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악성 범죄자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사이트를 표방한 디지털 교도소 (사진=디지털 교도소 홈페이지 캡처)
성범죄·아동학대·살인 등을 저지른 범죄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디지털교도소'가 주목을 받고 있다. 잇따른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에 분노한 한 시민이 범죄 의혹을 받는 이들에게 사회적 심판을 받도록 하겠다며 그들의 신상을 '박제'하는 인터넷 사이트다.
그런데 이곳에 신상이 공개된 일부 '입소자'들이 본인을 비난하는 댓글을 달거나 신상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 "신상정보 공유는 명예훼손"…반격 나선 '그'평범한 회사원인 A씨는 올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하나둘 접하면서 분노했다. 특히 가해자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을 보면서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그러던 중 '디지털교도소'라는 곳을 알게 된 A씨는 이곳에서 n번방을 포함한 각종 범죄 의혹을 받는 사람들의 사진과 신상이 여러 증거와 함께 게시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A씨는 이들에게 '사회적 심판'을 내려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한다는 디지털교도소 운영 취지에 공감했다.
A씨는 '디지털교도소'와 연계된 인스타그램 '1bunbang'에 공개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유포 의혹을 받는 이들의 신상 정보를 링크와 함께 본인 SNS에 올렸다. 신상이 널리 알려져 이들이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며칠 후 A씨는 본인이 고소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본인이 올린 게시글을 공유해 간 지인도 마찬가지로 고소당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고소장에 적혀 있는 혐의는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이었다.
A씨는 "가해자를 구속 수사하지 않고 있으니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최근 주변에서는 만약 디지털교도소 운영자가 붙잡히면 (웰컴투비디오 운영자인) 손정우가 받은 18개월보다 더 형을 사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 주소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분노했다.
현재 A씨에 대한 수사는 종결됐지만, 그의 지인은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들이 신상을 공개한 '의혹 당사자'가 고소를 진행하고 있는 사람은 현재까지 최소 4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성년자 등 여성에 대한 성 착취물을 제작한 혐의로 구속된 조주빈 (사진=이한형 기자/노컷뉴스 자료사진)
◇ 집 주소까지 언급하며 합의금 요구한 'n번방 입장' 의혹 당사자"제가 OO구 OO동 XX아파트 XX동 XX층으로 가야지만 저랑 대화하실 겁니까?"
20대 여성인 B씨는 인스타그램을 하던 중 이 같은 메시지를 받고 깜짝 놀랐다. 알려준 적도 없는데 상대방이 본인의 주소와 이름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상대방은 과거 'n번방'에 입장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B씨가 느낀 두려움은 더욱 컸다.
B씨가 이런 메시지를 받게 된 이유는 과거 인스타그램의 한 게시물에 '댓글'을 달았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 계정 '1bunbang'에서 n번방 입장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의 신상 공개 게시글에 '찢어죽일 X'이라고 댓글을 달았던 게 화근이었다.
그는 본인이 수사기관을 통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B씨에게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통해 해당 댓글을 남긴 것에 대한 사과와 합의금을 요구했다고 한다. B씨는 그에게 무혐의 받은 증거를 요구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B씨가 메시지를 무시하자 다른 아이디를 통해 '집 주소' 등을 거론했다.
B씨는 "그는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통해 자신이 게시물 속 '본인'이라며 알려준 적 없는 내 주소와 근황을 언급했다"면서 "본인이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고 연락이 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무고한 사람을 욕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정말 죄 없는 사람이라면 사과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증거를 보여달라고 요청했지만 어떠한 증거도 보여주지 않았다"면서 "반성문과 합의금을 요구하길래 무턱대고 줄 수 없어 더 이상 답장하지 않았더니 고소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게시물 속 그는 실제 수사기관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n번방 입장 사실은 인정했지만, '모르고 들어갔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기관은 그를 무혐의 처분 내린 근거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여성의당이 지난 7일 서울고등법원 동문 앞에서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인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거부한 서울고법 형사 20부 재판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 피의자여도 신상공개는 '명예훼손' 가능성…경찰, 디지털교도소 내사 착수
디지털교도소는 지난 2월말쯤에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딥웹' 범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인스타그램 채널이었다. 이후 3월 중순쯤 텔레그램 '박사방'의 운영자 조주빈이 검거된 이후부터는 n번방 가해자들의 신상을 집중적으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10일 기준 디지털교도소 '입소자'들은 총 77명이다. 성범죄 관련 피의자들이 가장 많이 박제돼 있다. n번방 관련자들 외에도 과거 성범죄를 저질렀던 피의자들의 신상도 나와 있다. 또 아직 얼굴이 공개되지 않은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의 사진도 박제돼 있다.
특이한 점은 성범죄 피의자들에게 낮은 형량을 선고한 판사들의 이름과 얼굴도 공개돼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일 손정우의 미국 인도를 허락하지 않은 판사의 신상도 나와 있다. 성범죄에 낮은 형량을 선고하는 '판사도 공범'이라는 취지인데, 이렇게 공개된 판사만 10여명에 이른다.
하지만 아무리 범죄 피의자라 할지라도 이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비록 범죄를 저지른 혐의가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국가 기관이나 형사사법기관이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사이트에서 그 사람의 신상을 밝히는 것은 명예훼손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무리 의도가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는 그런 목적이라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허용되는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며 "이것을 재유포하는 행위도 물론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찰은 디지털교도소에 대한 내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디지털교도소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등이 적용될 수 있다"면서 "기초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