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CBS노컷뉴스 사옥에서 신간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 저자이자 대중문화 저널리스트인 박희아 씨를 만났다. (사진=황진환 기자)
아이즈원 이채원, 청하, 세븐틴 호시, 빅스 레오, 방탄소년단 제이홉. 한 명도 어려웠을 것 같은 이들을 다섯 명이나 섭외해, 긴 인터뷰를 하고, 그들의 강점인 '퍼포먼스'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현직 아이돌이 들려줄 수 있는 진솔하면서도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 결과물은 지난해 8월 '무대 위의 아이돌'이라는 책으로 나왔다. 약 10개월 만에 나온 개정증보판은 제목부터 달라졌다.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로. 오마이걸 유아, 아스트로 문빈, SF9 찬희의 이야기가 새롭게 실렸다.
아이돌 한 팀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난 첫 책 '아이돌 메이커'(2017, 개정판 포함)를 시작으로, 작사·작곡·프로듀싱·디렉팅을 스스로 하며 K팝 산업 최전선에서 활약 중인 아이돌을 만난 '아이돌의 작업실'(2018), 무대 위에서 펼치는 퍼포먼스를 통해 아이돌을 말하는 '무대 위의 아이돌'(2019)과 그 개정증보판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2020)까지.
꾸준하고 끈질기게 '아이돌'을 키워드로 K팝 산업의 현재를 이야기해 온 대중문화 저널리스트 박희아 씨를 지난 1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CBS노컷뉴스 사옥에서 만났다. 인터뷰이를 선정한 기준에서부터, 책 작업 중 가장 어려웠던 점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 석 달 만에 준비해야 했던 개정증보판
지난달 24일 1쇄를 발행한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의 작업 시간은 무척 빠듯했다. '무대 위의 아이돌'을 낸 출판사와 이견이 있어서 서로 합의 하에 계약해지 후 새 출판사를 만났다. 엔터테인먼트와 출판업계 양쪽에 대한 이해가 높은 대표를 만나 개정증보판 제안을 받고, 바로 진행하게 됐다는 게 박희아 씨 설명이다. 그게 불과 석 달 전의 일이다. 섭외하고 인터뷰하고 정리해 최종본을 만들기까지 결코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다.
박 씨는 "(이번에) 정리를 빨리 한 편이긴 하다. 그전에 했던 아티스트들 작업과 과정 자체는 똑같아서. (기존) 다섯 명의 인터뷰의 틀이 있고, 그게 좋았다는 평이 있었다. 이번에 추가한 세 명도 그만큼의 평을 끌어내야 했기에 어떻게 생각하면 더 어려운 작업이었다"라고 말했다.
새 책에는 오마이걸 유아, 아스트로 문빈, SF9 찬희의 인터뷰가 수록됐다. 어떤 기준으로 인터뷰이를 선정했는지 묻자, 박 씨는 "이 책의 기본적인 키워드는 '퍼포먼스'다. 그에 맞는 아이돌을 찾아야 하는데, 퍼포먼스를 잘하는 아이돌은 너무 많으니까 특징 있는 사람들을 찾아야 하는 거다. 같은 특징이 있으면 안 됐다"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4일 발행된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는 지난해 나온 '무대 위의 아이돌' 개정증보판이다.
"찬희 씨는 드라마에서 연기를 되게 활발히 하고 있죠. 메인 댄서가 연기하는 건 어떤 의미이고, 본인은 어떻게 느낄까 궁금했어요. 유아 씨는 '퀸덤'(기자 주 : 여성 아이돌끼리 무대를 겨루는 엠넷 경연 프로그램)이 오마이걸에게 너무 큰 전환점이 됐죠. 요정 같은 사랑스러운 이미지가 있었는데 다른 이미지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죠. 또, 안무가가 되고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 아이돌로 데뷔하면서 자기가 팀에 맞춰가는 과정도 알고 싶었어요. 문빈 씨는 가인, 선미 씨 등 여성 아티스트들의 춤을 여러 번 추면서도 희화화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자기 스타일로 변화를 주는 게 눈에 띄었어요."
기존에 섭외한 아이돌도 마찬가지다. 댄서를 꿈꾸다가 '프로듀스 101' 첫 번째 시리즈로 데뷔해 프로젝트팀 '아이오아이'를 거쳐 지금은 명실상부한 여성 솔로 아티스트로 자리 잡은 청하, 그동안 아이돌 씬에서는 흔치 않았던 나른하고 퇴폐적인 콘셉트와 퍼포먼스로 사랑받은 후 뮤지컬로 영역을 넓힌 빅스 레오.
어릴 때부터 TV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자주 노출되면서도 꿈을 놓지 않고 결국 아이돌로 데뷔한 아이즈원 이채연, K팝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계속 간직했던 소년이 아이돌이 얼마나 대단한 끼를 방출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케이스였던 세븐틴 호시, 상반된 성향의 멤버들을 중화하고 에너지를 북돋아 주면서도 댄서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가져가는 방탄소년단 제이홉.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에 실린 아이돌은 자신만의 개성이 뚜렷한 이들이었다.
◇ 가장 어려웠던 건 섭외, 사전 질문지보다는 현장 분위기 더 중요K팝 씬에서 활약 중인 아이돌에게 본인 이야기를 들려주길 청하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책 작업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걸 묻자 박 씨는 "두 번의 고민 없이 섭외"라고 즉답했다. 섭외 요청 연락을 하고도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됐나요?', '위의 반응은 괜찮은가요?', '당사자는 흥미로워하나요?' 등 계속 체크했다. 그는 "제가 좀 집요해서 아마 관계자분들이 좀 힘드셨을 것"이라며 웃었다.
이어 "이 책을 통해 크게 수익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사실 완전히 부탁하는 입장이다. 멤버나 기획사 관계자는 (이 인터뷰를 위해) 기본적으로 2~3시간을 뺀다. 짧은 시간이 아니다 보니까 일단 저도 미안하고"라고 말했다. 아이돌이 '직접' 말하는 본인의 작업기와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다룬 '아이돌의 작업실' 작업 때만 해도, 소속사마저 왜 이 책이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하는 반응이 대다수였다고.
박 씨는 "왜 굳이 그렇게 깊은 얘기를 하는지 필요성을 못 느끼는 분도 많았고, 요새는 말실수를 조금만 해도 워낙 크게 문제가 되니 조심스러워하는 마음에 꺼리는 분도 많았다. 보이그룹과 걸그룹의 거절 멘트는 조금 달랐는데, 보이그룹 멤버는 일정 때문에 바쁘다는 이유가 잦았다면 걸그룹 멤버는 '제가 아직 이런 걸 말할 순 없을 것 같아요'라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완곡한 거절 멘트가 아니라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이미 이뤄놓은 게 너무 많았는데도… 안타까웠지만 더 이상 부담을 줘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에 새 인터뷰이로 합류한 SF9 찬희, 아스트로 문빈, 오마이걸 유아 (사진=각 그룹 공식 페이스북)
박 씨는 인터뷰할 때 질문을 촘촘히 짜는 편이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의 질문 첫머리는 일상적인 것이었고, 인터뷰이의 답에 따라 바로 다음 질문이 나왔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앞선 대답을 들어야만 가능한 질문이 적지 않았다.
한 사람당 약 30쪽 안팎의 긴 인터뷰가 실렸기에, 대략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사전 질문지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궁금증이 솟았다. 아이돌이 하는 말은 어느 정도 소속사와 '손발을 맞춘' 끝에 나온 것이라고 믿는 시선도 있으니.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사전 질문지보다는 현장에서 얼마나 교감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게 박 씨 설명이다. 방탄소년단 제이홉의 경우 워낙 꽉 찬 일정을 소화 중이었기에 사전 질문지를 생략할 수 없었다고.
"사전 질문지는 따로 안 보내는 게 원칙이에요. 질문지를 촘촘하게 작업했든 아니든, 미리 인터뷰 질문을 보내면 그 생각을 하느라 교감이 잘 안 되더라고요. 근데 예외는 있어요. 진지한 인터뷰에 임해본 적 없는 경우라든가, 제가 진행했던 '본명 인터뷰'처럼 새로운 형식이라든가 그럴 때는 큰 틀로 꼭 팬들과 대중의 기억에 남았으면 싶은 멘트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게, 막상 그런 부탁을 해도 그날 인터뷰이와 제가 얼마나 잘 교감하고 있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더라고요. 대화의 온도 자체가 달라지니까 준비해왔던 대답도 그 온도에 맞게 더 따뜻해져요.젊거나 어린 아이돌들이 모두 별 의미 없는 얘기를 인터뷰에서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정말 오산이에요. 그건 인터뷰어와 인터뷰 질문이 무엇인지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고, 자리와 주어진 시간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는 거예요. 물론 표현을 어설프게 할 수는 있죠. 그런데 성인들도 똑같잖아요. 말로 표현하는 능력이 각기 다를 뿐이지, 제각기 목표도 있고 가치관도 있어요."◇ 누군가와 길게 '이야기 나누기' 위해'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에서 이채연, 청하, 찬희, 문빈, 호시, 유아, 레오, 제이홉은 본인이 가진 직업이 자신에게 또 타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고, 작업할 때 본인만의 원칙과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다는 목표도 있다. 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호기심이 생길 만한 이야기이지만, 화자의 속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당연히 녹록지 않은 일일 테다. 박 씨도 양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의 자료를 수집하고 보며 인터뷰를 준비했다.
박 씨는 "제가 인터뷰한 아이돌이 연습한 시간만큼 저도 그들의 무대를 계속 돌려봤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보인다. 작은 제스처 하나에 담긴 느낌이 어디선가 했던 인터뷰의 답변과 연결될 때 그 사람에 대해 어떤 느낌이 탁 올 때가 있다.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한다"라고 말했다. 답변이 '정형화될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그 사람의 삶이 더 궁금해지지 않고, 결과적으로 인터뷰집의 재미도 떨어질 것이기에 질문을 다 정해놓진 않았다고.
박 씨는 "제가 제일 신경 쓴 건 인터뷰 전에 그 사람의 손짓, 발짓까지 하나하나 보면서 저 사람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추리하는 거였다. '그때 그런 감정이었기 때문에 손을 이렇게 쓴 거군요?', '그때 그 동작을 보면서 이런 성격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정말 그렇네요?' 하는 방식의 질문을 자주 한다. 그럼 상대도 '나를 관심 있게 본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다음부터 대답할 때도 좀 더 유연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문화 저널리스트 박희아 씨 (사진=황진환 기자)
하지만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해도 완벽할 순 없었다. 이번 책 초판에서 아스트로 문빈 인터뷰에 중요한 오타가 났다. 문빈이 보컬 실력 때문에 가장 고민이 깊었던 시기를 이야기하면서 '스스로도'라고 한 부분이 '수술도'로 나갔다. 녹취를 한 사람도, 현장에서 인터뷰한 본인도 '수술'로 들었다. 현재는 책을 다 회수해 스티커 작업에 들어갔고, 2쇄부터는 다 수정된 상태로 나갈 예정이다.
박 씨는 "왜 다시 그걸 물어보지 않았느냐면, 아이돌이 성대가 안 좋아져서 수술을 받는 경우가 드물지 않고, 자기가 굉장히 힘들었던 시절을 얘기하는데 더 들추고 싶지 않았다. 그때 한 번 더 물으면 상처받지 않을까 고민돼서"라고 전했다. "아무리 조사하고 조심한다고 해도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기는구나, 했다"라는 박 씨는 이번 일로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인터뷰 중 상대의 얼마나 내밀한 부분까지 물어봐도 되는지, 어디까지 이 사람의 상처를 건드려도 되는지. <계속>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