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직장이고, 사무실이었는데"…공사 출신 파일럿이 거리에 나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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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이스타항공 핑퐁 게임 속, 벼랑 끝 몰린 이스타항공 직원들
조종사 되는데 평균 1~2억 소요…'90일내 이착륙 세번' 못하면 '파일럿 자격 정지'
3월부터 '셧다운' 기간 만료 조종사가 20~30%…"밀린 월급 받고, 다시 하늘 날고 싶을 뿐"
"제주항공 셧다운 종용, 이스타 파산 책임"…"이상직 의원, 주식 던지고 발빼려는 꼼수"

"하늘을 동경해서 파일럿이 되고 싶었다"는 공군사관학교 출신 28년차 조종사 이스타항공 박이삼 노조위원장. (사진=박이삼 위원장 제공)

 


"후배들한테, 비행할 때 눈을 계기판에만 두지 말라고 얘기해요. 하늘을 보라고. 우리가 이렇게 행복한 직업이라고. 매번 다른 하늘을 보며 사는 게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데요."

하늘에 대한 동경으로 파일럿을 꿈꿨던 한 초등학생은,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해 전투기 조종사가 됐다. 그리고 13년 뒤, 민간항공사로 옮겨 하늘길을 안내하는 기장이 됐다. 살아온 인생의 절반이 넘는 28년이란 세월을, 비행기와 함께 지내온 이스타항공 조종사 박이삼 노조위원장이다.

하늘을 날던 그는 요즘, 매일 땅에서 고분투중이다. 반듯하게 다려진 하얀 제복 대신, '단결투쟁'이 적힌 빨간 조끼를 입었다. 계기판을 만지던 손으론 마이크를 잡았다. 기내에서 비행시간을 알리며 "승객 여러분의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차분한 목소리는, 사측을 규탄하고, 투쟁을 외치는 단호한 목소리로 변했다.

지난 3일 제주공항의 모회사인 애경그룹 앞에서 "다시 하늘을 날고 싶다"는 이스타항공 조종사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은 3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애경그룹 본사 앞에서 '구조조정, 체불임금 지휘해 놓고 인수거부! 파렴치한 제주항공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연지 기자/자료사진)

 

당초 예정대로였다면 이 무렵엔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인수합병이 완료되고, Eastar(이스타) 대신 JEJU(제주)가 적힌 비행기를 조종하고 있을 그들이다. 그러나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되고 지난 3월 셧다운(운항 중단) 조치가 내려지면서 시계는 그대로 멈춰버렸다. 월급은 다섯 달째 밀렸고, 인수합병도 진척이 없다. 그러던 중 지난 1일 제주항공으로부터 "선결 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을 파기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는 "제주항공이 셧다운과 구조조정을 종용해 이스타항공을 만신창이로 만들더니 인수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제주항공의 독점적 지위를 위해 이스타항공을 파산으로 내몰고, 1600명의 이스타항공 노동자들을 벼랑으로 내몰았다"며 규탄했다.

 

밀린 임금도 문제지만, 현재 이스타항공 조종사 260여명 가운데 20~30%는 파일럿 자격이 정지됐다.

90일 동안 이착륙을 세 번씩 해야, 조종사 자격이 유지된다. 시뮬레이터(모의 훈련)으로 대체할 수는 있는데, 문제는 한 번에 최소 200만 원의 비용이 든다. 이런 비용은 통상적으로 항공사에서 부담해왔다. 그러나 현재 이스타항공은 모든 것이 전면 중단된 상태다.

국내선이라도 운영만 한다면 별도로 돈 들여 시뮬레이터를 운영할 필요도 없을 일이다. 그러나 비행기 한 번 띄우지도 못하면서, 손 쓸 틈도 없이 조종사들의 자격 만료 기간은 지나버린 셈이다.

"하늘이 좋아서" 파일럿이 됐다는 이스타항공 기장 손모씨. (사진=손모씨 제공)

 

15년차 손모(42) 기장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다. 그저 하늘이 좋았던 소년에서 28살에 파일럿이 되기까지 고된 시간을 보냈다. 공부도 많이 해야하지만, 조종사가 되기까지 최소 1~2억원의 비용이 든다.

파일럿 자격증을 따려면 지상 학술 과정(그라운드 스쿨)과 시뮬레이터(모의 훈련), 그리고 실제 비행까지 모두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 입사 시험은 또 별도다.

여기서 실제 비행은 말 그래로,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서 이착륙을 해야 하는 것이다. 비행 실습에는 불시에 일어나는 사고를 대비한 보험료, 비행 기체 대여비, 비행에 필요한 교관 교육비와 연료비 등이 소요된다.

국내는 비행 훈련이 힘들다는 문제도 있다. 기후 영향이 크고, 휴전 국가라는 한계도 있다. 또 국토 대부분이 산지여서 비행기가 이착륙할 평지도 부족하다.

이렇다 보니, 파일럿 자격증을 얻기 위해 해외 유학을 택하는 경우도 많다. 학비도 학비지만 수년간 생활비까지 합하면 단순히 꿈과 열정만 가지고 도전할만한 일은 아닌 셈이다.

"하늘을 날고 있으면 선택받은 느낌이 들어요. 전면 좌우가 탁 트인 유리로, 별자리도 보고, 별똥별도 보고, 바로 옆에서 번개가 치기도 하죠. 번개를 맞은 적도 있어요. 대형항공사에 있을 땐 오로라를 본 적고 있고요. 정말 황홀합니다."

그는 "하늘이 직장이고 사무실이었는데, 다시 하늘을 날 수 있는 기회가 올지 모르겠다"면서 "파일럿 자격증을 얻기까지 청춘을 다 바쳤는데, 그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자격증이 몇달새 종이조각이 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무엇보다, "만약 이대로 인수가 안되면, 지금까지 해온 일을 버리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할텐데 정말 막막하기만 하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손 기장은 대한항공에서 이스타항공으로, 박이삼 위원장은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을 거쳐 이스타항공에 왔다.

박 위원장은 공교롭게도 직전 회사와 대립각을 세우게 됐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모아둔 돈도 있었고, 차도 팔았지만, 셧다운이 길어지고 인수합병도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생활비는 금세 동났다. 노조위원장을 맡느라 생계는 아내가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박 위원장은 "1600명의 250억 원에 달하는 임금 체불이 해결되지 않고 5개월째 쌓여있다"면서 "노동자와 가족의 생존이 벼랑 끝에 내몰린 지 오래이고, 이것저것 팔아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항공이 구조조정에 몰두하면서 고용유지지원금도 못 받았고 셧다운만 안했어도 이지경까진 안왔을 것"이라며 "제주항공측의 이익을 위해 이스타항공을 희생시켜 자력회생할 수 있는 기회를 아예 박탈했다"고 주장했다.

 

"직원들은 그저 밀린 월급 받고 싶고, 다시 하늘을 날고 싶을 뿐"이라는 박 위원장은 "제주항공에 580명의 일자리를 빼앗고, 1600명 이스타항공 노동자를 벼랑으로 내몬 책임, 제주항공의 독점적 지위를 위해 이스타항공을 파산으로 내몬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사 노조는 이스타항공 창업주이자 실소유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딸 이수지 이스타홀딩스 대표를 업무상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로 조만간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다.

박 위원장은 "이 의원이 일가 보유 지분을 모두 반납하겠다는 건, 모든 책임을 피하기 위해 이스타항공에 주식을 던져 놓고 갔을 뿐"이라며 이 의원의 책임을 끝까지 묻기 위한 투쟁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하늘을 동경해서 파일럿이 되고 싶었다"는 공군사관학교 출신 28년차 조종사 이스타항공 박이삼 노조위원장. (사진=박이삼 위원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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