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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단체 '알박기' 밀려난 수요시위…'선착순' 문제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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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동안 이어진 '수요시위' 보수단체 선점으로 밀려나
집회 신청 '선착순' 상황 반복…경찰 중재 고심
종로구, 코로나19 확산 우려 집회 금지…일단 소강상태
선착순 폐단 없애자…경찰개혁委 '온라인 신고제' 권고
경찰 3년째 검토 중…"신중하게 고민해야"

'반아베반일 청년학생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자신들의 몸을 소녀상과 묶고 연좌농성을 하고 있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24일부터 7월 중순까지 소녀상 일대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를 해 수요집회가 28년 만에 처음으로 장소를 옮기게 된다. 왼쪽은 자유연대 등 보수단체.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28년 동안 이어진 '수요시위'가 최근 장소 문제로 갈 곳을 잃었다. 보수단체들이 수요시위가 가는 곳마다 집회 장소를 선점해 맞불 집회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집회 신청은 '선착순'이기에 이런 상황은 반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요시위를 개최하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인력 부족 문제로 보수단체의 선순위 집회 등록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갈등이 가열되는 양상 속에 종로구는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3일부터 해당 장소에 집회를 금지한 상태다.

선착순 집회 신고를 둘러싼 갈등은 계속 반복돼 왔다. 지난 2017년 경찰개혁위원회는 선착순에 따른 병폐를 줄이기 위해 '온라인 신고제' 도입을 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검토할 부분이 많다며 3년째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28년 역사 수요시위, 보수단체 '선착순 선점'에 밀려나

1992년 1월부터 옛 주한 일본대사관 정문 앞에서 열렸던 수요시위는 지난달 24일 28년 만에 처음으로 장소를 옮겼다. 평화의 소녀상 자리는 정의연을 규탄하는 보수단체 '자유연대'가 차지했다. 다만 연좌농성에 들어간 일부 대학생들 때문에 소녀상 주변은 중립지대로 남았다.

소녀상에서 옆으로 약 10m 떨어진 연합뉴스 사옥 앞에서 수요시위를 개최한 정의연은 약 한 달 만에 자리에서 또 밀려날 처지에 놓였다. 또다른 보수단체 '반일동상진실규명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다음달 29일 해당 장소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선순위로 신고했기 때문이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집회 신고는 최장 30일(720시간) 전부터 낼 수 있다. 공대위는 지난달 29일 0시가 되자마자 신고서를 제출했다. 정의연 측은 "사람이 부족해 도저히 여력이 없다"며 난감한 반응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보수단체 측은 정의연이 수요집회를 끝낼 때까지 집회 신고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수요시위가 가는 곳마다 보수단체가 선순위 등록을 할 공산이 큰 셈이다.

수요시위 장소를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서울 종로구는 3일 0시부터 감염병 위기경보 '심각' 단계가 해제될 때까지 일본대사관 주변을 비롯해 종로구 곳곳에서 집회와 시위 등을 금지하기로 했다. 수요시위와 맞불시위 모두 당분간 개최되지 못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정의연은 이대로 수요시위가 밀려나선 안된다며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정의연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에 "수요시위를 어떻게 지켜야 할지, 보수단체의 행위가 법적 문제는 없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요시위에 힘을 싣겠다던 인권운동가 이용수 할머니도 현 상황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 할머니 측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보수단체 집회 장소 선점 이후 학생들이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연좌농성을 하고 있는데, 굉장히 안타까워하시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단체 '반아베반일청년학생공동행동' 소속 대학생들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주변에서 자신들의 몸을 끈으로 묶고 연좌농성 중이다. 보수단체가 해당 장소를 점거한 가운데, 소녀상 훼손을 막겠다며 행동에 나선 것이다.

수요시위를 두고 전례가 없었던 이 상황에 경찰도 당황한 모습이다. 경찰은 지난 1일 경력 400여명을 동원해 양측 집회를 에워싸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경찰 관계자는 "집회신고한 각 단체에 대해 장소를 분할해서 집회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의 분할 노력은 '권유'에 해당하기에 집회 우선순위를 가진 단체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조정은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30년 동안 그대로 '선착순 신고'…경찰 '온라인 신고' 고민

현행 집시법상 중복되는 2개 이상의 신고가 있는 경우 나중에 접수된 집회 또는 시위는 금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집회 신고는 누가 빨리 경찰서에 가서 신고 서류를 제출하느냐가 관건이다. 집회가 많은 지역을 관할하는 서울 남대문경찰서나 종로경찰서 등은 좋은 장소를 선점하기 위해 늦은 밤 대기하는 광경이 자주 펼쳐진다.

이 과정에서 충돌도 빚어진다. 지난해 4월 남대문경찰서 민원실에서는 서울퀴어퍼레이드 단체와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단체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1순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선착순 집회 신고가 인력과 시간 면에서 우세한 단체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 노조 집회의 경우 기업에서 고용한 용역단체가 집회 신고를 막기 위해 선착순 자리를 지키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여러 폐단을 감안해 1989년 집시법 제정 이후 30년 동안 그대로인 '선착순' 규정을 바꿔보려는 시도도 여러 차례 있었다. 특히 경찰개혁위원회는 지난 2017년 '집회시위 자유 보장'안을 통해 '온라인 집회시위 신고 시스템' 도입을 경찰에 권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3년째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온라인 신고로 자칫 장소 경합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온라인 신고제를 여러가지로 검토하고 있는데 조금 신중한 입장"이라며 "장소 경합으로 인한 조율을 신경써야 하고, 아직 그런 부분이 정리되지 않은 현 시점에서 도입은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라고 밝혔다.

경찰 역시 선착순 신고제에 대한 문제점은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뚜렷한 개선책에 있어선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자칫 선착순 신고가 아니라 순서를 임의대로 정했다가는 '경찰권 남용'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경찰이 시민의 관점에서 집회를 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건국대 한상희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착순 신고 문제를 개선하고 온라인 신고제를 도입하는 것은 집회 신고에 있어 훨씬 발전적인 안"이라며 "경찰이 집회를 규제한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어떻게 조화롭게 조율할 수 있을지 부분을 고민하는 '서비스'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2017년 경찰개혁위에서 활동한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이번 정의연 수요집회 논란을 보듯이 너무 집회 신고 방식이 소모적이다"라며 "집회 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동시에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당시 개선안을 권고했다"라고 말했다.

한편 해외의 경우 독일 바이에른에서 집회 신고를 전화, 온라인 등으로 다양하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공공 행진은 신고 기일 내 우편 접수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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