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식중독이 발생한 경기도 안산시 소재 유치원. (사진=박창주 기자)
"아이가 하루에 20번 이상 혈변을 보고 3kg나 빠졌어요. 유치원에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겁니다."
25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의 한 병원에서 만난 A씨는 울먹이는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그는 집단 식중독이 발생한 안산의 한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일곱 살 아이의 엄마다.
병원 대기실 의자에 힘 없이 몸을 기댄 A씨는 며칠째 잠을 자지 못한 듯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A씨의 아이는 유치원에서 급식을 먹은 뒤 지난 13일 처음으로 복통과 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단순한 배탈이나 감기 정도로 생각한 A씨는 아이의 상태를 지켜보다가 나흘 뒤 유치원에서 "다른 아이들도 식중독 증상을 겪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고 있다.
아이에게 내려진 진단명은 지난해 우리 사회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던 일명 '햄버거병'으로 불리는 용혈성요독증후군(HUS), 청천벽력과 같았다.
곧바로 집중치료실로 옮겨진 아이는 22일 혈변을 보기 시작했고, 다음날에는 그 횟수가 스무 번이 넘었다.
이따금 혈액 수치가 급격히 떨어져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때면 가슴이 철렁했다. 다행히 일주일여 만에 아이 상태는 많이 좋아졌고 이제는 일반 병동으로 옮겨 치료를 받고 있다.
A씨는 일주일을 돌아보며 "지옥같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아이와 함께 회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A씨에게 감염경로에 대한 유치원측의 주장은 화를 참지 못하게 했다.
A씨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들을 한 명씩 찾아와서 사과해도 모자를 판에 식중독 원인이 음식이 아닌 아이들간의 감염이라고 말하고 있다"며 "그게 며칠 째 잠도 못자고 고생하고 있는 학부모들에게 할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또다른 일곱 살 아이의 부모 B씨도 "5, 6, 7세 아이들의 교실이 층마다 다르고 생활 공간도 다른데 어떻게 똑같은 증상을 보이냐"며 "종합적인 상황을 따져봤을 때 음식 때문에 식중독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경기도와 안산시 등 보건당국은 원생들이 단체 급식을 통해 장출혈성 대장균에 감염된 것으로 보고 역학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유치원측이 식중독 발생 등에 대비해 보관해 둬야 할 음식 재료를 일부 보관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유치원에 과태료를 부과했다.
안산시 보건 관계자는 "아직까지 식재료에서 양성반응이 나온 것은 없는 상황이지만, 다른 식재료도 검사를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유치원에 대한 감독 권한이 있는 경기도교육청의 이재정 교육감은 이번 사태에 대해 "식중독 사고가 발생한 유치원은 철저히 조사해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힐 것"이며 "재발 방지를 위해 제반 조처를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회 전체가 감염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학부모님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 경기도교육청 전체를 대표해 사과드리며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안산의 한 유치원에서는 지난 16일부터 식중독이 처음 발병한 이후 현재까지 유치원생을 포함해 100명이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들 가운데 14명은 이른바 '햄버거병'으로 불리는 용혈성요독증후군(HUS)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증상이 심한 5명은 소아 투석이 가능한 병원으로 옮겨져 투석 치료를 받고 있다.
1982년 미국에서 덜 익힌 패티가 든 햄버거를 먹은 어린이 수십명이 HUS에 집단 감염되면서 '햄버거병'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햄버거병 환자의 절반 정도가 투석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신장 기능이 망가지기도 한다.