그 표현과 맥락이 정확하게 녹취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 검사장에게 불리한 부분이 빠졌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 전 기자로선 최근 이 대화를 '구속의 스모킹 건' 또는 '공모 의심 정황'으로 지목한 일부 언론보도에 반박하기 위해 대화 녹취록 전문을 공개했지만, 수사팀의 지적으로 신빙성을 의심받게 됐다. 뿐만 아니라 범여권에서도 열린민주당 황희석 최고위원 등이 "편집본 같다"고 문제를 제기하자 녹음파일 공개로 '정면 대응'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 이미 공개한 녹취록과 다른 부분은?
녹음파일이 공개되자 앞서 이 전 기자 측이 공개한 녹취록에서 축약‧누락된 대화는 무엇인지, 축약‧누락 부분이 검찰이 공개 지적할 만큼 공모 여부를 가를만한 대목인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CBS노컷뉴스가 약 25분 55초 길이의 해당 녹음과 녹취록을 비교한 결과 내용은 대체적으로 비슷했다. 7분 가량 다른 내용으로 한 검사장과 대화를 나누던 이 전 기자는 녹취록 내용대로 먼저 "신라젠 이런 거 알아보고 있는데"라며 운을 띄웠고, 10분40초 쯤에는 "사실 신라젠도 서민다중 피해도 중요하지만 결국 유시민 꼴 보기 싫으니까"라며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름도 언급했다. 그러자 한 검사장은 "유시민씨가 어디서 뭘 했는지 나는 전혀 모르니, 근데 이제 그런 정치인이라든가, 그 사람 정치인도 아닌데 뭐. 정치인 수사도 아니고 뭐"라고 답했다.
다만 직후 이 전 기자의 발언에 대한 한 검사장의 답변은 녹취록과 달랐다. 이 전 기자는 "결국에는 강연 같은 거 한 번 할 때 뭐 한 3000만원씩 주고 뭐 이렇게 했을 거 아니에요. 그런 것들을 이제 한 번"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한 검사장은 "그게 거기 있는 사람들한테도 어떤 강연지식을 전달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런 사람이 와서 강연했다는 걸 밖에 홍보함에 있어서 어떤 주가조작 차원이잖아. 그것도"라고 답했다. 이는 녹취록에는 없는 내용이다. 다만 이 전 기자 측이 그보다 앞서 공개한 녹취록 발췌본에는 포함됐다.
공모 의심정황으로 부각됐던 내용은 대화 후반부에 등장한다. 녹음 파일 속 이 전 기자가 "이철 와이프를 찾아다니고 그러는데"라고 말하자 한 검사장은 "그건 해 볼 만하지. 어차피 유시민도 지가 불었잖아. 나올 것 같으니까. 겁이 많아. 이 사람. 먼저 지가 불기 시작하잖아"라고 답했다. 녹취록엔 이 전 기자가 언급한 '와이프'가 '아파트'로 적시됐고, 한 검사장이 '겁이 많아. 이 사람'이라고 언급한 게 빠져 있었다. 교도소에 편지를 보냈다는 이 전 기자의 말에 "그런 거 하다가 한 건 걸리면 되지"라는 한 검사장의 답변은 일치했다. 이 밖에 표현이 미세하게 다르거나 대화가 겹쳐 잘 들리지 않는 대목도 있었다.
◇ 검찰 내부서도 엇갈린 시각…수사심의위 결과 주목
이 전 기자 측은 이 녹음을 공개하며 "(앞서 공개한 녹취록에) 한 두 단어 내지 문장이 잘못 들린 게 있을 수 있으나, 전체 녹음을 들으면 의도성도 없고 중요한 내용이 아니라는 점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일각에서도 이와 비슷한 의견도 나왔다. 한 검찰 관계자는 "협박취재를 공모해야 죄가 될 텐데, 대화 내용을 봐서는 겁을 줘서 취재하겠다는 걸 공모했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했다. 앞서 수사팀이 자체 수사를 진행하기 전 대검 형사부 실무진도 이 대화 내용을 검토했지만, 혐의가 성립하긴 어렵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이번엔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았다. 다만 대화의 맥락이나 분위기 등을 보다 세부적으로 살펴봐야 하며, 다른 증거들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시각인 것으로 파악됐다. 수사팀은 전날 한 검사장을 강요미수 피의자 신분으로 처음 소환해 조사했다. 이 전 기자는 신라젠 의혹을 취재하면서 수감 중인 이철 전 VIK 대표를 상대로 유시민 이사장 비위를 제보하지 않으면 형사상 불이익을 받을 것처럼 협박한 강요 미수 혐의로 앞서 구속됐다.
24일로 예정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를 앞두고 이 전 기자 측은 여론전을 통한 반격에, 수사팀은 보강수사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이 전 기자의 취재로 공포심을 느꼈다고 주장하는 이철 전 대표 측의 신청으로 소집되는 심의위에서는 피의자 기소 여부와 수사 계속 여부 등을 일반인 눈높이에서 판단한다. 이 전 기자, 한 검사장 측에서도 혐의를 부인하는 취지의 의견을 낼 것으로 보여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